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과사자 Aug 07. 2021

로키산을 오른 다섯 살 다운증후군 소녀-2

콜로라도 Bierstadt Lake

한두 시간 거리 안에 아이를 업고 올라갈 수 있는 선택지는 그렇게 많지 않아서 비어스태트 호수를 다음 산행지로 정했다. 호수까지 1.6km, 난이도 쉬움에서 보통. 보통이란 말이 좀 걸렸지만 트레일이 짧으니 우리 체력의 딱 경계선인 것 같아 도전해보기로 했다.


5월 8일 토요일 오후 우리는 애 둘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비어스태트 트레일 헤드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지난주와 거의 같았다. 일 년에 한두 번 오던 길을 3주 연달아 가니 심드렁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주차장에 우리가 들어섰을 땐 앞차가 마지막 남은 자리를 차지하는 중이었다.


마냥 기다릴 순 없으니 좀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바람이 세고 공기가 차가워서 네 식구 모두 두터운 후드티를 입고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200미터도 채 안 될 거리가 몇 백 미터처럼 느껴졌다. 트레일 헤드에서 내리자 아이들이 등산지팡이 욕심을 낸다. 각자 한 개씩 짚고 산행 길로 들어섰다. 빽빽한 소나무 사이에 난 흙길이 잘 다져져 있어서 쉬운 곳에 왔다는 착각을 했다.


남편을 돌아보며 몇 번이나 좋지 않냐고 감탄했다. 두 돌도 안 된 사자를 앞세우고 걸어오는 남편은 표정으로 “글쎄..”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평균 해발 15m의 싱가포르에 오래 살았던 인도네시아인 남편은 기본적으로 산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 집 하이킹 특효약 콜라를 이번에도 일찌감치 땄다.


콜라를 몇 모금 마신 꽃은 등산에 박차를 가했다. 두 사람 붙어서기에 딱 알맞은 너비의 트레일 옆으로 경사가 져서 조마조마해하는 나와 달리 꽃의 걸음걸이는 안정적이었다. 흐뭇한 한 편으로는 꽃이 평범한 다섯 살이었다면 이 정도 산행은 충분히 해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 평범했다면.. 현실이 될 수 없는 가정은 그렇게 폭풍처럼 내 마음속에 몰려온다.


나는 평생 동안 평범했다. 그중에 평범 이하라 느껴지는 건 있어도 그 이상이라 여겨지는 건 없었다. 그런 나에게 특별한 아이가 찾아와 특별한 엄마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비정상. 불균형. 전위형 다운증후군. 그것이 내 딸 꽃이 가진 염색체이다. 700분의 1 중에서도 3%의 확률. 특별하지만 누구도 원하지 않는 특별함은 딸을 택했고 또 그 딸은 나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태어난 지 몇 시간 된 꽃의 다운증후군을 먼저 의심한 사람은 소아과 의사였다. 피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나는 전위형이면 평범하게 살 가능성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의사의 대답은 단호했다. No. 그 속에 나름의 기쁨은 있을 거라고 했다. 기쁨이라고..? 다운증후군과 이토록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또 있을까. 그런데도 의사와 병원 관계자들은 그 표현을 썼다.


우리는 니큐에 있는 꽃의 사소한 행동에 이미 웃고 있었지만 다운증후군이라는 충격에 꽃을 입양 보내는 것까지 고려했다. 며칠 간의 고민 끝에 우리가 키우기로 결정하고 나서야 나는 가슴으로 자식을 낳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모든 증상을 숨기고 스텔스기처럼 태어난 꽃은 건강했다. 심장 정상. 시청력 정상. 열이 나는 일도 드물었다. 그렇다고 꽃이 정상아가 되는 건 아니었다. 지난 5년 내내 로 머슬 톤, 즉 근긴장 저하는 꽃을 따라다녔다. 두 돌이 다 되어서야 젖병을 잡을 수 있었고 네 돌이 지난 지금에도 색칠을 거의 하지 못 한다. 그런 아이가 자기만 아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감동과 함께 슬픔이 한가닥 같이 삐져나온다. 꽃도 평범했다면..


우리 뒤를 따라 걸어오는 남편에겐 이런저런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어 보였다. 사자를 업는 것도 무거웠고 걸을 때는 말을 듣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꽃과 사자는 엄마 아빠를 번갈아 찾으며 우리를 더욱 힘들게 했다.


구비구비 돌 때마다 목적지의 조짐이 보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꼬부랑 고개 길이 이어질 뿐이었다. 산 반대편으로 보이는 풍경은 숨이 멎을 듯했다. 꼭대기마다 눈이 쌓여 있었고 소나무와 애스펀 나무 사이로 콘티넨탈 디바이드 도로가 보였다. 수시로 바뀌는 하늘의 구름은 우리 눈높이와 같았다. 그러나 우리가 올라가는 산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숨이 막혔다. 지그재그로 산 전체를 걸어 올라가는 난코스였다.


“우리 목적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남편과 나는 둘 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이들부터 살피고 있는 내게 남편은 자기를 좀 챙기라고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괜찮았다. 알아서 할 줄 알고 남편한테는 신경 쓰지 않은 게 미안했다. 간식을 건네주면서 일단 후드티를 벗으라고 했다. 이 날씨에도 땀 투성이었다. “이걸 왜 해야 되는 거야!” 후드티를 내던지며 남편이 투덜거렸다. 왜 해야 하는지 명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끝까지 안 가도 되니까 힘들면 돌아가자.” 그래도 당장 돌아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아서 일단 한숨을 돌렸다. 가족 활동이니 원하지 않으면 돌아가도 된다고 한번 더 말했다. 거기에 대한 답은 없이 남편은 호수가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다. 나도 초행길이지만 산을 올려다보니 소나무가 무성한 저 어디 즈음인 것 같다.


이 길이 최악인 건 지난주 갔던 드림 호수처럼 길 스타일이 바뀌는 것도 없이 고만고만한 길을 쭉 걸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곳을 걷는 건 마치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여정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끝이 없어 보이고 답답했다.


첫째 꽃의 발달은 늘 슬로 모션이었다. 14개월에 네발기기를 하더니 18개월에도 20개월에도 계속 기어 다니다가 23개월이 되어서야 두 발로 걸었다. 또래가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꽃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듯했고 소근육과 언어에서는 차이가 더욱 심각했다.


첫 몇 년은 매달 블로그에 기록하며 어떤 점을 보강할지 고민했지만 세 돌이 넘어가면서 갈 수 있는 목적지가 남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비어스태트 호수처럼 기미도 보이지 않는 목적지에 가는 동안 나름의 기쁨을 찾는 건 우리들의 몫이었다.


꽃과 사자는 우리와 달리 생생했다. More을 연신 외치는 아이들 때문인지 남편은 조금 더 가보자고 했다. 한 고비 올라가서 만난 하산객에게 물으니 거의 다 왔단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웃음이 나왔다. 다 왔어. 다 왔어. 주문을 외듯 올라갔다.


그때부터 하늘에 심상찮은 구름이 몰려왔다. 짜잔 하고 나타날 줄 알았던 호수 대신 눈이 잔뜩 쌓인 소나무 숲이 보였다. 조금만 더 가면 있겠지 했더니 이번엔 갈래길이 나타난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이정표엔 거리 표시도 없이 양쪽 다 비어스태트 호수라고 적혀있다. 어디로 가면 조금이라도 짧을까? 고민하는 순간 뒤에서 두 팀이 다가왔다. 사람들 따라가야지 했더니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한 팀씩 갈라졌다. 이 호수 정말 어렵다!


별로 좋지도 않은 촉을 따라 왼쪽으로 가다 보니 아무래도 이상하다. 다른 이정표가 보여서 뛰어갔더니 거리가 적혀 있었다. 지금이라도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게 나았다. 처음 본 표지판에서 아주 가까웠으나 숲과 날씨 때문에 가늠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체력이 고갈된 남편은 속도를 내지 못해서 내가 먼저 꽃을 데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5월의 비어스태트 호수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어느 트레일로 어떻게 왔든 그저 그곳에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바위산을 보여줄지 찌푸린 하늘을 보여줄지는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었다. 핼쑥한 얼굴로 사자를 업고 당도한 남편은 캐리어를 내려놓으면서 “그냥 호수네.”라고 했다. “그래, 그냥 호수야. 그래도 예쁘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챙겨 온 바람막이 잠바 중 큰 걸 입으라고 주니 “여자 걸 입으라고?” 피식 웃는 남편. 그래도 추운지 입고는 기념 셀카 찍을 때는 환하게 웃었다.


짙은 호수와 눈과 우리 네 식구만 보이는 사진을 남기고 하산을 시작했다. 꽃과 사자는 캐리어에 앉아 만족스럽게 초콜릿을 빨아먹고 있었다. 소나무 숲을 빠져나가기 전 남편을 보니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내가 사자를 업고 꽃은 손 잡고 걸어가기로 한다. 꽃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하산길 절반 이상을 걸었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웃었다.


꽃이 평범했다면.. 그랬다면 꽃이 조금 덜 힘들었을 것이다. 음식을 씹거나 가위질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기 위해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했을 것이다. 한 마디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 집중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남과 다른 행동을 해서 불편해하는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Happy라고 말한다. 장애는 꽃의 행복을 잠식하지 못했다. 기쁨은 다운증후군과 어울릴 수 없는 단어가 아니었노라고 오늘도 꽃이 내게 알려준다.

작가의 이전글 다운 공주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