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최후 보루 - 직접 경험
이 책은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현재 기술 시대를 부정하기보다 그 기술로 인해 인간이 직접 경험을 통한 인간다움을 상실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직접 경험보다는 기술이 매개가 된 경험을 통한 거대한 정보를 소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세계 대신 디지털 세계, 가상 세계에 심취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기술이 우리 삶에 뿌리 깊게 침투하여 온전히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독립적인 공간까지 잠식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감각 세계를 보호하고 육체의 중요성과 물리적 공간의 완전성 그리고 내면의 삶을 가꿔야 할 필요성을 자기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여기에서 기계로는 만들 수 없는 뜻밖의 행운, 우연, 그리고 직관, 공동체, 자발성, 공감 같은 것들이 만들어진다.
'경험'이라는 것은 특정한 기간에 특정한 공간에서 자신의 육체를 통해 즐기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지금 직접 경험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경험을 소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화면 속 사람들과 그 순간에 거기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는 가상 경험에 빠지거나 근거 없는 음모론에 빠져서 비판 없이 정보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가상 연결에 이점은 있으나 우리가 대면 상호작용을 비선호하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기술이 우리의 경험을 정량화하고 네트워크화하며 이익을 얻는다. 머리가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현실을 자각하고 비판 의식을 갖고 성찰해야 한다. 많은 아이들이 기술로 매개된 세상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 그들의 모든 세계를 향한 반응이나 경험이 추적당하고 모니터링되고 있다. 무엇보다 현실 세계, 물리적 세계보다 디지털 이미지를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편의를 위해 사용했던 기술이 오히려 사고, 이해 그리고 존재 방식까지 변화시키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스크린과 기술 매개 경험에 심취하며 직접 대면보다 가상 세계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것이 효율적이고 편리하다고 자연스럽게 인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대면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감정에 대해서 배워야 하고 그 방법은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대면으로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커뮤니케이션함으로써 사회적 기술이나 필수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배울 수 있다. 물론 대면이 실제적인 불쾌감과 비효율적인 시간 낭비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대면을 통한 물리적으로 구현된 존재로서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는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컴퓨터의 엄청난 생산성과 자동화가 우리 삶의 패턴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 어떤 작업을 화면으로 옮기는 것은 물질성보다 추상화가 강조되는 것이고, 계산은 늘어나고 감각의 개입은 줄어들게 된다. 우리는 세상을 지각하고 경험할 뿐 아니라 분석하고 이해하는 존재이다. 육체적 경험, 감각적 경험보다 이미지와 가상화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효율성이나 속도를 최고로 여기는 경향으로 인해 신체를 활용하는 손 글쓰기나 그리기 기능마저 쇠퇴하고 있다.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정의하고 특징지어져 온 육체를 활용한 경험들이 사라지고 있다.
특히 기술이 가져다주는 효율성은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지루함을 견디는 행동 습관까지 바꿔버렸다. 기다리는 시간에도 즐거움을 추구해야 하고 지루함을 비효율적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인내심마저 키우게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루함을 인간 내부에서 오는 자기 조절력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쏟아지는 많은 정보를 수용하고 반응함으로써 그 지루함에 대처한다. 그래서 스스로 자기 조절력을 잃게 되고 주의력도 약화된다. 자신의 생각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다. 블라스 파스칼은 모든 불행은 조용한 방에 홀로 앉아 있을 능력이 없는 데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기술을 활용한 오락거리, 불안감과 주의력을 빼앗는 것들이 도처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완전히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
기술이 우리의 기다림의 경험마저 뺏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시간을 들이고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정신적인 습관, 공감 같은 것들까지 점점 약화시킨다. 우리는 인간의 창의성을 보장해 주는 딴생각이나 백일몽을 누릴 만한 시간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한다.
현대 기술의 편리함과 맞바꾼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폐해를 현대인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기술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우리 인간의 감정을 수치화해서 측정함으로써 우리 삶의 깊이와 복잡성을 없애고 단조롭고 무미건조하게 만든다. 즉 부정적인 감정이나 비효율적인 요소들 미리 차단하고 모든 것들을 데이터로 저장하고 마케팅으로 활용한다. 기업들은 우리의 모든 경험과 감정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긴다. 인간은 점점 기계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고 우리가 느끼는 경험, 감정도 재단되고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빼앗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도 결국 기계에 종속되거나 표준화(기계화)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인간이 인간다움을 누리지 못하면 경험만 멸종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도 멸종될 거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과 우리 내면에서 나오는 감정들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기술과 분리된 우리만의 인간다움,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기계와 기술 속에 종속되어 자유를 상실한 노예의 삶을 살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 목적이 무엇인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그 기계에 종속될 것인가?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선택과 욕구에 따른 경험을 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비판의식 없이 기술을 매개로 했을 때 우리는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기술에 의존하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의 기능들을 상실하게 된다. 손 글씨나 그림 그리기, 길 찾기 같은 기능들 말이다. 즉, 인간다운 활동들을 상실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자신의 선택에 따라 도구적으로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기술이 통제하는 삶을 살게 되고 자유를 상실한다. 올더스 헉슬리가 경고했듯이 우리 인간이 효율성에 대한 욕구에 집착하게 되면 결국 그 효율성의 대가로 인간성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