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하고 포근한 빵, 식빵

기본의 사물 첫 번째, 식빵

by 위시
식빵.JPG © sosowish


가장 기본적인 빵이라고 하면 역시 식빵이 아닐까. 빵집에 들어갔을 때 앞 다투어 코 끝을 솔솔 휘감는 향기의 정체는 온통 고소하고 단 풍미로 단장한 빵들이다. 그 냄새에 반해 찬찬히 굽어 보면 설탕 가루가 먹음직스럽게 반짝거리고 있어 절로 눈길이 간다. 그러나 결국 돌고 돌아 고르게 되는 것은 어김없이 비닐 속에 여러 겹으로 단정히 포개어져 있는 식빵이다. 코를 가까이 대 보아도 무슨 냄새를 풍기는지 좀처럼 알 수 없는 이것은 요란스러운 향을 풍기며 나의 발걸음을 현혹하지도 않고 관심을 구걸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 자리에 있을 뿐이라, 어째 조금 밋밋하고 심심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식빵이야말로 마음만 먹으면 다채롭게 변신할 수 있는, 말할 것 같으면 ‘도화지’ 같은 빵이다. 토스트로 구워 잼을 발라 먹고, 아보카도나 바나나 등의 과일을 얹고, 다양한 풍미와 빛깔의 치즈와 버터, 때로는 시금치와 후추… 재료를 올리는 대로 각기 다른 매력의 근사한 한 끼가 완성된다. 그래도 역시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의 식빵 한 조각을 손에 들고 찢어 먹거나 베어 먹는 것이다. 흰 우유를 곁들이면 조금은 퍽퍽하게 느껴졌던 식빵의 결이 사르르 촉촉해지며 혀에 기분 좋게 감긴다.


최고의 베이커리 맛집은 특별한 시그니처 메뉴나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호화로운 빵을 뚝딱 만들어 내는 곳이 아닌, 바로 어디서나 만드는 ‘식빵’을 그럭저럭 맛있게 만드는 집이라고 생각한다. 식빵이 맛있는 집이면 그 어떤 빵인들 맛있지 않으리. 그다음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 그런 빵이 바로 식빵이다.


식빵은 이름조차 기본스럽다. ‘먹을 식’에 빵이다. 그러니 ‘먹는 빵’이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다른 빵은 먹는 빵이 아니라는 것인가! 조금은 헛웃음이 난다. ‘먹는다’라는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행위에 곧장 따라붙는 빵이라니, 그 어떤 빵보다도 먹기 좋은 빵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주인공이 아침마다 식빵을 물고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모습이 보인다. 왜 패스츄리도, 꽈배기도, 고로케도 아닌 식빵일까. 그거야 아침에 별 고민 없이 가장 익숙하게 집어 편히 입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허겁지겁 삼켜도 위에 부담이 없고, 입을 열 때마다 자극적인 냄새를 풍기지도 않는다. 우리의 일상에, 그것도 하루의 처음인 아침에 가장 가까이 자리하는 빵도 식빵이었다.


식빵은 자연스러운 빛깔과 결을 띄고 있다. 바라볼 때나 손에 닿을 때 닿는 감촉이 사랑스럽고 온유하다. 반짝거리는 꿀이나 설탕도 묻어있지 않고, 매끈한 윤택으로 발하지도 않는다. 촘촘하게 짜인 결이 정직하게 그대로 드러나 보이고, 힘을 주지 않아도 저항 없이 부드럽게 찢어지며 소리도 미미하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가 손가락 끝에 예민하게 닿는다. 몸체는 공기가 통하는 듯 가볍게 폭신거린다. 아기의 연한 살결을 어루만질 때 느껴지는 산뜻한 기쁨이 감돈다.


네모나지만 결코 날카롭지 않고, 그렇다고 하여 오롯이 둥글거나 꼬여있지도 않다. 화려한 기교도 느낄 수 없다. 반듯하고 소박한 네 모서리는 적당히 둥글어져 온화한 느낌을 준다. 식빵은 온갖 자극적인 감각들로 넘치는 일상에 얌전하고 포근히 그저 테이블 위에 늘 앉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