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비밀 미술관>
작품과의 만남은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할 수 있다. 무엇이 보이는가? 가장 먼저 우리의 주의를 끄는 요소들은 작품 안에 있다. 우리는 그림의 형태, 선, 색채, 결을 보고, 개인적인 선호나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는 지식과 정보에 기초하여 작품과의 관계를 확장 해나간다. 시각과 사고만으로도 의미 있고 즐거운 감상을 할 수 있지만, 작품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비밀이 있기도 하다.
약하면서도 공격적인 <담비>
담비는 겨울이면 털갈이로 갈색 털이 드문드문해 지고 흰 털이 빼곡히 자라나 흰담비라고 불린다.
약하면서도 공격적인,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이 맹수는 흔한 반려동물은 아니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의 주인공은 이 근육질 동물을 편하게 안고 있다.
여인과 담비는 몸을 함께 돌려서 정서적 유대감도 표현한다.
담비를 그린건 순전히 말장난?
1900년에 발견된 한 편지로 여인의 정체가 밀라노 왕실 재무 관리의 딸 체칠리아 갈레라니Cecilia Gallerani(1473-1536)로 밝혀졌다. 담비를 그린 건 이 가족의 성이 담비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갈레galeé와 음이 같은 것을 활용한 말장난일 수도 있다. 체칠리아 역시 궁정과 관련이 있었다. 아름답고 교육을 잘 받은 체칠리아는 통치자의 삼촌이자 섭정이었던 루도비코 스포르차(1452-1508)의 정부였다. 어두운 얼굴빛 때문에 ‘일 모로Il moro(무어인)’와 ‘레르멜리노 l’Ermelino(담비)’라는 별명이 있었던 루도비코는 체칠리아와의 인연이 시작되기 직전인 1488년 흰담비 기사단에 가입했다. 1464년 나폴리의 페르디난드 왕이 설립한 이 기사단의 신조 “불명예보다 죽음을 Malo mori quam foedari”로 하얀 털을 더럽히느니 죽음을 택한다는 담비의 순수성에서 착안했다. 기사단에 가입한 지 1년이 안 되어 루도비코는 다빈치에게 체칠리아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다빈치가 1482년 궁정 화가로 공작의 집에 들어간 후 처음으로 의뢰 받은 초상화였다.
현대 과학으로 찾아낸 또 다른 2개의 초안
체칠리아의 성품에 대한 찬사든, 동음어를 활용한 말장난이든, 연인 관계를 암시한 것이든 최근 과학 연구에 따르면 이 초상화의 필수 요소인 담비가 다빈치의 초안에는 없었다고 한다. 2014년 프랑스의 엔지니어 파스칼 코트는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연구팀과 함께 층간증폭법LAM을 활용해 이 그림 표면에 닿은 빛의 파장대 13개를 기록하는 다중 스펙트럼 카메라로 1,600개가 넘는 이미지를 제작했다. 그는 물감층 속에서 다른 성분들을 찾아내는 과정을 양파껍질을 벗기는 과정에 비유하며 다빈치의 자세한 작업 과정을 추적했다.
파장이 특정 재료에 반사될 때 뚜렷한 광학 효과가 만들어진다. 층간증폭법은 13가지 파장이 그림의 층을 투과하게 해서 물감의 밀도와 성분을 구분해낸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는 작업하는 동안 아이딩를 계속 바꾸는 다빈치의 융통성을 보여주지만 그 동기까지 밝히지 못한다.
코트는 완성된 초상화 밑에서 두 개의 초안을 찾아냈다. 첫 번째 초안에서 체칠리아는 혼자 있다.
두 번째 초안부터 담비가 등장하는데, 최종 그림 속 유연한 근육질 담비보다 훨씬 온순해 보이며 회색 빛이다. 이런 변화는 체칠리아와 루도비코가 더 친밀해졌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 이상을 보여주는 것일까? 1490년 밀라노에 파견된 페라라 공국의 대사 자코모 트로티는 에르콜레 데스테 1세 공작의 어린 딸과 약혼한 루도비코의 정략결혼이 이루어지기 힘들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꽃처럼 아름다운” 루도비코의 정부가 아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최종 그림에 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담비는 순수한 담비가 임신한 여성들의 보호자라는 또 다른 상징과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