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미조 177번, 닿지 못한 10원의 마음
부산에 온 지 며칠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골목 어귀, 구멍가게 앞에 놓인 공중전화기가 자석처럼 내 눈길을 끌어당겼다. 전국적으로 자동화 전화가 보급되기 전, 공중전화는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다. 밤이면 주인 아주머니가 정성스레 닦아 가게 안으로 들여놓았다가, 아침이면 다시 상전처럼 모셔져 나오는 ‘관리형’ 전화기였다.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서성이자 가게 주인이 의아한 눈길로 말을 걸어왔다. 낯선 도시에 갓 상륙한 시골 아이의 행색이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어디서 왔느냐는 물음에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하고 싶다 답하자, 아주머니는 투박하지만 다정한 사투리로 시외 전화를 거는 법을 차근차근 일러주었다.
고향 집에는 전화기가 있었지만, 이 거리의 공중전화로는 곧장 연결할 수 없었다. 반드시 시외 교환원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운 여정이 필요했다. 고향 집의 전화기는 수동으로 손잡이를 돌려 신호를 보내는 이른바 ‘딸딸이(자석식)’ 전화기였고, 번호는 '남해 미조 177번'이었다. 교환원에게 그 번호를 대고 연결을 간청해야만 비로소 어머니의 숨소리에 닿을 수 있었다.
눈앞의 공중전화는 시내 통화만 가능했다. 시외 통화를 하려면 먼 전화국까지 달려가 신청서를 쓰고, 연결될 때까지 수십 분을 마냥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시내 요금은 3분에 10원. 나는 주머니 속 10원짜리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소년의 체온이 옮겨간 동전은 어느새 뜨끈해져 있었다.
주인의 손길이 닿아 윤기가 흐르는 공중전화 다이얼에 손가락을 넣어본다. 숫자를 돌리면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긴 호흡이 필요했다. “차르르-” 하고 돌아오는 그 짧은 소음은 전화를 거는 이에게 묘한 긴장과 설렘을 안겼다. 하지만 나는 그 다이얼을 끝까지 돌리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와의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붉은 전화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지만, 마음속에선 이미 어머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맴돌았다. 홀로 외딴섬에 남겨진 아이 같은 기분이었다. 도회지로 떠나온 이 선택이 나의 미래를 향한 첫걸음이라는 사실이, 그날따라 유난히 무거운 납덩이처럼 어깨를 눌러왔다.
어머니 역시, 7남매의 장남이자 집안의 장손을 먼 타지로 떠나보내고 밤잠을 설치고 계실 게 분명했다. 수화기를 들었다면 나는 어떤 말을 내뱉었을까. 아마 어머니의 첫마디는 뻔했다. “밥은 묵었나?” 그 투박한 안부 한마디에 나의 팽팽했던 결심이 단숨에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잘 지내고 있다는 씩씩한 거짓말조차 목이 메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끝내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주머니 속 동전은 침묵했고, 며칠 만에 마주한 공중전화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돌아설 때 가장 크게 들린 것은 전화기의 기계음도, 도시의 소음도 아닌 내 안의 깊은 침묵이었다. 그 침묵을 삼키며 나는 비로소 소년의 허울을 벗고 홀로 서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