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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Apr 23. 2023

고상지의 반도네온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빛난다. 그러나…

2018년 4월, 고상지 밴드의 콘서트에서 받았던 감동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둠과 적막이 흐르는 공연장. 뿌연 연기와 함께 보라색 조명이 서서히 켜지고 이와 함께 아무 인사도 예고도 없이 시작된 곡은 피아졸라의 <Finale(Tango Apasionado)>였다. 구슬프면서도 어딘가 끓어오르는 듯한 감정을 전달하는, 흡입력 있는 명연주였다. 그런데 연주를 방송으로 볼 때나 음원으로 들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공연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연주에 열중할 때 진지하고도 행복해 보이는 뮤지션의 모습과 그 엄청난 에너지였다. 또 인상 깊었던 건 자작곡 <출격> 연주였는데, 그냥 ‘이 분은 이 일을 사랑하는구나’가 느껴져 나까지 행복해질 정도였다. 이 곡의 창조자가 곡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선보이는 걸 지켜보는 일은 감동적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모습

고상지는 2011년 무한도전 <고속도로 가요제> 편에 출연하면서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를 우리나라에 널리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나는 그날 객석 맨 앞줄에 앉았기 때문에 연주자들의 표정뿐만 아니라 반도네온의 생김새까지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작동 원리는 아코디언과 비슷하지만 반도네온은 아코디언보다 작은 사이즈고, 건반이 피아노나 오르간처럼 생긴 아코디언과 달리 반도네온의 건반은 동그란 버튼 혹은 키보드 자판같이 생겨서 재미있었다. 반도네온을 보물상자 끌어안듯이 든 고상지가 마법 같은 멜로디를 잣는 그 현장을 직접 본 일은 내게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고상지는 카이스트에 다니다가 탱고 음악과 반도네온의 매력에 빠져 중퇴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공과대학으로 손꼽히는 카이스트를 그만두다니, 그것도 그 당시에 한국에선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엄청난 자기 주관과 용기가 없는 사람이면 불가능하다. 한편으로는 그의 열정적인 연주를 보고 있으면, 제 길을 너무나도 잘 찾은 사람인 듯 보였다. 특히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당시 직업은 행정 공무원, 음악은 취미일 뿐이었던 나는 고상지가 더욱 멋있어 보였고 부럽기까지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빛이 난다. 미래가 불확실하더라도 자기 삶에 관련된 결정권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있다는 믿음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세요!’라는 메시지를 외치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를 사회구조에서 찾으려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결정하고 실천하는, 어찌 보면 어른으로서 가져야 할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사회구조가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거의 마련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는 한, 평범한 한국인이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은 1. 아주 긴 시간을 2. 휴식기 없이, 즉 3. 생활비 지출 외에는 돈 쓰러 다닐 시간이 없을 정도의 나쁜 워라밸을 유지하며 일하고 숨만 쉬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할 여유나 실패해도 믿을 구석, 없다.


특히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에이지즘(agism) 때문에 공부를 새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 혹은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기에도 너무 늦은 나이라는 어떤 비공식적이고 심리적인 연령 상한선이 존재한다. 암묵적으로 공채 신입사원의 나이를 특정 연령대로 한정하는 회사들이 대부분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정말 최악인 점은 상명하복 시스템과 호칭 문화 때문에 어느 그룹에서든 나이가 많지만 직책은 막내인 캐릭터를 불편해한다는 현실이다. ‘어르신’에게 명령을 내리려니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고(?), 어르신 신입은 나이 막내 다루듯이 제멋대로 휘어잡을 수 없어 마음이 편치 않은 상사들의 횡포다. (애초에 후배와의 관계를 휘어잡으려고 욕심내기보다는 책임만 다를 뿐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해 주면 될 일이다)


그러니 누구든 최대한 이른 나이에 최대한 안정적인 길에 발을 담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 ‘안정적인 길’조차도, 망할 확률이 적은 대기업이나 망하지 않는 공공기관 정도의 옵션으로 획일화되어 좁혀지니 취업 경쟁이 치열하고, 기술과 실력보다 학벌이 중요하니 한국인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공부하는 기계처럼 보내야 한다. 태어나서 취업까지 어느 한 단계라도 삐끗하면 안정적인 길에서 멀어지고, 실패를 반복하고 수습할 수 있는 여분의 시간은 인생 설계도에 주어져 있지 않으므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성공의 안정 궤도에 올라야 한다) 심지어 이제 갓 말하기 시작한 어린아이들조차 경쟁 스트레스와 사교육의 굴레에 갇힌다.


나는 소위 일류 대학을 중퇴한 후 음악인의 길을 걷고 있는 고상지의 독특한 이력이 한국 사회에서 ‘엄청나게 용기 있는 선택’에 그치지 않고 ‘의외이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 혹은 ‘종종 보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안정적인 길에서 자진하차하는 용기가 대단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모두가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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