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다시 부산으로

견디는 법을 배운 뒤에야 보이는 것들

by 세바들

창녕 영산에서의 시린 겨울이 끝자락을 보일 무렵, 나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봄의 전령인 매화는 어느 날보다 화사한 얼굴로 출근길의 나를 반겼다. 성미 급한 봉오리 몇몇이 앞다투어 아름다움을 뽐내자, 곁에 있던 봉오리들도 연분홍 화장을 서둘러 올리고 있었다. 회사 입구 화단 가장자리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은, 떠나는 나와 작별 인사를 나누며 계절의 경계가 바뀌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떠날 때와 돌아온 후의 부산은 분명 같은 도시였지만, 그 사이를 지켜온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비가 내리던 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정류장은 이제 봄의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의 걸음은 여전히 빠르고 도회지의 속도를 품고 있었지만, 그 소란스러움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투박한 부산 사투리조차 정겨운 환대처럼 들렸다. 영산의 고요한 밤과 얼어붙은 단칸방을 지나온 덕분일까. 도시의 소음마저도 내가 살아있다는 활기찬 증거처럼 느껴졌다.


처음 부산에 발을 디뎠을 때, 도시의 모든 것은 위협이었다. 잠들지 않는 밤과 끊임없이 흐르는 차 소리는 나만 멈춰 서 있는 듯한 지독한 고독을 몰고 왔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부산은 이상하게도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도시는 그대로였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문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영산에서 배운 것은 기술이나 규율만이 아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 아무리 춥고 외로워도 오늘을 넘기면 반드시 내일이 온다는 평범하고도 위대한 진실이었다.


흔히 신입 사원이 가장 많이 퇴사하는 시기라고들 한다. 낯선 문화와 부족한 실무 경험 속에서 자존감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운이 좋은 사원이었다.

혹독한 추위와 쉴 틈 없는 업무 속에서도 내게는 인내심 어린 가르침을 건네준 이들이 있었다. 위기 상황 대응 시나리오를 작성하던 날, 생소한 용어와 복잡한 계통도를 하나하나 짚어주며 밤을 함께 지새운 최대리 님과의 시간은 지금 내 보고서의 든든한 기초가 되었다.


부산의 하숙방 문을 다시 열었을 때, 방은 여전히 비좁고 단출했다. 하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숨이 막히지는 않았다. 물그릇은 얼어 있지 않았고, 얇은 이불 하나로도 충분히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제는 혼자라는 사실이 두렵지 않았다.

내게 부산은 단순히 나를 키운 도시가 아니라, 나를 시험한 도시였다. 그리고 그 시험을 치러낸 뒤에야 비로소 이곳이 내가 뿌리내릴 자리임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는 도망치듯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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