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 속에서 피어난 따뜻한 기억과 사랑
북극 한파가 몰아친다는 예보는 며칠 전부터 이어졌다.
날씨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 댁의 낡은 창문 틈이 떠올라 마음이 먼저 서늘해졌다. 아침부터 길을 서둘러 해가 지기 전 어머니 집에 도착했지만, 보일러를 틀어도 방 안의 온기는 아득하게 더뎠다. 연일 이어진 추위가 방 안 구석구석에 뿌리라도 내린 듯, 찬 기운은 좀처럼 물러나지 않았다.
그날 밤은 유난히 깊고 차가웠다.
패딩 조끼에 두 겹의 이불을 덮어야 겨우 잠이 들었고, 자정을 넘겨서야 공기가 아주 조금 풀리는 듯했다. 어머니를 바라보니 이불을 반쯤만 덮고 누워 계셨다.
살며시 덮어드리자 “괜찮다”며 웃으셨다. 오래도록 추위와 함께 살아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단단하고 수줍은 웃음이었다.
눈을 감으니 오래전 겨울이 다시 떠올랐다.
웃풍이 가득하던 낡은 집, 솥이 걸린 방 하나만이 촉촉한 온기를 품었던 시절, 그 방의 온돌 가장자리를 벗어나면 곧장 냉기가 발끝을 파고들었다.
그래도 가족들이 모여 찬 기운을 몸으로 막으며 함께 겨울을 견디던 때였다. 자식들은 따뜻한 방에서 재우면서도, 어머니는 늘 군불도 없는 방을 택하셨다.
“너희 아버지가 저 바다에서 얼어붙는 추위를 견디는데, 내가 따뜻한 방에 누워 있을 수 있겠나.”
아버지가 바다에서 보내던 거친 생활 앞에서, 어머니는 늘 마음 한 조각을 내어놓듯 추위를 감내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괜찮다’는 말이 결코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잠든 어머니 얼굴을 조심스레 바라본 뒤 전기장판의 온도를 확인했다. 손끝에 따스함이 닿는 순간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그제야 보일러를 끄고 조용히 잠 속으로 가라앉았다.
아침 일곱 시 반. 문을 여니 하얀 눈이 밤새 조용히 내려와 마당을 덮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30여 년 만의 한파”라고 했지만, 눈은 여전히 반가운 손님처럼 고요하게 빛났다.
그런데 마당 한가운데, 이미 눈을 쓸고 있는 어머니의 작은 등이 보였다.
“미끄러워요! 넘어지면 큰일 나요!”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높아졌다. 어머니는 뒤돌아 살짝 미소를 지었고, 나는 서둘러 내려가 함께 눈을 밀었다. 삽이 눈을 가르며 나는 소리 속에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미안함과 애틋함이 마음에 잔잔히 퍼졌다.
남해 끝자락. 국도19호선의 종점인 미조마을에서 눈은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진눈깨비 한 줌에도 설레던 어린 시절이 지나갔어도, 어머니에게 눈은 여전히 귀한 손님이었을 것이다. 문득 생각이 머물렀다. 어머니는 눈을 치우는 것이 아니라, 오랜만에 찾아온 기억 하나를 손끝으로 쓰다듬고 계신 것은 아니었을까.
눈을 모두 치운 뒤 나는 넉살을 부렸다.
“어머니, 나가서 눈 구경이나 합시다.”
그 말에 어머니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우리는 마당을 나서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몇 걸음 뒤에서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그 발걸음이 유난히 조심스럽고도 이상할 만큼 가벼웠다. 마치 지금 눈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 자신의 기억 속 눈밭을 다시 걷는 사람의 걸음처럼 보였다.
하얀 골목길에 어머니의 발자국이 한 줄로 이어졌는데, 그 자취는 마치 잊힌 겨울의 장면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어 밟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순간, 어머니의 걸음과 기억의 시간이 어딘가에서 포개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한파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조용히 가슴을 데웠다.
매서운 한파가 내려준 하얀 눈이, 오히려 따뜻한 하루를 만들어주었다.
혹독한 겨울의 추위만큼은 빨리 지나가기를.
그러나 오늘 어머니의 그 뒷모습과 발자국만은 오래도록 내 마음 한켠에 머물러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