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 인문학>
아름답지 않으면 살 의미가 없어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작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이 하는 말이다.
"다 끝이야, 아름답지 않으면 살 의미가 없어."
이렇게 잘생겨놓고, 목소리는 기무라 타쿠야면서 무서운 소리를 잘도 한다.
세상에 나와 있는 온갖 통계를 보면 정말 하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아름답지 않은 사람을 엄청나게 차별한다.
미국의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해머메시에 따르면,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이 못생긴 사람보다 월급이 17퍼센트나 높다.
이는 2년의 학력 차이에서 생기는 봉급 차이와 같다.
몸매도 뚱뚱하거나 너무 마르면 안 된다.
날씬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
능력이 부족하고 지적 능력과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뚱뚱한 사람들은 일터에서 12배나 차별을 더 받았고,
뚱뚱한 여성들은 일터에서 16배나 차별을 더 받았다.
뚱뚱한 사람들은 채용, 연봉 인상, 성과 평가, 해고 때 불리한 대우를 받는다.
심지어 의사, 간호사, 심리학자, 의대생(!)까지도 뚱뚱한 환자는 어차피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니
조언을 대충 한다고 답했다.(M.R. Hebl, J. "Weighing the care", pp. 1246-1252, 2001년)
청소년들도 학교에서 똑같은 차별을 받는다!
뚱뚱한 여성 중 32퍼센트가 선생님들에게 차별을 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외모가 잘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벌을 덜 받는다.
(성인들도 법원에서 비슷한 차별을 받는다. 못생기면 더 높은 형량을 선고받는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못생기면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할 확률이 높다.
씁쓸한 현실이다.
정말 하울의 말처럼 아름답지 않으면 살 의미가 없는 걸까?
프랑스에서 아주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외모가 있는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다.
우리는 사람마다 성격이나 취향이 제각각이어서 이상형도 제각각으로 꼽을 거라고 생각한다.
(긴 머리 vs 짧은 머리 / 근육질 vs 마른 몸매 / 쌍꺼풀 있는 눈 vs 쌍꺼풀 없는 눈 등등…)
결과부터 말하면, 반만 진실이다.
이 실험에서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얼굴이 매력적인 순서대로 사진을 나열하라고 했다.
결과는 흥미롭게도 실험 참가자들의 성별, 나이, 문화적 배경에 상관 없이,
그리고 사진 속 인물들의 성별, 나이, 인종에 상관 없이 모두 비슷한 순서로 사진을 나열했다.
이것만 보면 인간에게는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외모가 있는 듯하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이상형의 기준과 실제로 호감을 보이는 상대가 다르다는 결과가 나왔다.(I. van Straaten, R. Engels, C. Finkenauer et R. Holland, "Meeting your match", pp.685-679, 2009년")
이 실험에서는 연애를 하지 않는 다수의 남녀에게 5분간 대화하는 시간을 주었는데,
남자들이 가장 예쁜 여자보다는 자신의 외모 수준과 비슷한 여자에게 끌린 것이다.
(그런데 이 실험 결과는 남성에게만 해당된다. 여자는 처음 본 남자에게 이성적 호감을 표시하지 않고 좀 더 신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외모만 보고 사랑하지 않는다
외모에 관한 사회의 온갖 고정관념과 편견과 차별이 있음에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외모만으로 상대를 무시무시하게 차별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외모와 별개로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다.
공주의 입맞춤을 받은 개구리가 멋진 왕자로 변신했다는 내용의 동화가 있다.
심리학자이자 과학 분야 저널리스트 장프랑수아 마르미옹은
'아름다움'의 본질은 사실 이 개구리 왕자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누군가 아름다움을 봐준다면 아름다움은 1000배로 커진다.
누군가에게는 개구리일지라도 나에게는 왕자인, 고유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은 절대적이지 않지만 고유할 수는 있다.
살아남아라, 너는 아름다워
미야자키 하야오의 또 다른 명작 <모노노케 히메>에서도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원령공주 '산'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 주인공 '아시타카'에게서 아름답다는 말을 듣는다.
아시타카는 평생 '추하고 무서운' 존재였던 원령공주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아름답지 않으면 살 의미가 없다'고 말하던 하울도 소피와 지내면서 점차 변화한다.)
우리도 누군가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꿰뚫을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을까?
외모에 차별받지 않고 사랑받을 권리를 얻을 수 있을까?
우리는 습관처럼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다보니 고정관념도 편견도 생긴다.
아름다움의 관점에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면 모든 게 새롭게 보인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무엇일까?
-왜 매력적인 외모에 끌리는 걸까?
-남자는 여자처럼, 여자는 남자처럼 옷을 입으면 안 되는 걸까?
-신체장애를 겪는 사람은 아름다울 수 없는 걸까?
-외모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정말로 우리에게 있는 걸까?
-현대예술은 왜 난해하게 느껴질까?
-동물들도 인간처럼 외모를 볼까?
심리학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 베스트셀러 작가 장프랑수아 마르미옹이
외모와 아름다움에 천착해, 세계 석학 28인과 함께 지은 책이 바로 『거울 앞 인문학』이다.
사회학자, 역사학자, 인류학자, 철학자, 법학자, 예술가 등 세계 석학들이 모여
각기 다른 분야에서 미추에 관한 가장 다채롭고 입체적인 통찰을 보여준다.
끝없이 펼쳐지는 외모와 미추의 세계.
거울 앞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인문학이 여기에 함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