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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클써니 Jul 11. 2022

지구과학 선생님과 사과


우선 이 이야기는 뉴턴의 사과나 만유인력과는 1도 관련이 없음을


말머리에 굳이, 분명하게 밝혀 두고자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지구과학 선생님은 첫 수업시간에 들어오셔서


학생들이 듣거나 말거나


본인이 준비한 수업을 혼자서 열심히 하시더니


수업 끝 종과 함께 나가셨다.


한 시간 내내 이건 뭐지...???? 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나가시자마자


괴짜네 뭐네 하며 첫 수업 소감을 나름대로 떠들어댔던 것 같다.




문제는 두 번째 시간부터였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선생님은 오시지 않았다.


 가끔 선생님들이 업무상 수업시간을 조금 늦게 오시는 경우도 있어서


기다렸지만, 10분이 지나도 15분이 지나도 오시지 않는 것은...


이상했다.


나는 반장이라는 명분으로 교무실로 선생님을 찾으러 나섰다.


교무실에도 안 계셨다. 옆에 다른 선생님께 물어보았더니


행정실에 가보라는 것이다.


1층에 있는 행정실로 쪼르륵 내려갔는데,


안보이셨다. 행정실 직원분께 물어보았더니


손가락으로 안쪽 무슨 골방 같은 곳을 가리킨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쓱 들어가 보니


어두컴컴한 골방 같은 곳에는 컴퓨터가 한 대 놓여있었다.


아마 우리 학교에 있는 유일한 컴퓨터가 이것? 인가보다.


선생님은 컴퓨터 앞에서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1학년 #반 수업시간이에요!"


선생님은 속으로는 당황하셨을까?


겉으로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으셨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몇 층이니?"


나는 대답했다.


"그냥 제가 모시고 갈게요."


선생님은 나를 따라오셨다.


그날 수업은 선생님의 늦은 등장 덕분에


30여 분 만에 끝이 났다.


아이들은 그저 수업시간을 조금 떼어먹은 것에


환호할 뿐이었다.


그날부터였다.


나는 지구과학 수업시간이 있는 날에는


1층 행정실에 가서 친히 선생님을 모시고


교실로 안내했다. 


물론 너무 제시간에 모시고 오면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했으므로


수업 시작종이 울린 뒤 적절한(?) 시점에 선생님을 모시고 왔다.


(그 당시 나는 인기관리에 무척 신경을 썼나 보다.)


그렇게 지구과학 선생님의 교실 에스코트는 1년 내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또,


뜬금없이 쉬는 시간인데 교실에 들어오시는 날도 있었다.


선생님의 등장에도 아이들의 소란함은 멈추지 않았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의 권리를 절대 양보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던가 말던가 선생님은 그날따라 혼자서


열강을 하시더니 수업 끝 종과 함께 나가셨다.


소통이 없는 일방적인 수업의 결과는 참담했다.


그러지 않아도 어렵고 생소한 지구과학 수업내용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블랙홀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은 지구과학 자체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나라고 별 수 없었다.





선생님은 미스터리, 수업은 블랙홀.


불통의 벽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선생님은 성적으로 보여주셨다.


우리에게 일관성 있게 '듣든지 말든지'수업을 보여주셨던 선생님은,


전교생을 '양가댁 규수'로 만들면서 불통의 정점을 찍었다.


우리가 정말 그 내용들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신 것일까?


시험문제는 정말이지,


'문제를 모르겠는데 어떻게 답을 찾을까?'문제들의 나열이었다.


학교는 이 일로 시끌시끌했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다.


전교 1등에게도, 전교 꼴등에게도 


그렇게 공평한 점수는 평생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양' 또는 '가'.





그렇다면 이 선생님을 학생들은 싫어했을까?


내 생각에는 그냥 좀 심하게 다른 선생님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나에게 굴욕적인 성적을 안겨주었다 해서,


이 분을 정말 싫어하는 감정으로만 대하기는 어려운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날은 소풍날이었다. 


소풍 일정을 마치고 학교에 모여서 해산을 하고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만치 떨어져서 지구과학 선생님도 계셨다.


버스를 기다리시나 보다 생각하고 서 있는데,


갑자기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해서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쏟아진 동전 일부를 주워서


와이셔츠 가슴팍에 있는 주머니에 넣고,


다시 남은 동전을 주우려고 상체를 숙이면


주머니의 동전이 다시 떨어지고,


'또 주워서 넣고, 다시 떨어지고'의 무한반복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아니 우리나라 최고의 S대를 나오셨다는 분이


저걸 몰라서 길에서 저러고 계시지는 않을 텐데...


나는 옆에 가서 동전을 모두 주워서 선생님께 드렸다.


선생님은 그제야 안심한 듯 보였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떠도는 소문이 많았다.


너무 똑똑하셔서 살짝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둥(살짝이 아닌 것 같은데...),


컴퓨터 하드웨어 자체를 보기도 어려운 시절에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학교행정업무 간소화에 이바지하셨다는 둥,


점심시간에 자장면을 시켜서 운동장 어딘가에서


혼자 먹고 있는 것을 누가 봤다는 둥,


아내분 친정에서 과수원을 해서, 


가을에는 선생님들에게


사과를 나누어 주신다는 둥...


그러고 보니 어린 학생들이 뭘 알까 싶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신기한 것은 선생님에게 얽힌 그 많은 이야기 중에서,


유독 사과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지구과학 선생님이 가을만 되면 교무실에서 나누신다는 그 사과를


나는 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저렇게 수업시간도 기억 못 하시고,


사소한 일상생활도 가끔은 불편해하시니


제자들 이름이나 얼굴은 당연히 기억 못 하시겠지.


1년 내내 수업시간에 교실로 에스코트한 나에게


한 번도 이름을 물어보거나, 이름을 불러주거나 하지 않으셨으니


선생님은 나의 존재 자체를 아예 모르실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서 고3이 되고, 졸업을 하고


사범대학에 진학해서 교생실습을 나가는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의 담임선생님께 부탁해서


그분이 근무하시는 **여중에서 교생실습을 하기로 했다.


학교 측에서 인사하러 오라고 해서 급하게 **여중을 찾아갔다.


지하철역에서 나와서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뛰다시피 하여 **여중에 도착하였다.


오르막길이라 숨이 찼다. 


교무실 문 앞에서 몇 번 숨을 고른 뒤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어머나! 안녕하세요!"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온 것은 ㅅㅈㅈ 지구과학 선생님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선생님도 한마디 하셨다.


"아! 너 **여고 1학년 #반 @@@이지?"


하시는 것이 아닌가?


'가만있자. 고1 때 뵙고 지금 처음 뵙는 것이니 7년 만인데


내 이름도 모자라서 1학년 때 #반인 걸 아신다고?'


정말 평범을 거부한다는 표현이 적절할까?





알고 보니 내가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여중 바로 아래에 있는


**여고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 덕에 나는 ㅅㅈㅈ 지구과학선생님을 7년 만에 만났고,


그분이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는 사실에 매우 즐거운 충격을 받았다.





나는 학교를 매우 오래 다닌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국민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석사 2년,


박사 5년.


내가 공부한 세월이 이만큼이고,


중고등학교에서 내가 학생들을 가르친 세월이


24.5년이다.(나는 2017년 8월에 명퇴했다.)


요즘은 100세 시대다 하니 


인생의 반을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아왔다.





이번 주 일요일이 스승의 날이다.


라디오에서 스승의 날과 관련된 이런저런 책이며 


음악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을 듣다가,


문득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리고, 정말 뜬금없지만 그분을 생각하면 사과가 같이 떠오르곤 한다.


나에게 양가댁 규수의 오명을 안기셨지만,


생각하면 웃음이 지어진다.





그렇다면,


나를 기억하는 학생들은 나와 무엇을 연관시킬까?


어쨌든,


나를 생각하면 웃어줄 수 있는 학생이 적어도 몇 명쯤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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