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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클써니 Jul 17. 2022

그 아이

늘 소풍날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첫사랑"이란 단어는 설렘의 향기를 풍긴다.

처음 담임을 맡게 된 아이들을 생각하면 유독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제는 삼십 대 후반이 되어서 더 이상 아이가 아닐 텐데...


그 아이는 또래에 비해 작고 마른 체구였지만 다부진 체격에

성격도 와일드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거나 공부에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 또래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에게 짓궂게 구는 장난꾸러기였다.


그 당시는 토요일에도 오전에 4시간 수업을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서둘러 학교를 향해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그 아이가 서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 등교시간이 촉박한 시각이었기 때문에 교실을 향해 뛰어가도 모자랄 판에

학교 반대편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것이 이상해서 큰 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깜짝 놀라며 내 얼굴을 쳐다보는 아이는 무척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뭐라고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남긴 채 마침 도착한 버스를 타고 사라졌다.

그리고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시절이라 집으로 전화를 해봐도 통화를 할 수 없었다.

할 수없이 월요일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월요일에는 그 아이가 등교를 했고 나는 지난 토요일의 행적을 물었다.

그 아이의 대답은 나를 실소하게 만들었다.



사건은 이랬다.

지난 금요일에 학교에서 근교 유원지로 소풍을 갔는데, 이 아이가 그날 너무너무 즐거웠던 모양이다.

다음날 학교에 오긴 했는데 전날의 여흥이 가시지 않아서 유원지로 가는 버스를 탄 것이다.

하필 그때 담임인 나에게 걸렸으나 유원지로의 일탈을 멈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재미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이상하게 큰 기대를 갖고 찾아간 유원지는 전날처럼 재미있지

않았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는 근엄한 얼굴과 경직된 목소리로 따끔하게 훈계를 늘어놓았지만

속으로는 웃음이 났다.


나도 그 아이와 비슷한 경험이 가끔 있다. 아니 자주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그때는 그토록 재미있던 경험이 그 기대를 가지고 다시 찾아갔을 때

별 감흥을 받지 못할 때가 있다.

정말 맛있게 먹었던 맛집도 그날의 나의 컨디션이나 누구랑 같이 갔느냐에 따라서

오히려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될 때도 있다.


어떤 책에서 '인간은 본인이 느낀 쾌락을 계속 지속시키려는 욕심과

인생의 고통을 강하게 부정하려는 것 때문에 불행하다고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그 책에서 말하려는 주제였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애나 어른이나 모두 늘 즐겁고 행복하고 싶고,

불쾌한 감정이나 고통은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가끔 '즐거움의 연장'을 꿈꾸다 큰코다칠 때면 그때의 그 아이가 생각이 나서

혼자 웃음 지을 때가 있다.



* 사진은 위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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