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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날

나무가 물에 뜨지 않던 날...

by 도시 나무꾼 안톤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이 그렇지 않을 때, 시큰둥한 사람조차 눈길을 주기 마련이다.

우리는 선입견 혹은 선이해 속에 산다. 자동차는 네 바퀴로 가고, 음악은 오선지위를 달리고, 물고기는 물속을 헤엄친다. 그런데 만약 바퀴가 없는 자동차가 있다거나 칠선지위에 음표를 그린다거나 하늘을 날고 있는 물고기를 만난다면 제 아무리 무관심한 사람도 돌아보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입견은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통해 최적화된 형태거나 물리학의 법칙 내에 있거나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인 결과물로 크게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가 받아들인 선입견 혹은 선이해의 범위를 벗어나면 사람들은 긴장도를 높인다. 관심이든, 공포든, 경멸이든 강한 감정의 형태를 보이곤 한다. 강하거나 친숙한 대상이면 경외와 공포를, 약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이면 경멸과 혐오를 보이곤 한다.


나무가 물에 가라앉는다면....?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나무가 물에 가라앉으면 우리는 어떤 감정을 나무에 투영할까? 나무는 우리에게 강한 대상일까? 약한 대상일까?

왜구를 막아낸 조선의 판옥선, 대항해시대를 열며 서구열강의 제국주의 시대를 열었던 범선들 모두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나무가 물에 가라앉는다면? 왜구의 조선침략과 서구열강의 대항해시대는 상당한 기간 연기되었을까?아니 창세기에 나오는 대홍수 때 노아는 무엇으로 방주를 만들어야 했을까?

나무가 물에 가라앉는다면 그 나무는 쓸모가 있는 것일까? 아니 쓸모가 더 많은 것일까?


경기도 고양시 어딘가에 있는 공방


목공방에 처음 갔던 날


처음 목공방에 구경 갔을 때가 떠오른다. 야트막한 산아래 자리 잡아 한적해 보이는 공방에 들어서면 작업자들의 개인공간들이 보이는데 이곳을 지나치면 공동으로 쓰는 기계실이 있다. 기계실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널찍한 판아래 쑥 올라와 날카롭게 빛나는 원형톱. 톱날의 위협에 가까이가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면, 공방장은 무신경하게 원형톱을 가동한다. 예상보다 큰 굉음과 위력에 일순간 공방에 구경온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라 원형톱에 시선을 모으게 된다. 마치 "Hey, Attention!!"라고 큰 소리로 소리치는 몰이꾼처럼... 나중에 공방의 회원이 된 나도 내 손님들에게 장난 삼아 놀라게 하곤 한다. 한 번에 주의를 모으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공방의 장비들은 쇠붙이가 많아 차갑고 날카롭게 여겨지지만 그것들로 깎고 자르고 갈아낸 나무들은 신기하리만큼 따뜻하고 부드럽다. 고운 사포로 샌딩하고 나서 나무표면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미끄러짐은 원형톱 때문에 잔뜩 올라간 긴장을 일순간에 정겹게 바꾼다. 어쩌면 그 따뜻함만큼 물에는 뜨고, 쇠붙이와 돌덩이들은 그 차가움만큼 물에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무와의 밀당은 이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물에 가라앉는 나무가 있다... 아니, 꽤 있다.


방문 첫날, 공방장이 보여준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공방뒤편 목재적재창고에서 꺼내 온 묵직하고 완전한 블랙에 가까운 나무였다. 나무인 듯, 나무 아닌, 나무 같은 나무. 일단 손에 들릴 때부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겁다는 느낌이었고, 조각끼리 부딪치면 쇳소리와 나무소리의 중간 어디쯤의 소리가 났다. 나무의 이름은 흑단(黑檀)이라고 했다. '물에 가라앉는 나무'라는 말과 함께... 비중이 물보다 높아 가라앉는 나무가 있다는 것을 처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고정관념을 깨는 대상을 만나면 과할 만큼 기뻐하는 성향이 있는 나는 그날 목공세계로 이미 발을 들여놓았던 것 같다. 오랜만에 느끼는 '과도한 호기심'이었다고 해야 할까...


흑단(Ebony)의 두 종류. 왼쪽은 음핑고(Mpingo)라고 부르는 아프리카 블랙우드(African Blackwood)이고 오른쪽은 동남아산 흑단(Ebony)


흑단(黑檀)이라 부르는 나무는 이름에 혼선이 유독 많다. 한문 그대로 번역하면 ‘검은 박달나무’지만 박달나무와는 수종이 다르다. 아마도 단단하다보니 우리 주변에서 가장 단단한 박달나무와 연결짓지 않았나 추정된다. 온대지방에서는 가장 단단한 나무가 박달나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흑단으로 통칭되고 있지만 주로 동남아에서 생산되는 감나무과의 흑단(ebony)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콩과의 음핑고(mpingo)로 나눠진다. 사실은 전혀 다른 나무다. 하지만 아프리카 블랙우드(Africa blackwood)라고도 불리는 음핑고가 스와힐리어로 ‘ebony tree’를 뜻한다고 하니 감나무과와 콩과로 완전히 다른 나무지만 하나의 범주로 퉁친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탄자니아의 국목(國木)이기도 한 음핑고는 수확할 수 있을 때까지 최소 75년이상 걸린다고 한다. 이 때문에 멸종을 우려한 UN이 2006년 세계 보호 수종 (The World List of Threatened Trees)에 등록하면서 거래 금지 품목이 되었다. 지금 유통되는 음핑고는 2006년 이전에 벌목된 것이다 . 그래서 매우 비싸다. 가격대가 너무 높아 가구로는 감히 만들지 못하고, 주로 화룡점정용 장식으로 쓴다.



비중(比重)

여기서 비중(Specific gravity)은 '1기압에서 4°C 물' 기준으로 1보다 높으면 물에 가라앉고, 1보다 작으면 물에 뜬다.

일명 그린우드(green wood)인 막 벌목한 목재(생재)는 머금고 있는 수분의 비율, 함수율(moisture content, MC)때문에 건조된 목재보다 두 배 이상 무겁다.

그래서 목재의 비중을 비교할때 수분이 12%인 상태, 즉 함수율 12% (12% MC)가 표준으로 한다. 일반적인 환경(온도 21.1℃, 습도 65%)에서 12%균형을 이루는 함수율(equilibrium moisture content, EMC)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비중을 기건비중(air-dried specific gravity, 氣乾比重)이라 부른다.

전건비중(absolute dry specific gravity, 全乾比重)은 목재가 100°C이상에서 완전건조되었을 때의 비중이다.




우드데이터베이스(https://www.wood-database.com)에서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나무 Top10을 찾아볼 수 있다. Top10에 포함된 나무는 기건비중이 1보다 높아 모두 물에 가라앉는 나무들이다. 아프리카 블랙우드인 흑단은 3위에 올라있다. 음핑고가 1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또 놀란다. 무겁다는 것은 단단한 것과는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 해서 이름자체의 뜻이 "axebreaker"인 케브라초(Quebracho)조차 비중으로는 5위에 랭크되어 있다. (단단 Top10은 나중에...)



Top10에 나오는 나무들을 주변에서 보기는 꽤 어렵다. 목재시장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을 정도로 드물고 찾았다 하더라도 가격이 너무 비싸다. 대부분 목재로 사용할만큼 자라려면 50년에서 100년이 걸리기 때문에 희소성이 매우 높고 현재는 수출이 금지되거나, 벌목이 금지된 경우도 많기 때문.


내가 좋아하는 나무는 4위에 오른 Lignum Vitae로 우리가 유창목(癒瘡木)이라고 부르는 나무다. Lignum은 나무를, Vitae는 생명을 뜻하는 라틴어로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라는 의미다. 스페인에서는 성스러운 나무(Palo Santo, Holy wood)라고까지 불린다. 10위에 있는 베라우드(Verawood)는 다른 종류긴 하지만 목재시장에서는 '아르헨티나 유창목'(Argentine Lignum Vitae)라고 불리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 '진짜 유창목'(genuine lignum vitae)이라는 별명도 있다.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북부가 원산지로 6~10m높이 정도 자란다.

우리 이름인 유창목(癒瘡木) 또한 상처를 치유하는 나무라는 뜻으로 사포닌이 풍부해 상처치료, 살균, 탈취 등에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자료를 찾다보면 어릴 적 원숭이 재롱과 함께 만병통치약을 팔던 약상인의 말이 떠오를 정도로 치료효과가 호들갑스럽다. 게다가 나무의 향도 매력적인데다 나무 자체에 기름성분을 머금고 있어 물에도 강해 내구성이 훌륭하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내게 가장 좋았던 점은 색과 무늬. 들여다 볼 수록 무늬가 신비롭다.(자세히 들여다 보라) 색은 생재 상태일때는 일반 나무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다가 햇빛을 받기 시작하면 점차 녹색으로 변하는데 이 또한 놀라웠다. 유창목을 별다른 정보없이 접했다가 작은 펜트레이(pen tray)를 만드는 과정에서 뒤늦게 내용과 의미를 알게 되서 그런지, 금새 나의 애착나무로 자리잡았다.


목재상에서 유창목을 실물로는 처음 보았다. 녹색의 기운을 감도는 특이한 나무로 수많은 나무중에 유독에 눈에 띄었다. 샌딩하고 나면 반질반질한 느낌이 좋고, 묵직한 무게감도 좋으며, 무늬와 색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유일한 단점은 비싼 가격. 그래서 자투리만 몇 개 사 펜트레이(pen tray)를 만들기로 한다.

목공작업중에도 또 한번 놀라는 것은 녹색 톱밥이 날리는데 반해 잘려져 처음 공기중에 노출된 목재는 갈색이라는 점이다. 갈색 몸통이 갈려나가면서 녹색 톱밥가루가 날리는 것. 그리고 오일을 바르지도 않았는데 기름기가 돈다. 이상한 놈인데 믿음이 간다. 맨질맨질하면서도 무겁고 색은 진하면서 크리미한 커피같다.


목재상에서 본 유창목의 제재목이다. 녹색의 결이 보이고 라우터로 갈아내면 녹색의 톱밥이 쌓인다.
유창목은 갈아내면 햇빛을 만나지 않았던 부분이 드러나는데 이 상태에서는 갈색이다. 크리미한 진한 커피색이다.
햇빛을 볼 수 있는 상태로 오래 놔두면 녹색으로 변해간다. 나무의 결도 발색과 함께 더욱 두드러진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에 샀던 것이라 펜트레이 4개정도를 만들었지만, 이미 만들어 쓰고 있던 다른 나무로 만든 펜트레이가 많아 구석에 방치했다. 이전에 만들어 사용하던 편백나무, 단풍나무, 참죽나무 펜트레이와는 격이 달랐다고 느꼈는지... 깍아만 놓은 채 사용처를 찾지 못해 그냥 둔 셈이다. 그러다 한달 후 쯤 우연히 보니 녹색 발색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을 발견했다. 빛 특히 자외선을 받으면 나무가 녹색이 발색되면서 변해간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고 자외선이 부족해지면 다시 갈색으로 돌아간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뭐 이런 나무가 다 있지?'하며 만지작해보니 분명히 오일도 바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표면이 매끈하다. '정말 뭐 이런 나무가 다 있지?'하며 다시 보길 반복하다가 유창목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나무 결의 무늬 또한 자세히 볼 수록 신기했기 때문이다. '정말 도대체 왜 진짜 뭐 이런 나무가 다 있지?' 하면서...


사람은 강하거나 친숙한 대상이면 경외와 공포를, 약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이면 경멸과 혐오를 보이곤 한다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나무는 물에 뜬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나무들을 봤다.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 나무여서 다행이다. 나무는 인간에게 공격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가 물에 가라앉는다 해도 공포의 감정을 느끼지는 않기 때문일까? 오히려 더 호기심이 생겼다. 이렇게 목공의 세계로 조금씩 빠져들었다.




의외로 많은 나무가 물에 가라앉는 비중을 갖고 있다. 의외로 많은 나무가 스스로 변한다.

선입견으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모르던 것들은,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새롭게 보이게 되고 새롭게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무가 아니라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선입견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과한 경외와 공포, 혹은 경멸과 혐오를 보이고 있지는 않았을까?

물에 가라앉는 나무가 있는 것처럼, 사람을 조금 더 겪어보면 전에는 알지 못했던 매력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혹시 미리 벽을 쳤던 그 사람이 '상처를 치유한다'는 이름의 유창목(癒瘡木)같은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당신이 그 사람에게 '생명의 나무'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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