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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클써니 Jul 15. 2022

해지는 모습

선셋 신드롬


"난 어떤 날에는  해 지는 모습을 마흔네 번이나 봤어!"


(...)


"아주 슬플 때는 해 지는 모습이 보고 싶어 져."


"얼마나 슬펐기에 해 지는 광경을 마흔네 번이나 봤을까?"


그러나 어린 왕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생텍쥐베리, [어린 왕자] 중에서








해 지는 모습이 왠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모양이다.


어린 왕자도 슬플 때는 해 지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하는 것을 보니...


아니, 나에게는 슬프다기보다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오랫동안 해가 질 무렵이 되면,


선셋 신드롬(내가 지어낸 말이다. 해가 질 무렵, 내가 느꼈던 가슴통증을 말한다.)


으로 힘들어했다.




갑자기 마음에 어둠이 밀려오는 듯,


명치끝이 답답하고, 뻐근해지기도 하고


가슴이 따끔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깊은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반항조차 못하고 매번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였다.



이상하게 그 증상이 나타나는 시간은 


노을이 지고 해가 뉘엿뉘엿 지는 그때였던 것이다.




그 시각에 집 안에 있으면


온몸에 힘이 빠지고 무기력해지면서,


늪에 빠진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하늘에 어둠의 이불이 깔리고 


주변이 모두 어둠에 휩싸이고 나면,


나는 비척비척 다시 일어나서 


활동을 재개하곤 했었다.




차라리 밖에 있을 때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음껏 아파할 수 있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며 나를 삼켜 버릴 것처럼,


사나운 기세로 타오르던 해가


서서히 재가 되어 사그라질 때면,


나의 고통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언젠가 TV 드라마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마음이 아프다며


가슴에 일명 '빨간약'을 바르는 장면에서,


나는 그때의 나의 모습을 보았다.


나을 수 있다면 


'빨간 약'을 발랐을 텐데.




왜 그런 증상이 있었는지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너무 고통스러웠다는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나는 그 이유가 너무너무 궁금했다.




한참 뒤에 그럴싸한 이유가 될 만한 이야기를


막내 이모에게서 듣게 되었다.


내가 돌이 갓 지났을 무렵, 엄마가 아프셔서


외갓집에 맡겨졌는데,


낮에는 잘 놀다가도


해가 질 무렵이면 마루 끝에 앉아서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소리도 내지 않고...



그렇다면


그 어렸을 때의 슬픔과 막막함, 그리움이


20살이 되어서 발현되었다는 것일까?



나는 초등학교 입학할 때가 되어서야


드디어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있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선셋 신드롬'은 대학시절 이후 10여 년 이상 지속되었다.




지금은 그런 증상이 없다.




'슬플 때 해 지는 모습을 본다.'는 어린 왕자의 말이


그 시절의 아픈 기억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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