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만 하다 등산화 삭을 뻔… 드디어 지리산 찍었다!

자네! 지리산 천왕봉 가봤어?

by 권일웅

2024년 10월 말, 나는 드디어 지리산 종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매번 동생과 말로만 했던 약속을 실천하고 나만의 추억을 담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리산 종주 일정은 3박 4일 일정으로 계획하였으며, 대피소 예약 등 세부적인 사항은 몇 번의 지리산 종주 경험이 있는 동생이 준비하였습니다. 출발 전에 식량, 의약품 등 필요 용품을 구매하고 짐을 챙기다 보니 등산 배낭이 빵빵했습니다.



1일차 "어둠 속에서 시작된 약속"


사전 예약한 수원역에서 구례구역까지 가는 무궁화 기차에 올랐습니다. 밤에 이동하는 완행기차라 그런지 기차 내부는 차분한 분위기였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때는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중간에 오송역에서 동생과 합류하여 구례구역에 도착하니 밤 11시 44분. 구례구역 주변은 날씨가 흐리고 이슬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습니다. 기상을 확인해 보니 그다지 많은 비는 오지 않을 거라는 예보였지만 그래도 산중 날씨가 변덕이 심해 원래 계획한 대로 화엄사 방향으로 가도 될지 잠깐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쉬운 성삼재 코스보다는 원래 계획한 어려운 코스인 화엄사 방향으로 결정하고 동생과 같이 화엄사 방향의 택시에 올랐습니다.


화엄사 입구에 도착해서 우의를 착용하고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00:39분.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많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는 점점 거세지더니, 산길은 미끄러워지고, 옷과 배낭은 다 젖어 찬 기운이 스며들었고, 배낭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랜턴을 비추지 않는 공간은 암흑천지였습니다. 오르는 중간중간 길이 없어 제대로 올라가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악조건이었습니다.


0500 경 거의 어렵게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왜 이렇게 기쁘던지. 이러한 기상의 악조건 하에서의 신체적인 고통을 느껴본지가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따뜻한 대피소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달달한 3박자 커피 한 잔과 아내가 싸준 김밥, 초콜릿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날이 어슴프레 밝아오자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노고단 정상으로 가는 길에 뭔 바람이 그렇게 부는지. 성인 남성도 날아갈 정도의 강풍을 뚫고 노고단 정상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찰칵. 이후 첫날 일정대로 노고단대피소 – 노고단 – 임걸령 – 노루목 – 반야봉 – 삼도봉 – 토끼봉 – 연하천 대피소로 묵묵히 진격하였습니다. 첫날 숙소인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해서 전투식량과 라면을 끓여 소박하지만 근사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물티슈로 얼굴과 발을 대충 닦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자려고 보니 매트리스도 없고 이불도 없고 그냥 맨바닥이었으며, 히터도 나오지 않은 대피소는 너무나 추웠습니다. 매트리스와 이불을 가져와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몰랐던 것입니다. 자다가 너무 추워 가지고 갔던 옷을 다 껴입고, 양말을 신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그 날 밤은 매우 추웠습니다.



2일차 "냉탕, 온탕에서도 피어난 기대감“


연하천 대피소를 출발해 삼각고지 – 벽소령대피소 - 덕평봉 – 칠선봉 – 영신봉 – 세석대피소 - 연하봉 – 2일차 숙소인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산행중에 지리산의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풍광은 세상의 복잡한 여러 일들을 띠끌보다도 가볍다는 생각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튿날 도착한 장터목 대피소는 첫날 연하천 대피소와는 반대로 너무 더워서 자다가 중간에 깨 통로에 나와서 잘 정도였습니다. 장거리 행군, 밤에 냉탕, 온탕으로 점점 몸은 지쳐왔지만, 멋진 산과 맑은 공기, 다음날 드디어 천왕봉에 간다는 기대감으로 이틀째 밤을 어찌어찌 보낼 수 있었습니다.



3일차 “해는 떠오르고, 나도 빛나고"


드디어 기다리던 천왕봉 등정! 새벽 04:00 정도 일어나서 간단히 짐을 챙기고 일출 보러 갈 준비를 했습니다. 천왕봉 가는 산길은 생각보다 경사가 있고 바위로 이루어져 정상 정복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어두운 새벽 한 발 한 발 고지를 향해 걸어가다 보니 어느덧 정상. 천왕봉 비석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찰칵. 이후 일출을 보기에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다 최적의 장소를 확보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일출 전의 풍광은 너무나도 황홀한 시간, 천지가 창조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06:43분 드디어 일출. 천왕봉 정상에서 바라본 일출은 정말 멋졌습니다. 하늘은 붉게 물들고, 그 빛이 산을 따라 내려오고 주변 안개는 빛을 지탱하는 듯한 장면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옆에 계시던 아저씨는 웃으며 "지리산에서 이렇게 깨끗하고 멋진 일출을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하는 거여." 그러자 옆에서 또 다른 분이 말했다. "아녀, 5대는 덕을 쌓아야 혀!" 다들 일출을 바라보고 웃는 웃음에는 행복과 건강, 인생대박 등의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가 가득하였습니다.

일출을 본 후, 이제 하산. 하산하면서 바라본 경치는 "여기가 대한민국 맞지?" 싶을 정도로 멋진,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장관이었습니다. 대피소에 내려와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천왕봉에서 백무동으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백무동에 내려오니 12:30분. 인근 식당에 가서 잠깐 샤워할 수 있는지 말해 보니 가능하다고 해서 3일간의 땀 냄새를 기분 좋게 씻어내고 동생과 둘이 삼겹살 6인분에(평상시에는 둘이 삼겹살 2~3인분 정도면 충분) 맥주로 입가심하면서 우리들만의 멋진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자연, 멋진 일출, 맛있는 삼겹살을 먹으러 또 가고 싶은 지리산, 다시 지리산 등산 일정을 살펴보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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