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산 첫날 밤

전포동의 철대문, 혼자가 되는 법을 배우던 밤

by 세바들

부산에 도착한 첫날, 세상의 모든 감각은 낯설게 재편되었다. 전포동의 비탈진 고갯길, 불규칙하게 늘어선 돌계단을 숨 가쁘게 오르자 낡은 철대문 하나가 나타났다. 머리를 숙여 문을 밀고 들어선 방안에는 난생처음 맡아보는 타향의 냄새가 고여 있었다. 집에서 쓰던 눅진한 솜이불과는 전혀 다른, 바스락거리는 낯선 이불 아래로 몸을 밀어 넣었다.


긴 이동의 피로와 부모 곁을 떠나왔다는 불안이 뒤섞여 몸은 무거웠지만, 잠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내가 정말 이곳에, 거대한 도시의 한복판에 와 있다는 사실을 하나씩 확인해 나갔다.


창밖에서는 밤새 차들이 거칠게 포효하며 달렸다. 시골의 밤이 만물이 잠든 고요의 시간이었다면, 부산의 밤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기계적인 소음의 연속이었다. 그 낯선 소리들은 한동안 나를 위협하듯 방안을 부유했다.


불을 끄자 어둠은 더 짙게 내려앉았다. 그제야 내가 온전히 혼자라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낮에는 분주함 속에 감춰두었던 마음의 허기가 밤이 되자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집에서는 당연하게 여겼던 밥 한 끼의 온기, 무심하게 오가던 말 한마디가 그날은 유난히 멀게만 느껴졌다. 연탄보일러가 부지런히 돌아가 방바닥은 뜨거웠지만, 마음속의 냉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이불 속에서 가만히 나의 숨소리를 세어 보았다.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자각이 차가운 이성으로 내려앉았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공중전화기를 찾아 동전을 넣는다 해도 누구에게 목소리를 기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도회지라는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에 던져진 외로운 섬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돌아가고 싶다는 유혹에 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수화기를 드는 순간 무너져버릴 마음을 알기에 꾹 참아냈다. 이제는 그리움조차 혼자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부산의 첫날 밤은 잠을 자는 밤이 아니라, 비로소 어른처럼 혼자 서는 법을 배우는 밤이었다.


이른 새벽, 작은 창문 너머로 푸르스름한 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외투를 걸치고 옥상으로 오르자, 어제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영도 앞바다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출항하는 화물선, 부전역을 가로지르며 대지를 흔드는 열차의 궤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압도적인 풍경 앞에서 나는 비로소 가슴으로 느꼈다. 나는 이제 어머니의 그늘을 벗어난 타향인이라는 것을. 지금까지의 안온했던 생활 방식과 좁은 생각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는 서늘한 다짐이 발끝에서부터 차올랐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비벼보아도 냉기는 살갗을 뚫고 깊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 추위조차 이제는 내가 스스로 막아내야 할 현실임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길을 향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나 역시 그 거대한 행렬의 일원이 되어야 했다.


나는 미술 선생님의 곁을 떠나며 붓을 내려놓았지만, 그 작은 옥상 위에서 다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종이 위의 그림이 아니라, 내 인생이라는 광활한 캔버스에 그리는 '홀로서기'라는 이름의 커다란 밑그림이었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날 새벽 전포동 옥상에서 느꼈던 그 차가운 공기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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