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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Kim Jul 29. 2020

너와 나의 GAP

국제연애실패기

번호를 따간 그 아일랜드 남자아이의 이름은 Richy였다. 

우리는 자주 연락하며 지냈다.


영어를 배우고 싶으면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게 최고라고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남자들은 관심이 있는 여자가 있으면 처음엔 인내심이 아주 보살님 저리 가라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버벅거리고 못 알아들어도 웃으며 다시 천천히 쉬운 말로 설명해주었다. 

외롭고 힘든 타지 생활에 기대고 의지할 친구 하나가 생겨 너무 든든했다.


하루는 애들이 말을 안 들어서 너무 힘들다고 칭얼거렸더니, 자기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써먹던 방법 중 하나를 전수해 줬다.

아이들의 우상, '산타 할아버지'를 이용하라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1년 중 하루를 손꼽아기다린다. 바로 12월 25일, 크리스마스다.  


그래서 아이들이 말을 안 듣던 어느 날 내가 말했다.


"너네 산타 할아버지 알지? 그 할아버지는 매번 너희들을 지켜보고 계셔.

계속 말 안 들으면 크리스마스에 선물 안 주신다!"


아이들이 선물이라는 소리에 혹~했다.


너무나도 순진하고 단순한 이 아이들은 처음엔 엄청 말을 잘 듣는듯하더니 곧 약발이 다 닳았는지 어느 순간 믿음이 사라진 것 같았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는 아직 머나먼 이야기다....... 질릴 만도 하지...


그래서 Richy에게 SOS를 쳤다.

그에게 전화를 했고 그는 산타 할아버지 행세를 하며 아이들과 통화를 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다시 믿기 시작했고 내 일이 조금 쉬워졌다.


그 친구가 참 고마웠다.





아일랜드의 공휴일 성 패트릭의 날이 다가왔다.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은 기독교의 축일로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이자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전도한 성 파트리치오(386년 ~ 461년)을 기념하는 날이다. 행사는 매년 3월 17일에 이루어지는데, 이 날은 성 파트리치오가 선종한 날로써 성 파트리치오를 잊지 말고 기념하고자 이 날을 정하였다. 이 날은 강물에 초록색 물감을 타고, 이 날 아이들은 온통 초록색의 옷을 입고 축제를 즐긴다.
위키백과


시드니 시내는 온통 축제 분위기로 시끌벅적했다. 이곳저곳에 달린 아일랜드 깃발과 초록색 의상을 입은 술 취한 젊은이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나는 내 생애 첫 성 패트릭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와 함께 시내로 나왔다.


아일랜드 출신인 Richy에게 이 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나 보다.

그는 얼굴까지 가려진 펩시맨 의상과 비슷한 쫄쫄이 옷을 입었는데, 색상이 아일랜드 국기와 같았다.  초록색, 흰색, 주황색. 




시내 한복판에서 그는 유명 인사가 되어 여러 사람들이 그와 함께 사진 찍기를 원했다.


취해있던 그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나를 번쩍 들어 올렸는데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너무 놀랐고 부담스러웠다. 소리치며 내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가 내게 포옹해달라고 한다. 내가 아무리 개방적이라지만, 성에 대해 꽤나 보수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포옹을 잘 하지 않는 민족이지 않던가?

그래서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엉덩이는 뒤로 빼고 팔만 그의 등 뒤로 가져가 얼핏 보면 포옹과 비슷해 보이는 어정쩡한 자세에서 그의 등을 토닥토닥 거렸다.


그가 신경질을 내며


"What the fuck? Are you my mom?" ㅅㅂ 네가 내 엄마야?


하며 쌩하니 뒤돌아서 가버렸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냐 !? 억울하다!!!!! 안아달라고 해서 안아줬더니!!!!!!!!

나도 화난다. 술 취해서 저게 무슨 진상 짓이야?


그동안 이미지 잘 쌓아놓은 녀석의 본성이 드러나는 듯했다.


술에서 깬 그가 다음날 문자를 했다.

어제 내가 자기 친구들 앞에서 자기를 바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또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오니 초능력이 생겨 영어 작문을 열심히 했다.


"한국 문화는 너네보다 많이 보수적이야. 

그래서 우리는 포옹을 잘 하지도 않고, 특히 이성끼리는 엄청 부담스러워해.

게다가 네가 술에 취해서 사람들 많은 길거리에서 나를 번쩍 들어 올렸잖아. 그때  내가 얼마나 창피했는지 몰라. 실망이야. "


라고 했더니, 자기가 술에 취했던 걸 인정하며 사과했고 이렇게 열심히 설명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공들인 티가 많이 났나 보다 ^_^; 


외국은 포옹이 우리가 늘 하는 악수처럼 캐주얼한 인사 방식인데 우리의 문화 차이가 이렇게 크다니... 우리 사이의 Gap도 새삼 크게 느껴졌다. 


나는 그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고  더 이상 그와 친구로 지낼 수 없었다.


국제연애라는 거.. 시작도 안했지만 쉬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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