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선배라는 이름

무뚝뚝한 진심이 남긴 가장 고귀한 유산

by 세바들

세상에는 불리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무거워지는 이름이 있다.

내게 ‘선배’라는 호칭은 다정한 부름이기보다, 보이지 않는 엄격한 선(線)이었고 기꺼이 넘어야 할 높은 벽이었다.


사회에 나와 처음 ‘선배’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 그것은 친근한 부름이 아니었다. 군대의 선임처럼 명확한 위계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학교 선배처럼 정으로 기대어도 되는 존재도 아니었다. 선배라는 이름은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말보다 태도로 먼저 다가왔다.


부산으로 돌아와 처음 만난 선배들은 대부분 말수가 적었다. 질문을 던지면 바로 답을 주기보다는, 관련 서류 한 장을 건네거나 현장을 함께 돌며 눈으로 보게 했다. 설명은 짧았고, 판단은 스스로 하게 했다. 그때는 그것이 차갑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불친절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은 가르치지 않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깨우칠 시간을 끝까지 지켜주려는 깊은 배려였다는 것을.


선배들은 늘 먼저 출근해 있었고, 가장 늦게 자리를 떴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현장에 있었고, 일이 잘 돌아가는 날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어그러질 때만 짧게 한마디를 남겼다.

“이건 다시 보자.”

그 말 한마디에 밤이 길어졌고, 나는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한 번은 야간 작업 중 작은 실수가 있었다. 크게 꾸중을 들을 거라 예상했지만, 최대리님은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앉아 작업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게 했다. 새벽이 다 되어 마무리될 즈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음엔 네가 후배한테 이렇게 해.”

그 말은 칭찬도 위로도 아니었지만 오래 남았다. 그날 나는 일을 배우는 법보다, 사람이 사람을 키우는 방식을 처음으로 보았다.


선배라는 이름은 친절함보다 책임에 가까웠다. 대신해 주지 않는 대신 끝까지 지켜보는 자리, 앞에서 끌어주기보다 뒤에서 무너지지 않게 받쳐주는 역할. 그래서 선배들은 늘 조금 외로워 보였다.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쉽게 말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지만 쉽게 섞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나 역시 누군가에게 ‘선배’로 불리고 있었다. 그 호칭을 들으며 문득 깨달았다. 선배가 된다는 것은 앞서 갔다는 뜻이 아니라, 먼저 견뎌 보았다는 뜻이라는 것을. 길을 알려주기보다, 길을 걸어본 사람으로 남는 일이라는 것을.


지금도 나는 좋은 선배였는지 자신할 수 없다. 다만 후배의 일을 대신해 주지 않으려 애썼고, 넘어질 때 외면하지 않으려 노력했을 뿐이다. 그것이 내가 배운 선배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선배라는 이름은 그렇게, 누군가에게서 받아 배웠고 또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건네야 할, 생에서 가장 무겁고도 고귀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내가 받았던 그 무뚝뚝한 진심이, 언젠가 누군가의 길을 비추는 조용한 등불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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