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이 ‘사람’이 될 때
친절한 사람이 불편하게 느껴진 경험이 있는가. 혹은 내 경계심이 미안할 정도로 친절한 낯선 사람을 만난 경험이 있는가. 나는 홀로 떠난 제주 여행에서 만난 낯선 아저씨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
나는 항몽유적지라는 곳에 가고 싶었다. 항몽유적지는 제주도민들이 원나라 침략 세력에 대항해 싸웠던 역사를 기리는 곳이다.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유채꽃밭과 녹차밭도 잘 조성되어 있다고 들었다. 때는 4월 말, 유채꽃은 절정을 지났고 2박 3일 일정이었던 여행에 꼭 넣어야 할 코스는 아닌 것 같았지만, 뚜벅이인 나는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적당히 떨어진 목적지를 정해 이동하지 않으면 여행 내내 숙소 주변 동네에만 머무르게 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숙소 애월에서 항몽유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달렸다. 간간이 버스 정차 안내방송에서 들려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정류장 이름(소앵동 입구, 보로미 마을, 심지어 ‘던덕모롤’이라니!)을 알게 된 건 뜻밖의 소득이었고.
지도앱이 알려준 “항몽유적지 입구” 정류장에서 정확하게 내린 건 분명한데, 내려 보니 나는 인도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차만 쌩쌩 달리는 황량한 자동차 도로의 가장자리에 서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관광객에게 친절한 곳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때, 꽃무늬 원피스 차림에 어리둥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내가 길을 헤매는 관광객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다. 같은 정류장에서 내린 어떤 아저씨였다. 어디 가시냐고 묻는 아저씨에게 나는 항몽유적지에 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아저씨는 자기도 그리로 간다고 했고 그와 나는 자연스럽게 나란히 같은 곳으로 걷는 모양새가 되었다.
아저씨는 친절했다. 본인은 주민들이 유채 농사와 유적지 매점 운영을 위해 만들어진 조합의 조합원이고, 유적지의 매점은 조합원들이 번갈아가면서 지킨다고 했다. 시간이 되면 매점에 와서 커피라도 마시고 가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물론 농장과 매점 조합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나는 어딘가 심기가 불편해서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적당히 리액션만 했다. 아저씨는 나보다 20살쯤 많아 보였고, 낯선 동네의 살벌한 자동차 도로에서 처음 보는 아저씨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나에겐 매우 어려웠다.
다행히 유적지는 곧 모습을 드러냈고, 진짜 그곳에는 매점이 있었고, 아저씨는 또 한 번 음료수라도 마시고 가라고 권하셨다. 내가 마지못해 아저씨와 매점에 들어서자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카운터에 가 자리를 지켰고(교대근무 비슷한 형태였다) 나는 조그만 매점을 한 바퀴 돌고는 돌하르방 모양 플라스틱 용기에 든 한라봉주스를 골라 들었다. 카운터에 가서 계산하려 하자 아저씨는 거절했다. 그냥 드시란다. 정말 너무 감사하지만 나는 농촌 마을에서 자라면서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이렇게 인심 좋은 낯선 사람을 만난 적이 거의 없어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친절한 사람이라고 분류하기에는 내가 이제껏 알고 지낸 ‘친절한 낯선 아저씨’의 수가 0에 가까워서 그 친절한 선의를 선뜻 믿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번 사양하고, 사양을 거절당하자 어쩔 수 없이 적당히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게 친절한 낯선 아저씨에게 음료를 얻어먹었다.
순의문과 유적전시관, 녹차밭과 슬슬 초록빛이 도는 유채꽃밭까지 구경을 마치고,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유적지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는 유적지의 매점 바로 앞 정류장에서 탈 수 있어서 다행히 다시 자동차 도로 가장자리로 걸어가야 할 필요는 없었다. 인터넷에서 버스 시간표를 봐 놓았기 때문에 곧 버스가 온다는 걸 알고 있었고, 휴대폰으로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보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버스 기다려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물론 아까 그 아저씨였다. 매점에 있다가 내가 정류장 앞에 서있는 걸 발견하고 나온 모양이었다. 아저씨는 버스 5분 후에 온다며 걱정 말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이미 알고 있는데요,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또 ‘적당히’ 대답했다.
“네. 덕분에 길도 잘 찾고 잘 구경하고 가요. 감사합니다.”
이 짧은 만남은 나에게 불편한 여운을 남겼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여자였더라면 정말 아무 의심 없이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는 처음 보는 여자에게 호의일 뿐인 호의를 베풀지 말아야 하나? 혹은, 이 사람이 내 또래의 남자였다면 조금이나마 덜 복잡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래끼리는 여행지에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대화 주제 찾기도 더 쉽지 않을까?
문제는 한정된 내 인간관계의 폭이었다. 나의 친한 친구들은 모두 여성이고, 친하지 않더라도 알고 지내는 여성 및 남성 지인들은 모두 학교에서, 직장에서 만난 ‘사회적’ 관계의 구성원이었다. 집과 학교(또는 학원) 친구, 직장 동료. 이렇게 세 종류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나는 사람을 일종의 반(半) 차단 상태로 대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같은 고향 혹은 같은 전공, 아니면 비슷한 직종의 사람들만 내 주위에 가득했다. 저마다의 무수한 개성을 가진 세상의 사람들을 무작위로 알아갈 기회가 없었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인심 좋은 동네 아저씨, 기막히게 똑똑한 이웃집 어린이, 성격이 별난 마트 아르바이트생 등과 같은, 나와 사회적 공통분모가 거의 없는 사람들과 ‘남도 아니지만 친구도 아닌’ 관계를 왜 경험해보지 못했을까? 세대갈등과 성별갈등 같은 문제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더 심해지는 게 아닐까? 내가 친절해본 적이 없어서 그냥 친절한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불편한 심기는 꼭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남성을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내 이름이나 나이, 직함이나 출신지 따위가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경계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까? 아니면 들뜬 여행자의 마음 자세로 대화에 임할까? 아니면 예의 바른 아랫사람? 낯선 사람과 스몰토크를 할 때는 도대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타인을 이해하는 법은 어렵다. 내가 어떤 범죄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혼자인 여자’의 하소연 같은 것도 ‘악의가 없는 남자’에게 얼마나 와닿을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친절과 그에 대한 나의 내적 반응이 내가 자라온 사회를 조용히 비추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