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카로운 눈빛 속에 숨겨진 것은 누구보다 뜨거운 사랑이었다. 엄격한 꾸지람과 따뜻한 손길을 동시에 건네던 미술 선생님, 그 기억은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깊은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학창 시절 많은 스승을 만났으나, 내 기억의 가장 깊은 곳을 차지한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가장 많이 혼내셨던 미술 선생님이다. 중학교 3년 내내 내 곁을 지켰던 그녀는, 내게 가장 가혹한 스승이자 가장 아픈 그리움이다.
선생님은 대학 시절 펜싱 선수로 활동했다고 들었다. 체격이 좋고 외모는 단정하며 고왔으나, 눈빛만큼은 언제나 찌를 듯 날카로웠다. 그녀가 교실에 들어서면 소란스럽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곤 했다. 특히나 반장이었던 내게 선생님은 유독 엄격했다. 친구들의 준비물이 미비하거나 태도가 흐트러지면, 그 모든 책임은 어김없이 내 몫이 되었다. 교무실 앞에 홀로 서서 벌을 받던 날들, 억울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검객 같은 그녀의 눈빛 앞에서 나는 단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해군 교육청 주최 학예발표회가 열렸다. 학교 대표로 출전한 나는 선배 신경혜와 함께 선생님의 집중 지도를 받았다. 그녀의 지도는 펜싱 경기처럼 분명하고 단호했다. 그 서슬 퍼런 가르침을 따라 붓을 휘두르면 신기하게도 상장이 따라왔다. 전교생 앞에서 교장 선생님께 상을 받던 날, 선생님은 늘 한 걸음 뒤에서 아무 말 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잊지 못할 기억은 마산에서 열린 경남교육감 주최 미술대회였다. 시골 소년에게 마산은 낯설고 거대한 도시였다. 대회를 위해 하룻밤을 묵어야 했던 그곳에서, 나는 선생님의 전혀 다른 얼굴을 보았다. 학교에서는 차가운 검객이었던 그녀가, 낯선 길 위에서는 우리의 손을 꼭 쥐어주었다. 오른손엔 나의 손을, 왼손엔 경혜의 손을 잡고 걷던 선생님. 여관방의 눅눅한 공기와 낯선 음식의 향기 속에서 전해지던 그 손등의 온기는, 사춘기 소년의 마음속에 아주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풍경으로 남았다.
그곳에서도 입선 소식을 들고 돌아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때부터 내 마음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대회 출전이 나의 열정이 아닌 선생님의 욕심처럼 느껴졌다. "특기생으로 진학해라, 더 정진해라"라는 격려가 나에겐 숨 막히는 구속복처럼 다가왔다. 사랑이 깊을수록 반항도 날카로워지는 법일까. 나는 점차 선생님의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학교 환경미화 작업을 자처하며 포스터를 붙이고 정리를 도맡았던 것도, 실은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한 비겁한 도피처였다. 나는 그녀로부터, 그리고 그녀가 점지해 준 나의 미래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결국 나는 미술과 그림을 무참히 내려놓고 공대로 향했다. 그것이 선생님께 줄 수 있는 가장 큰 복수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림과 작별한 후, 치열한 직장인의 삶을 사느라 단 한 번도 붓을 잡아보지 못했다. 사회생활에 충실해야 한다는 핑계 뒤에 숨어 미술과는 담을 쌓고 지낸 세월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미술이라는 미완의 도전을 단 한 순간도 놓아본 적이 없다. 도망치듯 떠나왔으나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그 세계는, 내가 외면하려 했던 선생님의 기대와 닮아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버리고 싶었던 것은 그림이 아니라 나를 향한 선생님의 무거운 기대였음을, 그리고 그 무거움이야말로 나를 지탱하던 가장 뜨거운 사랑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직장 생활이라는 핑계로 밀어두었던 나의 재능이, 사실은 선생님이 내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었음을 깨닫는 지금,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이제는 안다. 미술 선생님은 내 삶의 가장 엄격한 검객이었으나, 동시에 가장 따뜻한 손을 내밀어준 은사였다는 것을. 내가 차마 펼치지 못한 도화지 위에는, 여전히 나를 기다리는 선생님의 예리한 눈빛과 마산의 밤거리에서 나누었던 온기가 고스란히 고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