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시봉 끝에 핀 버지니아 울프
우리 담임 선생님의 별명은 '변사또'였다.
그해 시골 학교에 새로 부임한 그는 자그마한 체구에 연한 카키색 점퍼를 유니폼처럼 입고 다녔다. 그의 오른손엔 늘 작은 지시봉이 들려 있었는데, 학생들이 산만해질 때면 그것으로 제 손바닥을 ‘딱딱’ 쳤다. 그 건조한 소리가 들리면 교실의 소음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사실 그 별명에는 아이들의 양가적인 마음이 담겨 있었다. 서슬 퍼런 규율의 집행자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전 속 인물처럼 허허실실 우리와 어울려주길 바라는 마음. 선생님은 그 별명을 알고 나서도 화를 내긴커녕 "그래, 내가 너희를 수청 들게 하러 온 변학도다"라며 능청을 떨었다. 그럴 때면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사또와 백성 사이의 벽은 허물어지곤 했다.
변사또 선생님은 유독 시를 사랑했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마다 시를 낭독하게 했는데, 축구공만 쫓던 사내아이들의 투박한 목소리로 시 구절이 낭송될 때면 묘한 이질감이 교실을 채웠다. 녀석들은 "한 잔의 술을 마시고~"라는 대목에서 짓궂게 술 마시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쳤지만, 선생님은 그 장난조차 시의 일부로 받아주셨다.
가을이 되면 나는 지금도 선생님을 떠올린다. 그 계절과 선생님을 이어준 것은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였다. 선생님은 그 속에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이야기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말이다, 마음이 아주 투명해서 깨지기 쉬웠던 사람이었어."
선생님의 그 한마디는 시험에 나올 지식보다 강렬하게 남았다. 뒷자리 친구가 "선생님, 그 여자 예뻐요?"라고 물었을 때, 선생님은 지시봉으로 창밖의 높은 하늘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 하늘보다 깊은 눈을 가졌을 거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에게 버지니아 울프는 작가이기보다, 가을을 품은 어떤 이름처럼 남았다. 런던의 안개나 현대문학의 기법 같은 건 몰랐지만, 선생님의 지시봉 끝이 가리키던 그 아스라한 동경만은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박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정답이 아니라 낭만이었는지도 모른다. 입시와 가난, 비좁은 교복 속에 갇혀 있던 우리를 유일하게 해방해주던 시간. 변사또 선생님은 지시봉이라는 지팡이를 휘둘러 우리를 좁은 교실 밖, 시의 세계로 인도하던 마법사였다.
장년이 된 지금도 가을이 깊어지면 그 이름은 조용히 돌아온다. 아마도 그 모든 시작은, 손바닥을 딱딱 치며 시를 읽어주던 한 국어 선생님, 나의 변사또 선생님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