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김을 구우며

by 보라

독일어 어학원생 시절, 수업에서 고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먹으라’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식문화를 소개했다. 한국인들이 열심히, 장시간 일하는 문화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열정이 (약간의 보상심리처럼) 아주 높다는 점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전통음식보다는 한국인의 치킨 사랑, 길거리 음식의 다양성, 쉼 없이 새로이 개발되는 외식 메뉴와 식료품들 등 우리 시대의 음식 문화를 소개했다. 특히 그중 김치냉장고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클래스메이트들이 아주 흥미로워했다. 생각해 보면 작은 생활용품도 아니고 어떤 가전제품 종류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발명되어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재미있지 않은가? 그만큼 한국인은 ‘김치를 즐겨 먹는다’ 정도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음식에 참 진심인 사람들인 것 같다. (우리 아빠의 가장 큰 걱정도 내가 독일에서 맛없는 것만 먹고 있진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음식은 단순히 욕구충족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맛있는 음식은 고된 노동의 대가이자, 팍팍한 일상의 한줄기 쉼터가 된다. 직장인의 일과를 설레게 하는, 학업의 고역을 잊게 해 주는 점심시간 그 한 시간은 단지 배를 채우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다. 바깥세상에서 얻은 한을 밥상이라는 한 뼘짜리 일상의 공간에서 음식으로 승화시킨다고 하면 과장일까.


나 역시 맛있는 음식을 정말 좋아한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한국처럼 맛있는 음식이 비교적 낮은 가격에 도시 곳곳에 널려있지 않다. 독일 음식은 대개 짜고 지루하다. 가장 유명한 음식이 맥주와 소시지이니, 말 다 했다. 독일에 온 후로 나는 요리를 어쩔 수 없이 시작했고, 이런 상황인 만큼 내친김에 요리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요즘은 베를린에만 해도 한식당이 수 십 개는 되지만, 한국음식은 직접 해 먹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여기서 파는 것보다 맛있기까지 하다. 그래서 베를린에 살면서 한국에서도 해본 적 없는 요리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김밥은 특별한 날이면 늘 엄마가 싸주니 얻어먹었고 그냥 당길 때는 김밥집에서 싸게 구할 수 있으니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독일에는 아쉽게도 아직 김밥천국이 진출하지 않았고 가끔 한식당에서 김밥을 팔긴 해도 한 줄에 만 원이 훨씬 넘는 가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김밥을 직접 싸기 시작했다. 닭개장, 김치찜, 제사 때 해 먹는 산적꼬치등, 한국에선 직접 해먹을 엄두도 못 냈던, 혹은 그럴 이유도 없었던 메뉴들이 이제는 어렵지 않다.


얼마 전부터는 집에서 김을 굽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귀찮았지만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낱개포장 된 조미김은 가격에 비해 양도 적고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생김 한 묶음을 사 왔는데, 베를린에 와서 직접 구워 먹어보니 조미김에 비하면 맛이 가히 감격적이었다. 한국에선 조미김이 그리 비싸지 않으니 직접 김을 구워 먹는 집이 이제는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김 굽는 방법과 그 습관을 배웠는데 그게 지금 톡톡히 도움이 된다. 레시피는 또 얼마나 간단한지, 참기름과 올리브유를 바르고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 소금을 뿌리면 끝이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한번 구워 놓으면 너무 빨리 다 먹어치운다는 점?


김은 먹거리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탄소배출이 가장 적은 종류에 속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김을 키워 반찬으로 사용하는 전통을 가진 나라가 전 세계에서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와 독일어로는 미역과 김이 뭉뚱그려 해초라고 불린다. 우리 삶에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 다른 언어세계에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 정말 재미있다. 한류 열풍이 조미김에까지 확대되어 외국인들에게 조미김이 인기라는데, 고소하고 짭짤한 맛뿐만 아니라 바삭한 종이같이 생겼어도 입에서 녹는 독특한 식감이 비한국인들에게는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라고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바다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자기네 조상들은 지금껏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어떤 것이 상상외의 맛을 내는 그런 놀라움이 아닐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 조상들은 새로운 메뉴를 얼마나 열정적으로 찾아다녔기에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검은 가락들을 모아 말려서 먹을 생각을 했을까. (감사하다는 뜻이다.)


특정한 한국 음식이 당길 때 나는 내가 한국인임을 실감한다. 독일에 온 지 첫 한 달은 한식을 전혀 먹지 않았고, 쌀도 김치도 그리워하게 될 줄 몰랐다. 한국에서 몇 년 동안 자취할 때도 냉장고에 김치가 없이 지냈기에 나는 내가 김치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사실은 한국에서는 꼭 김치가 아니더라도 매콤 달콤하거나 얼큰한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니 독일에서의 첫 한 달은 일부러 한국 음식을 안 먹었다기보다는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한국 음식 없이 버틸 수 있는지 나도 몰랐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베를린에서 한국을 비롯한 중국,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수입 식료품을 파는 일명 ‘아시아 마트'에 가는 일이 처음에는 부끄러웠다.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아시아마트에 들어가면 누군가의 눈에는 ‘쟤는 저럴 거면 왜 독일에 와서 산다는 거야?’ 이렇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을까. 아무도 내게 주목하지 않을 거란 사실은 직시하지 못하고 말이다. 그 근본 없는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처음으로 아시아마트에서 장을 본 건 몸에 으슬으슬 한기가 돌고 소화도 잘 안 되는 증상이 시작되어서였다. 크게 아픈 건 아닌데 몸이 허해진 기분. 내게 필요한 건 집밥이라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들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아시아마트에서 간편 된장국이며 보리차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제야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그날 장본 것들은 사진도 찍어 두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이야 아시아마트에 가는 일이 민망하기는커녕 내 집처럼 편안하다. 어떤 사람들이 한국 식료품을 사가는지 몰래 관찰도 하는데, 외관상 한국인 아닐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꽤 많다. 심지어 라면, 만두, 조미김 정도는 그냥 큰 독일 마트에 가도 파는 걸 보면 세상이 참 빠른 속도로 한국 음식에 매료되어 가고 있나 보다. 이제 독일 대도시에서는 제철나물을 제외하면 웬만한 한국 식재료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김밥천국이나 백반집 같은 식당 형태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독일에서 한식당을 여는 상상을 한다. 한식의 맛 자체도 분명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 것이고, 간단하지만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한국의 외식문화가 이곳에서 참 그립고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수나 수제비, 아니면 계란밥에 김 같은 메뉴는 재료가 그리 비싸지도 않고 준비도 어렵지 않으니 정말 잘 팔릴 것 같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 와중에 3개월 일하고 3개월 쉬면서 굶어 죽지도 않을 방법이 있을지를 쓸데없이 미리 고민하기도 하고 말이다.


독일에서 김을 구우며 생각했다. 나의 베를린 아파트에는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적인 것이 야금야금 더 큰 비중을 차지해가고 있다는 걸. 머지않아 나는 깍두기도 담을 것 같고, 떡갈비도 만들고 청국장도 해 먹을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느 챕터의 마지막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