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고통이나 미래에 일어날 모든 부정적인 요인들을 미리 통제하고, 예측이 가능한 안정된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인간의 고통과 불안정한 상태를 제거하면 인간들이 모두 똑같이 행복해지는 유토피아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유토피아를 대가로 인간은 자신의 어떤 인간성(인간존엄성)이나 개인적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즉, 인간의 개성을 부정하는 전체주의 적 유토피아 사회를 실현함으로써 한 개인으로서 인간이 가지는 자유로운 선택과 권리, 즉, 한 사람 개인이 자유롭게 인생을 살아갈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작가는 모든 고통적 요소가 제거된 사회가 결국 유토피아가 아닌 인간성이 말살된 비참한 사회임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행복할 권리도 중요하지만, 불행할 권리 또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될 삶의 고통으로 인해 인간은 인간답게 성장하는 기회 또한 가져야 한다. 고통을 겪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선택과 판단으로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해 나간다는 뜻이다. 고통을 제거하면 인간 스스로 의지나 용기, 내면적 자질을 성장시키지 못하게 된다. 즉, 이 소설에도 나타내듯이 몸만 성장한 어른, 그리고 정신은 여전히 유리관 속의 아이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즉, 평생 유리관 속에 살아가는 것. 어찌 보면 헤르만 헷세가 말한 알 속의 세계를 살다가 알을 깨지 못한 세계를 살게 되는 것이다.
소설에는 셰익스피어 책을 읽는 야만인 존이 등장한다.문명인 부모를 뒀지만 야만인 사회에서 태어나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비극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누구보다도 인간 본성의 비극을 잘 공감가게 쓴 작가이다. 인간이 어떻게 파멸하는지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은 자신을 성찰하고 공감하며 진정한 인간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의 책을 읽은 존만이 진정으로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한다.
작가는 존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해야 하고, 자의식이나 비판의식, 개성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주입된 사회의 통념이나 관습을 의심하고, 진지하게 인생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또한 보이지 않는 내면, 물질이 아닌 정신세계에 대한 탐구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멋진 신세계'를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사랑의 기술을 다 읽고 나니 존이 채찍질을 하며 자학하는 장면이 과한 설정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과 결부해서 생각을 해보니, 존이라는 캐릭터는 유일하게 사랑을 아는 인간이었다. 셰익스피어 책을 읽으면서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된 유일한 사람이었고 사랑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 사랑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레니나와의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좌절되면서 그는 누구에게도 이해받거나 공감받지 못해 고립감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즉, 자학적 장면은 과한 설정이 아니라 사랑을 갈망하던 유일한 인간이 그 사랑이 좌절됨으로 인해서 자유의 의미를 잃게 되고 삶의 이유를 잃게 되면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인 것 같았다.
올더스 헉슬리와 프롬은 비슷한 시대를 산 작가로서, 20세기 초 기계 문명이 발전하고 살기 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여전히 불안하고 불행한 이유를 헉슬리는 전체주의 지향을 통한 인간다움, 인간 본성의 상실로 보았던 것이고 프롬은 인간의 가치가 오직 물질과 교환 가치로만 해석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 구조를 비판한 것이다. 즉 둘 다 급변하는 사회구조가 우리 인간성을 말살하고 또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한다고 본 것이다.
수많은 문학작품들을 보면 작가들이 얘기하고 있는 것은 한 인간이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파멸하는지 보여주면서 사회에 대한, 인간 자체에 대한 성찰을 제시한다. 이 사회가 기본적으로 인간성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사회가 아니라는 것, 주객이 전도된 상황들을 역설한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사회 구조체제나 이념, 사상을 만들어냈지만 인간은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부속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작가들은 인간의 유한한 삶 속에서의 가치는 바로 인간 내면에 있다는 것을 독자로 하여금 끌어내고 있는 것 같다. 고전이든 현대 문학이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는 사상과 이념이 조금 바뀌었을 뿐 결국 권력과 정치 세력, 소수의 지도자에 의해서 유지되고 지배되고 있다.
결국 프롬이 말한 것처럼 위대한 문학작품과 예술 작품이 훌륭한 인간적 기능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내고 인간의 어떤 특성을 전수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천 년 동안의 문화는, 비록 지식은 전달되고 더욱 발달하더라도 좌절될 것이다.
헉슬리와 프롬은 인간으로서 갖는 인간성과 내면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