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무거운 나를 하나씩 꺼내놓는 시간
오늘은 조금 가벼워졌다
불편해졌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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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 출생
2021년 <중앙일보> 중앙신춘시조상 등단
2024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
2025년 서울문화재단 첫 책 발간지워 선정
시란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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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그 여자 정육점은
꽃집 건너에 있다
나눠진 부위가 묵묵히 꽃을 읽고
꽃들은 생살을 읽어
맞은편에 피고 진다
선홍빛 웃음으로 온종일 화답하면
또 다른 탄생은 손끝에서 피어나
꽃다운 아득한 나이
그램으로 올려진다
살아온 날들보다
베어진 날 선명해서
대답없는 민얼굴 조화처럼 바뀌는 동안
독백은 유리창 너머
저절로 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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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를 따라갈래요
이국의 언어들이 공중을 헤엄쳐요
맛있는 눈인사에 잠깐씩 뻐끔뻐끔
손에선 말이 자라고
입맛은 비릿해요
발짓을 동원하면 빨라지는 말결들
반짝이는 눈빛이 비늘을 닮아가
외면한 그 순간마다
어항 속에 갇혀요
한 곳을 빙빙 돌아 지도는 어지럽고
물맛까지 달라져 얼굴색 변할 때는
연어를 따라갈래요
나 태어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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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과자
조금만 힘을 줘도
툭 하고 부러지는
확신의 맛을 살린 가느다란 막대 과자
한입에 밀어 넣다가 강한 말에 걸린다
오해와 이해 사이
떨어진 부스러기
훅 하면 사라져도 단호한 신념 같아
뒤끝은 바탕에 남아 제맛을 고집한다
반복해 씹을수록
불신은 고소해져
한 귀로 흘리면 빈틈으로 빠져든다
팽팽한 서로를 향해 완벽해진 겉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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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적 도서관
조용을 뺀 놀이터에
미래가 될 미끄럼틀
한번 타고 내려가면 빨라지는 이 기분
흙 묻은 나의 독서량 잡을 게 너무 많다
잘했어요 꽂아놓고
안 돼요 빼서 놀 때
궁금해진 손가락 어제를 앞지르면
턱걸이 읽는 시간에 무릎은 시소를 탄다
실컷 다친 오늘은
미끄러지는 암기 연습
놀자와 활자 사이 요구하는 장난들
성장통 페이지마다 포스트잇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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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의 성분
밑줄을 갉아 먹는데 새 이빨이 나왔다
비린 손 어두운 손 편식하지 않아서
진하게 건드릴 때는
손톱에 살이 찐다
오늘을 생략한 채로 미래로 옮겨 가면
가상의 얼굴들은 손끝에서 은밀해져
때 없이 닿기만 해도
웃음이 진해진다
나에게로 돌아오는 감정을 찾지 못해
맨몸으로 건너가 차가워진 목록들
눈 코 입 사라지는데
감촉만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