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사랑하고 동시에 사람을 미워한다. 사랑, 미움, 즐거움, 절망 등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있어서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던 것 같다. 로미오는 사랑하지만 로미오의 집안 몬테규를 미워해야하는 줄리엣, 줄리엣은 사랑하지만 줄리엣의 집안 캐퓰리트를 미워해야하는 로미오. 이들은 이런 이중의 혼재된 감정 속에서 결국 희생당하는 희생양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이 끝났을 때 자신의 이별이 가장 비극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들보다 더한 비극은 없다고 생각한다.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은 연인들 사이에서 쓰이는 말인데 상대에게 희망을 주어서 자신을 잊지 못하게 하는 고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희망고문을 로렌스 신부가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가한 것 같다. 만약 로렌스 신부가 그들에게 너희들은 맺어질 수 없다고 그들의 결혼을 성사시키지 않았다면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로미오는 로잘린에게 거절당했을 때처럼 혼자 고민만 하다가 결국 다른 사람과 또 사랑에 빠져 줄리엣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었다면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 그가 줄리엣에게 가사상태에 빠지는 약을 주지 않았다면 줄리엣은 패리스백작과 결혼해 행복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꾸 이 불쌍한 연인에게 그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 계속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희망고문이라는 그 말처럼 로렌스 신부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지만 결국 결정적인 일에서 로미오와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계획을 망치는 인물로 이들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한다.
로렌스 신부는 비록 그들의 결혼에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했지만 처음 계획대로 그들을 계기로 두 집안의 오랜 원한의 싸움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 머큐쇼와 티볼트가 죽었을 때는 더욱더 깊어지던 그들의 원한이 그 둘의 죽음 앞에서만은 어쩔 수 없었나보다. 우리나라에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안타까운 속담이 있듯이 그 두 집안은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화해하게 된다. 그들이 죽고 나서 화해한 사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늦게라도 오랜 싸움을 끝맺게 되어서 다행이다.
셰익스피어의 책을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4대비극에 끼지 않는데 그 이유는 원수의 집안에서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인한 비극이기 때문에 비극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운명을 탓해야만 한다는 것이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그들은 둘 다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인 것 같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죽음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후회 없는 사랑을 했으므로 그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