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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클써니 Jul 15. 2022

걷기 예찬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시간만 나면 걷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물론 요즘은 오른쪽 발목이 시원치 않아서 컨디션이 좋은 날은 테이핑을 하고, 그렇지 않은 날은 발목 지지대를 하고 걸어야 하기 때문에 예전만큼 오래 걸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틈만 나면 걷고 싶다.



  나는 언제부터 걷는 것을 좋아했을까? 생각해봐도 딱히 언제부터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학교에 근무할 때 나는 정말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를 맡은 적이 있다. 그것은 학력관리업무였다. 숫자와 영 친분이 없는 나는, 출석부 관리를 수기로 해야 하던 시절에는 출석 통계가 한 번에 맞는 적이 없었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런 내가 전교생의 학력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프로그램 기획은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한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학생들의 성적을 비교, 분석해서 결과를 도출해 내야 하는 부분에서는 정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끔은 엑셀의 귀재로 불리는 다른 선생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이것은 나의 업무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내 일인 것이다.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나중에는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안 되었고, 잠도 잘 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내 몸이 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학교 운동장을 쉴 새 없이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허리가 썩 좋지 않던 나는 뛰는 대신에 계속 걷고 있었다. 한참을 운동장을 돌다 보면 복잡한 머리가 깨끗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 번 이 맛을 본 나는 걷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 장소가 운동장이었으나, 나중에는 동네 인근의 산을 거쳐 지리산 둘레길 그리고 제주도 올레길까지 이르렀다. 



  나의 걷기 사랑이 시들해질 만할 즈음, 나는 수술 후 체력 회복이 잘 되질 않아서 업무에 복귀가 어려웠고 결국 한참을 우울감에 시달렸다. 이때 우울한 마음을 떨치기 위해서는 걷기가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게 된다. 처음에는 동네 산책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한겨울에 남덕유산 정상에서 눈을 맞으며 브이자를 그리며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우울한 마음도 체력도 모두 좋아진 것이다. 이상하게도 내 몸과 마음이 가장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걷고 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머리가 복잡해도 걷고, 기분이 좋아도 걷는다. 날씨가 좋아서 걷고, 비가 오면 운치가 있어서 걷는다. 나이가 그렇게 많지도 않지만, 이제 더 이상 젊은 나이는 훌쩍 지나버린 지금, 나는 류머티즘과 같이 산다. 예전처럼 몇 시간씩 산을 헤집고 다니고 설산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동네 공원을 섭렵하며 나의 걷기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예전에 발목이 좋지 않아서 재활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담당 트레이너가 '관절을 아끼셔야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가끔은 예전처럼 몇 시간씩 마음껏 걸을 수 없어서 울적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관절을 잘 관리해서 죽을 때까지 남의 도움 없이 걸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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