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선택, 그리고 긴 인생 여정

“군인이 될 거야!" 그 한 마디가 34년의 인생 항로를 정하게 될 줄은

by 권일웅

저는 2025년 2월, 34년 해병대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현재는 00대학교 군사학 교수로 의미 있는 인생 2막을 시작하였습니다. 군 생활을 하면서 결혼하여 아들 둘과 내 집을 마련하였으니 큰 성공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삶은 되는 것 같습니다. 인생 2막과 함께할 등산과 여행 등 취미도 기회가 되는 대로 즐기려 하고 있고, 맛집과 가벼운 맥주 한잔을 좋아하는 중년 남자로서의 삶은 편안함과 나름대로의 여유를 선사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생의 대부분을 군인으로 산 제가 왜 군인이 되었고 왜 해병대를 선택했는지 짧게 정리해 보는 것은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인생 1막을 정리하고 인생 2막을 출발하는 저에게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고향은 평야가 많은 시골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학교 갔다 오면 나무를 대충 잘라 칼을 만들고 몇몇 친한 형, 친구들과 거의 매일 칼싸움을 하였습니다. 신나는 병정놀이였죠. 현장에서 형은 4성 장군, 즉 대장이 되었고, 우리는 말단 최정예 병사가 되었습니다. 대장과 졸병만 있는, 중간계층이 하나도 없는 기괴한 조직이었지만, 최전방에서 적과 치열한 칼싸움, 육탄돌격을 하여 반드시 이겨야 하는 사명감에 우리들의 눈은 불타올랐습니다. 대장의 "공격 앞으로!"라는 구령에 “와~~~”하고 상대편을 향해 뛰어가는 꼬마 병정들의 모습은 전격전의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로 저돌적이었고 칼 군기가 녹아 있었습니다.


어릴 적 우리는 서로에게 꿈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나는 대통령이 될 거야!" "나는 군인이 될 거야!"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마법사도 되고 싶어!"... 실현 가능성은 고민하지 않고 친구들보다 멋진 꿈을 이야기해야만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 꿈은 군인이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대통령보다, 마법사보다 더 멋진 꿈이 군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도 고등학교 때 어느 대학을 가야 할지, 인생의 항로를 어디로 잡아야 할지 등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휴가 나와서 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군인 형들의 씩씩한 모습과 태도는 어렸을 적 막연한 꿈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민하던 어느 날, 우연히 사관학교 지원 홍보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홍보문은 저에게 정말 완벽한 조건이었습니다. 학비와 의식주가 무료로 제공되고, 매달 품위유지비라는 돈까지 주는 신세계였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거나 힘든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사관학교를 가기로 결정하고 보니 땅, 바다, 하늘 중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 또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의 어린 마음으로는 통일이 되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 해군이 엄청 커질 거야’라는 막연한 생각과 집 근처 냇가에서 여름철이면 갈고 닦은 개 헤엄 실력의 자신감, 당시 현실적인 저의 모의고사 수준, 그리고 사관학교에 떨어지더라도 전기 또는 후기대학에 갈 수 있다는 썩 좋은 조건을 바탕으로 해군사관학교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해군사관학교에 가면 해병대 장교로 갈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지만, 저의 이런 간단한, 단순한 선택이 34년 군 생활 방향이 결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하니 부모님이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아! 내 인생은 역시 군인이야'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시골 마을에서는 사관학교에 입학하면 ‘누구네 아들 축 사관학교 합격’이라는 플랜카드를 동네 입구에 걸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도 서울대 0명, 경찰대 0명, 사관학교 0명 합격이라는 플랜카드를 교문 입구에 설치했던 기억이 납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여러 정황들이 저로 하여금 ‘나는 군인이 천직’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사관학교 1·2학년 저학년 생활은 많은 인고의 시간들을 견뎌야 하는 날들이었습니다. 때로는 이방인이 되어야 했고, 때로는 폭군이 되어야 했고, 때로는 철학자가 되어야 하는, 매일 매일이 도전적이고 긴장된 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3학년이 되어 적응이 되니 그때부터 벚꽃, 바다 등의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해군사관학교에서는 3학년 때 해군으로 지원할 것인지, 해병대로 지원할 것인지 가(假) 분류를 합니다. 당시 저는 해군과 해병대 중 어떤 곳을 선택할지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생도생활 2년을 경험해 보니 성격상 주로 좁은 함정에서 생활하는 해군보다는 넓은 지상에서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는 해병대가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과, 달리기를 하면 남들보다 잘 뛸 수 있다는 객관적인 사실이 별 고민 없이 해병대를 지원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때의 선택이 제 인생 해병대 34년의 복무가 결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긴 인생의 관점에서 봤을 때 너무도 쉽게 군인, 그 중에서도 해병대라는 좌표를 찍게 되었던 것이죠.


군 생활 중간중간 흔들림은 있었지만, 전역한 이 시점에 군인이었다는 사실에 후회는 없고 내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내 인생의 동반자인 군인의 삶, 멋진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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