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어머니의 밥상

멸치 찌개와 갈치호박국의 기억

by 세바들

하루, 이틀. 부산에서의 봄과 여름은 낯선 도시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저 허기를 채우는 생존의 문제였으나, 고향 집에서의 밥은 사랑으로 가득 찬 하루를 건네받는 경건한 일이었다. 혼자 먹는 무미건조한 밥이 익숙해질 즈음, 나는 운명처럼 어머니의 밥상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어릴 적부터 반찬 투정이 유난히 심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칼날처럼 명확하여 어머니를 늘 곤란하게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식의 투정이 익숙한 듯 그 까다로운 입맛을 어떻게든 맞춰주려 애쓰셨다. 식사 예절만큼은 엄격하게 가르치셨지만, 혹여나 자식의 식사량이 줄어들까 전전긍긍하며 당신의 손맛을 녹여내셨다.


남해 바다는 언제나 싱싱한 제철 은혜를 우리 집 식탁 위에 아낌없이 올려주었다. 동네에서 음식 솜씨 좋기로 소문난 어머니의 손을 거치면 평범한 식재료는 맛의 향연으로 변했다. 물메기탕의 시원한 국물, 청량한 청각오이냉국, 입맛 돋우는 물회비빔밥과 쫄깃한 문어찜까지. 어머니의 부엌은 거대한 바다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 풍요로웠다.


특히 아버지가 밤새 사투 끝에 잡아 온 은갈치는 귀한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 보석을 다루듯 어머니의 칼질은 부드럽고 정성스러웠다. 노릇하게 구워낸 토막 갈치의 부드러움도 일품이었지만, 내가 가장 사랑한 것은 '갈치호박국'이었다. 달큰한 호박과 은갈치가 만나 빚어내는 남해 특유의 감칠맛은 어머니의 자부심이자 내 유년의 가장 소중한 맛이었다.


우리 집은 조부모님을 포함해 열한 명의 대가족이 복작거리는 집이었다. 하나뿐인 손자인 나에게 할머니의 특별 대우가 쏟아질 때면, 어머니는 내심 안절부절못하셨다. 혹여 귀한 대접에 버릇없이 음식을 가려 먹게 될까 봐, 때로는 나를 조용히 불러 "밥상머리 투정은 용서치 않겠다"는 서슬 퍼런 눈빛을 보내기도 하셨다.


그 엄격한 눈빛과 따뜻한 손맛, 부러움 섞인 가족들의 웃음소리까지 모두 시골집에 두고 왔다. 이제 나는 다른 세상 속을 홀로 걷고 있다.


부산의 단출한 밥상 앞에서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어머니는 단순히 음식을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신의 헌신과 희생을 국그릇에 담아 자식에게 건네주셨다는 것을. 눈을 감으면 어머니의 낮은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예야, 밥 묵어라.”


지금 나의 밥상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적막한 시간일 뿐이다. 맛과 양을 고민해 줄 대상도, 젓가락 끝을 눈여겨봐 줄 사람도 없다. 밥상에 올랐던 그 시절 음식들이 최고의 미식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혀끝의 미각이 아닌, 심장 끝의 그리움으로 기억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의 밥상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인생의 지혜와 가족의 온기를 담은 성전이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부산의 밥상 위에는 '음식'만 있었지만, 고향 어머니의 밥상 위에는 온전히 '나'라는 존재가 담겨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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