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조개 밥이 될뻔 하다!
첫 번째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또 다른 여행을 계획했다.
볼리나오라는 곳이 다음 목적지로 선정되었다.
바기오에서 차로 4~5시간 정도 걸리며 헌드레드 아일랜드와는 1시간 정도의 거리다.
어학원 부원장님의 네모 각진 황금빛깔 밴을 타고 갔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겪게 될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그저 들뜬 마음으로 출발했다.
(우리가 탄 배와 가장 흡사한 사진을 찾음.)
작은 모터가 달린 필리핀 전통 배 방카(Banka) 2대에 5~6명씩 나눠탔다.
내가 탄 배가 앞서 출발했고 필리핀 현지인이 직접 배를 운전하며 가이드 해주었다.
얼마 후, 우리는 속이 투명하게 훤히 비치는 바다로 들어갔다.
한국을 떠나오면서 난생처음 거금 주고 구매한 디지털카메라를 손에 꼭 쥐고 풍경을 사진에 가득 담았다.
지난번 여행지 산페에서 색다른 바다를 보고 감격했는데 이곳의 바다는 비교불가다.
산페 바닷물이 그냥 하늘색 맑은 물이었다면 이곳의 물 색깔은 에메랄드 빛깔과 코발트블루, 스카이블루의
그라데이션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뜨거운 태양이 바다 색깔에 아름다움을 더 해주었다.
눈이 호강한 대신 우리는 뚜껑 없는 작은 배 위에서 땡볕에 타들어가는 오징어처럼 굽히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아^^
티브이 속에서만 보던 그런 바닷물 색깔이 진짜 존재하다니!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참 넋이 나간 상태로 셔터만 눌러댔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의 목적지 '대왕조개 서식지'에 도착했다.
가이드가 이상한 영어로 스노클링 마스크를 건네며 바닥 쪽을 가리켰다.
우리 바로 밑에 대왕조개들이 바닥에 꽉 차있다. 양식장처럼 가득, 아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왕조개 사진출처 https://www.abuggedlife.com/2017/04/25/hope-for-the-oceans-the-giant-clam-nursery/
한 명씩 돌아가며 마스크를 끼고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어 대왕조개를 자세히 관찰하기 위한 취지였으나, 그 제안이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였음을 알아차리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첫 번째 주자, 우리 배에서 제일 덩치가 큰 언니가 나섰다. 필리핀 와서 마구 먹어댄 탓에 확 찐 자가 되어있을 무렵, 겁도 없이 제일 먼저 마스크를 끼고 머리를 담갔다.
나는 당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풍경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짐을 감지했다.
'응..?? 이게 무슨 일이지?'
언니가 고개를 담굼과 동시에 체중이 한쪽으로 치우쳐서 배가 균형을 잃고 서서히.. 아주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우리는 재빨리 반대편으로 가서 앉았다. 균형을 다시 맞추기 위해서
하지만 이미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기엔 너무 늦었다.
아...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보는듯하다. 우리가 주인공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것도 오늘 처음 개시한 카메라를 손목에 걸고선. 여기서 디카프리오는 내 디카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다른 배에 타고 있던 일행들이 우리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보며 배를 부여잡고 깔깔 웃고 있다. 그 배를 폭파 시켜버리고 싶을 만큼 얄미웠다.
자기 일 아니라고 지금 웃음이 나오냐 이것들아?
그래, 몸은 젖으면 물장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이 전자기기들은 어찌한단 말인가.
왜 우리는 물에 들어오면서 방수 가방 하나 가지고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돼지 언니가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기 전으로..
내 카메라만은 살리고 싶었다.
배가 결국 뒤집혔고 우리들도 하나둘씩 잠수를 하기 시작했다.
내 팔을 가능한 한 가장 길게 쭉 ~ 뻗었으나
머리가 물속으로 잠수함과 동시에 손에 쥐고 있던 카메라도 결국 입수하였다.
입수하기 바로 직전, 마지막 유언을 하듯
내장에서부터 아주 진심 어린 한마디가 끌어올라 왔다.
"C~봐알~~~~~!!!!!!!!!!!!!!!!"
꼬로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희귀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이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서 나의 악에 받친 고함이 고요하게 퍼져나갔다.
하
물거품 되는 거 한순간이다.
아주 재미난 구경거리를 관람하고 있던 다른 배에 탄 일행들의 얼굴에서 갑자기 미소가 사라진다.
누군가 소리쳤다.
"야!!!!!!! 우리 폰도 저 배에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운명의 장난인가?
배를 타기 직전 우리는 소지품들을 모아 한 가방 안에 넣어뒀고, 그 가방은 불행하게도 우리 배에 있었다.^^ 그러게 왜 웃었니 너네들..
결국 우리는 강제로 슬픔을 함께 나누어야만 했다.
수영을 못하니 낑낑거리며 있는 힘, 없는 힘 꽉 주고 뒤집힌 배에 매달려있었다.
선원이 이 극박한 상황에서도 필리핀 섬사람 아니랄까 봐 미소를 잃지 않고 아주 평온하게
배에서 손을 떼라고 한다.
어떻게 떼냐, 나 죽는데...
아 맞다. 잠깐 잊고 있었는데 우리 바로 밑에는 대왕조개님들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덕분에 대왕조개는 정말 가까이서 실컷 봤다.
그 뭐냐. 번지점프할 때 악어가 강 밑에서 입 벌리고 기다리고 있는.. 거기 점프하는 딱 그 기분이다. 근데 그게 한 마리가 아니라 바닥에 빼곡하게 찼다^^
사진출처 네이버
대왕조개에 관련해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보태자면..
성체의 길이가 1.5m 무게가 200kg에 이르는 대왕조개(학명 / Tridacna gigas). 이들은 다른 조개와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입을 벌리고 먹잇감을 찾다가 위기를 느끼면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어 버린다. 만약 별다른 장비 없이 자맥질을 하는 사람이 부주의로 조개 입에 신체 일부가 물리게 되면 그 사람은 수면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물속에서 최후를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에게 식인 조개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 붙었다.
이런 조개들이 내 발밑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이 배에서 손을 떼겠냐고요...
카메라는 이미 기억속에서 사라진지 오렌지.
하지만 이제는 내 목숨이 달렸다.
문제의 그 가방은 이미 바닷속 깊숙이 침수해버렸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해변가에서 우리를 구조하기 위해 작은 배가 도착했다.
그 배에 실려 우리는 예기치 못한 섬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은 관광지가 아닌, 가난한 필리핀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외국인들이 신기했던지 해변가에서 뛰놀던 깡마른 아이들이 나이대를 불문하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맑은 눈동자를 보니 방금 있었던 끔찍한 악몽이 잠시나마 잊혀졌다.
곧이어 선원 중 한 명이 물에 젖은 문제의 그 가방을 건져왔다.
다들 울상이다.
하필 짠 바닷물에 이게 빠져서... 부식되면 살릴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데, 기기를 헹굴 수 있는 깨끗한 물조차 구할 수 없었다. 배를 고치는 동안 우리는 물에 젖은 전자기기들을 일렬로 나열해 말리기 시작했다. 진열되어 있는 걸 보니 모래사장에 펼쳐진 시장 같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내 디카를 잃고 세상 다 잃은 것처럼 슬펐는데, 부원장님은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폰, 아이패드, DSLR 카메라를 잃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 펀치 쓰리 강냉이....
총 합해서 삼백만 원이 사뿐히 넘는 ..... 고액의 물품들을 한순간 잃게 되다니.
그런 분 옆에 있으니 갑자기 내가 운이 참 좋은 것 같았다. 그날 다행히 폰에 배터리가 없어서 숙소에 두고 온 덕에 폰은 살렸다.
그리하야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추억으로 남긴 사진 한 장이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사건의 주인공 언니는 폰을 두고 가서 혼자만 피해를 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날 밤 우리들은 상실감에 빠져 술을 엄청 퍼부어마셨고, 그 언니는 그런 우리가 무서웠는지 숙소에 있던 과도를 자기 침대 밑에 숨겼다고 한다.
혹시 우리 중 누군가가 술김에 자기에게 앙심을 품고 충동적인 행동을 할까 봐 예방 차원에서... ㅋㅋㅋㅋㅋ
언니도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겠지.
아.. 여행이라 쓰고 아픔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