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챕터의 마지막 장

by 보라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초록이와 헤어졌습니다.


일상의 작은 것들에서 그의 부재를 실감합니다. 같이 줄기차게 다녔던 동네 카페에 발을 들이는 게 쉽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습관적으로 그에게 '구텐 모겐'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려 누운 채 폰을 찾다가 '아 맞다, 헤어졌지...' 한 적도 있습니다. 침실 벽과 부엌의 냉장고에 붙여 놓은 우리 사진은 아직 정리하고 싶지 않아 거의 그대로입니다. 얼마 전 하나만 뗐는데, 조금씩 현실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받아들여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가족, 친구, 풍경사진들 여러 장이 나름의 조화 속에 붙여져 있던 이 벽면에 덩그러니 생겨난 빈자리는 제 일상의 모양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사진이 떠난 빈자리를 보며 자학하듯 이별을 곱씹어봅니다. 이 자리는 그를 향한 존중과 예우의 표시로 계속 비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다른 사진들은 아직 붙어있고, 당분간은 그대로 두려고 합니다. 2020년, 2022년과 2023년의 우리, 그리고 2024년의 그의 사진입니다. 도대체 무슨 대단한 행복을 얻겠다고 이렇게 아픈 시간을 버텨야 하는 건지, 제가 바보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저는 어차피 불행할 이유를 찾으려 하는 건 아닐까 무섭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브런치를 열어보니 그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집니다. 초록이는 직간접적으로 제게 많은 글거리를 줬을 뿐만 아니라 제가 만난 사람 중 제게 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입니다. (독일어로 번역한) 제 글을 읽고 예리한 피드백과 다정한 칭찬을 아끼지 않던, 누구보다 저의 글에 애착을 가졌고 글쓰기를 응원해 주던 사람이 이제는 제가 가장 큰 상처를 안겨준 대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베를린으로 온 지 1년도 안 됐을 때 초록이를 알게 됐으니, 베를린에서의 제 삶의 곳곳에는 초록이와의 기억이 서려있는 곳, 우리의 흔적이 남아있는 요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것들을 피해 사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요. 이것들을 예기치 못하게 발견할 때마다 울기보다는 미소 지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와 함께 나눴던 이야기를 전한 글들, 그와 함께 갔던 장소, 함께 불렀던 노래, 그가 좋아하던 내 컵, 내가 좋아하던 그의 사진... 이런 것들을 다시 접할 때 슬퍼지기보다는 감동을 받는 마음 상태를 가지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이렇게도 사랑 많고 똑똑한 사람이 내 삶에 5년 가까이 있어주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는 감동이 언젠가는 아픔보다 크게 느껴지기를 정말로 바라고 있거든요.


지금의 아픔이 저에게 그리고 그에게 이 시점에 꼭 필요했던 양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챕터 다음에는 또 다른 챕터가 분명 시작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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