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사자의 이야기
하늘나라는 여러 모양과 색깔을 하고 있는데 그중 화려함이 필요치 않은 곳에 아기 천사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하늘의 왕의 천사들이었고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아기 천사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아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작은 천사가 있었다. 하늘의 왕은 그 아기 천사를 에리엘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개와 고양이와 친하게 지내는 것처럼 그들은 모든 크고 사나운 짐승들과 친구였고 그 어느 짐승도 아기 천사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에리엘은 사자 가브리엘을 만났다. 그런 모습을 증명할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지만 가브리엘이 가장 힘세고 지혜로운 사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절친이 그러하듯 그들은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친구가 되었다. 둘은 같이 하늘을 달리고 구름밭에서 뒹굴었다. 기쁨과 평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들의 하루하루엔 그것만이 가득했다.
에리엘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가끔씩 무지개를 타고 하늘과 땅의 경계 지역으로 내려갔다. 에리엘은 땅이 궁금했다. 흘러가는 삶, 소멸하는 육신, 하늘로 돌아가는 영혼. 그런 것들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 떠오르는 듯했지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 했다.
에리엘의 속마음을 듣게 된 사자 가브리엘은 말했다. “이런 곳을 두고 저 불완전한 곳으로 가고 싶다고? 나라면 이곳에서 하루라도 더 완벽하게 지내겠어.” 가브리엘은 에리엘 주변을 돌며 자신의 머리카락 모양을 바꿔 보이며 장난을 쳤다. 깨끗하게 정돈된 이를 내보이며 씩 웃기도 했다.
에리엘은 그런 가브리엘을 향해 웃었으나 눈은 세상을 향하고 있었다. “음, 우리 에리엘. 그렇게 내려가고 싶은 거야?”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불멸의 영혼인 걸.” “흠, 그렇긴 해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방법이 있다고?” 에리엘의 눈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 빛났다. “사실 세상에 내려가는 게 금지된 건 아니야. 다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지.” “조건이라고?” “그래, 조건.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거야. 그러면 그 몸속으로 들어갈 수 있거든.” “그건 어떻게 찾는 거지?” “그거야.. 그 사람을 만나야만 해.” “만난다고..” 꿈꾸는 듯한 눈으로 반복하는 에리엘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가브리엘이 일깨웠다. “마치 우리가 만난 것처럼 말이야.” 에리엘은 알겠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뭐가 필요한데?” “그건 간단해. 땅에 내려가서 네가 찾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거지.” “사랑을 받는다고?” “맞아, 사랑. 세상에 내려가는 대가로 고통이 따를 수도 있어. 그 크기는 각자 달라서 나도 미리 말해줄 수 없어. 그런데 진정한 사랑을 받게 된다면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을 거야. 대신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문제가 되는 곳이 바로 저 세상이지.” “만약 사랑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데?” 가브리엘은 어깨를 한번 들썩였다. “그럼 네게 있는 사랑을 주면 돼.”
그 후로 에리엘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돌아다녔다. 하늘나라 과일을 먹고 있는 가브리엘에게 에리엘이 나타나 찾았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은 그 사람에 대해 가타부타 묻지 않았다. “여기 이 모든 걸 두고 정말 갈 수 있겠어?” 가브리엘과 에리엘은 하늘나라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보석이 없어도 빛나고 죽음도 괴로움도 없는 곳이었다. “응, 두고도 갈 수 있어.” 에리엘은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거든.” “그게 정녕 원하는 거라면 가도 좋아.”
가브리엘은 세상 가는 길로 에리엘을 데리고 갔다. “자, 갈 준비가 되었어?” 가브리엘이 물었다. “응.” 에리엘이 대답하자 가브리엘은 칼로 에리엘의 가슴을 찌르고 눈을 들여다보았다. 에리엘은 신음하며 공기가 되어 세상으로 내려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자 가브리엘은 가슴이 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완벽한 곳에 에리엘이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아차, 세상에 내려가다 보면 코가 납작해질 수도 있다는 걸 말 안 했네?” 멍하게 중얼거리며 돌아서던 가브리엘은 멈춰 서서 에리엘을 찌른 칼을 쳐다보았다. 가브리엘에겐 미래를 보는 눈이 있었다. “ 목소리도 남보다 늦게 찾을 수도 있는데 에리엘 괜찮으려나?” 그러다 “아, 이거 아픈데.. 그렇다고 그렇게 혼자 세상에 둘 순 없잖아?” 라며 자신의 가슴을 찔러 공기가 되어 에리엘을 따라갔다.
땅에서 임신을 준비하던 한 부부에게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의 코는 유난히 납작했다. 부부는 남들과 다른 아기를 사랑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사랑에 빠져 버렸다. 그리고 몇 년 후 부부에게는 다른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 부부는 가장 힘세고 지혜로운 동물의 이름을 따서 아기 이름을 지었다. 코가 납작한 천사와 사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아기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