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야연”은 원작과 내용이 약간 다르다. 황후가 태자의 친모가 아닌 애인으로 나오고 태자가 미친 척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새 황제는 처음부터 태자를 죽이려고 하는 내용에 액션이 가미된 영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태자는 생각을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사색적이기만 한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등장한다. 그는 숙부가 황제를 암살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숙부를 죽일 생각을 하고 독을 구하러 가지만 차마 독을 사지 못한다. 황후 또한 숙부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우루안이 갔던 가게에 독을 사러 간다. 그녀는 가게 주인에게 전갈의 독보다 더 독한 독은 없냐고 묻자 주인은 ‘마음의 독’이 세상에서 가장 독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아마도 우루안이 독을 사지 못한 이유는 ‘마음의 독’이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단순히 <햄릿> 내용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칭(오필리아역)의 아버지와 아들이 권력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면서 <맥베스>적인 내용도 가미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햄릿>과 <맥베스> 모두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라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야연”의 뜻은 말 그대로 “밤에 하는 잔치”를 뜻한다. <햄릿>과 <맥베스> 모두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속하는 작품들인데 어째서 제목이 “야연”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내시감이 잔치를 하기 길일이 아니라고 했으나 황제 자신은 미신을 믿지 않는다며 연회를 고집했고 결국 그날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상황이 비극과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다. 원작과는 다르게 황후가 황제가 되고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불사조같이 권력의 싸움에서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대사를 한 그녀마저 누가 던졌는지 알 수 없는 칼에 맞아 죽음을 맞이한다.
왜? 도대체 누가 그녀를 죽인 것일까?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 남근을 상징하는 로미오의 칼로 자결함으로써 영원한 화합을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야연"에서 완이 찔린 칼 또한 우루안의 단검이었는데 혹시 그것이 그녀가 사랑했던 우루안과의 영원한 화합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이 이루어 질 수 없었던 그들의 애절한 사랑을 남근을 상징하는 칼로써 죽음을 뛰어넘는 둘의 영원한 화합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감독이 작품을 이렇게 의도한 것이라면 이 작품은 햄릿+맥베스+로미오와 줄리엣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이 원작과 다르다 보니 완이 칼에 찔리는 장면의 해석에 대한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완이 등에 칼을 맞을 때 뒤를 돌아보며 놀란 표정을 한 채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킨다. 근데 그 장면에서 그녀가 마치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고 손가락도 마치 나를 가리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그녀의 죽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것이 그 장면에 너무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이다.
그녀를 죽인 범인이 누군가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지만 감독은 “범인은 중요하지 않고 단지 권력을 둘러싼 황실의 암투가 빚어내는 잔혹하고 험악한 분위기와 심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고 한다.
영화 속 내내 다루어지는 권력을 둘러싼 암투는 모두 죽음으로써 끝난 과거의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다. 현재까지 인물과 상황만 바뀐 채 쳇바퀴 돌아가 듯 다시 시작되는 절대 끝날 수 없는 진짜 비극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이 관객(불특정 다수)이라는 내 느낌이 맞다면 그녀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마음의 독)으로 인한 암투는 영화의 배경인 10세기 중국 5대 10국 시대 때만의 이야기가 아닌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인간의 욕망(마음의 독)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지만 정작 우리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비극적인 사실을 일깨워주려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