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고 든든한 맛, 흰 밥

기본의 사물 두 번째, 흰 밥

by 위시
쌀밥34.jpg © sosowish


흰 밥은 대표적인 기본의 음식이다. 우리의 생활에 있어 예부터 밥은 식사의 기본일 뿐 아니라 생활의 근본이었다. 사람과 유대를 쌓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밥에 관련된 안부가 오갈 정도로 밥에 ‘진심’인 민족이다. “밥 먹었어?”, “나중에 밥이나 같이 먹자”, “밥이라도 잘 챙겨 먹어야지.”, “밥은 거르지 말고.”, “밥 먹고 얘기하자.” 밥이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그 익숙함과 고마움을 쉽게 잃어버릴 때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입맛을 돋우는 미식(美食)이 세상에 넘쳐난다. 그중 대부분은 흰쌀밥보다 보기에 더 먹음직스럽다. 식생활을 한층 호화롭게 만들어 주고 특별한 유희가 되기도 하며, 눈까지 즐겁게 해 준다. 이렇듯 식문화가 발달하면서 훨씬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럴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흰 밥이었다.


언제 어떤 음식을 먹어도 배 부르게 잘 먹지만, 쌀밥이 아니면 그 어떤 맛있는 식사를 해도 ‘든든하다’는 느낌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단순히 배가 차는 것과 든든한 느낌은 사뭇 다르다. 밥을 먹어야 온몸의 기운이 허하지 않고 묵직하게 중심이 잡히며 지금 있는 이 자리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기분이 든다. 파스타나 고급 스테이크를 먹는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맛은 훌륭하지만 역시 아무리 배 부르게 먹어도 든든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것이다. 단백질이 신체의 근육을 키워준다면, 마치 밥은 나에게 있어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는 장강제 같은 것이다.


특별한 날이면 으레 레스토랑에 가서 근사한 비주얼과 조화로운 감칠맛이 어우러진 양식을 먹는다. 축하받고 싶을 땐 달달한 음식과 함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위로나 마음의 충전이 필요할 땐 다른 것을 다 제치고 한식, 그중에서도 흰 밥을 찾는다. 뜨끈히 데워진 밥을 한 숟갈 뜨면 갈 곳 잃고 부유하던 몸과 마음의 감각이 식사의 호흡에 맞추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 차분히 가라앉는다. 밥은 다름 아닌 우리를 키워준 음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이 어린아이가 될 때, 누군가의 정감 어린 손길을 타고 싶을 때 엄마의 손길을 타듯 자연스레 찾게 되고 또 다시금 응원을 얻는다.


밥은 모양새 또한 과함이 없고 편안하며 빈 티가 나지 않는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너무 반짝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볼품없지도 않은 적당한 윤택. 밥알 간의 느슨한 연결.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고 미미한 맛. 숟가락에 둥글게 똬리를 튼 포근한 한 입. 그릇 안에 원만한 언덕처럼 쌓이는 푸짐한 형상. 고봉밥 마냥 아무리 푸짐하게 푸어도 사치스러워 보이기는커녕 소박하고 구수한 모습으로 절제된 품격을 드러낸다.


밥은 온기의 음식이기도 하다. 갓 지어진 뜨거운 밥이 오목한 그릇에 담기면, 그릇은 한순간에 적당한 온기를 품은 오롯한 작은 세상으로 변신한다. 그릇을 감싼 두 손에 포근한 온기가 전해지고, 그 따뜻함은 오늘의 양식(糧食)을 마주하고 앉은 사람에게 위로와 안정, 풍족감을 선물한다. 더군다나 쌀밥은 엄마의 정성을 떠올리게 해 추억과 애틋함에 잠기게 한다. 그야말로 공감각의 맛인 것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고, 내가 나로 돌아가기 위해 찾게 되는 기본적이고 정다운 음식. 오늘도 정성껏 밥을 챙겨 먹고 슬기로운 ‘밥벌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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