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처음 번 돈

홀로서기의 안도감과 어머니의 투박한 손마디

by 세바들

부산은 이제 성장의 단계를 지나, 누군가에게는 정착의 기회를 내어주고 있었다. 갓 전역한 나는 사회 초년병으로서 이곳저곳의 취업 현장을 발로 뛰기 시작했다. 부산지하철 건설이 본격화되고, 1985년 개통 소식과 더불어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개최라는 희망적인 뉴스가 연일 이어졌지만, 정작 내 앞의 취업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나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얻기 위해 전역 전 군인의 자세로 다시 나를 몰아붙였다. 강도 높은 집중 끝에 최고 수준의 자격증을 취득했고, 마침내 당시 취업 준비생들의 선망이던 정보통신회사에 입사하는 영광을 얻었다.


간절히 원하던 직장이었지만, 생활은 치열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렀다. 그러나 어떤 역할이 주어져도 남들과는 다르게 익히고, 끝내 결과물을 만들어내겠다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렇게 받은 첫 봉급은 타 사업장에 비해 적지 않은 액수였지만, 하숙비와 식대를 제하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처음으로 돈을 받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봉투는 얇았고, 손에 쥐었을 때 묘하게 따뜻했다. 굳이 숫자를 세지 않아도 많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그 무게는 이상하게도 가볍지 않았다.


당시에는 첫 봉급은 많고 적음을 떠나 부모님께 드리는 것이 당연한 사회적 분위기였다. 나 역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양품점 유리문 너머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선명한 선홍빛의 내의였다. 거칠거칠하면서도 톡톡한 면의 감촉을 손끝으로 확인하며, 어머니의 여윈 몸을 따뜻하게 감싸줄 가장 좋은 놈으로 골라 달라고 점원에게 신신당부했다.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 채 시골집을 찾았다.


어머니는 “왜 이런 걸 사왔어” 하시며 오히려 목청을 높이셨다. 그 모습이 나는 더없이 뿌듯했다. “이러시면 앞으로 더 많이 사올 거야.” 내 말에 아버지는 말없이 흐뭇한 미소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계셨다.


그날 밤, 방으로 돌아와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이제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보다는, 최소한 나 자신에게는 빚을 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먼저 밀려왔다.


어머니는 내가 드린 돈에서 일부를 다시 내 손에 쥐여주셨다. 투박하고 갈라진 어머니의 손마디가 내 손등에 닿았을 때, 지폐의 서늘함보다 어머니의 체온이 더 뜨겁게 전해졌다. 최소한의 경비는 필요할 것이라며 거절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 마음이 고맙고도, 한편으로는 못내 마음에 걸렸다.


며칠 뒤, 그 돈의 일부를 쓰게 되었다. 무엇을 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계산대 앞에서 돈을 내밀던 순간, 손이 잠시 떨렸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떨림은 아까워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스스로의 시간을 세상에 건네는 느낌 때문이었다. 처음 번 돈은 오래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 돈이 남긴 감각은 아직도 손에 남아 있다.

그것은 내가 세상과 처음으로 맞바꾼 나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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