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 5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덕분에

20대 인터뷰 문답집 8월호

by 위시

[소소위시 인터뷰 문답집 프로젝트 <Hey,>]

Heyday를 살고 있는 20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20대가 가장 고민하고 생각하는 여러 주제들에 대한 사적이고 의미 있는 사유의 대화들을 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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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위시 인터뷰 문답집 <HEY,>
2021년 8월의 질문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덕분에"



Interview with 박미나, 성은지

In 마뫼


코로나로 전 세계나 사회적인 측면 뿐 아니라 각 개인의 삶이 저마다 무너졌을 텐데, 우리는 그 각자의 삶을 일일이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만큼은 알고 있다. 내가 코로나로 얼마나 억울했는지. 그래서 코로나로 인해 변화하거나 주춤했던 개인의 일상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었다. 일단 너는 캐나다에 있지 않았나.


미나 어학당 몇 개월 다니다가 통역사 자격증을 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나름 빡센 코스이지만 자격증도 남고 영어 실력도 많이 늘 것 같아서. 또 아이엘츠 자격증도 따려고 시험까지 접수했는데 그때 딱 코로나가 터져서 취소되었다. 공부도 다 해 놓았고 어느 정도 고득점도 기대할 수 있었는데.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올리고 싶어 일주일을 미뤘더니... 아예 시험조차 못 친 거다. 차라리 좀 더 일찍 시험을 봤으면 (좋았을걸)


운명의 장난이군.


미나 사실 아이엘츠 시험은 한국에서 봐도 되니까 상관 없는데, 그 뒤에 예정되어 있었던 통역 자격증 코스가 내가 (캐나다 유학에서) 가장 기대했던 거였다. 그걸 못하게 되어서 생돈을 환불 받았는데 너무 아쉬우니까 그 돈으로 쇼핑했다. 그때 냈던 어학원 등록 비용이 200만 원 정도였는데 거기에서는 크게만 느껴졌던 금액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까 보증금도 안 되는 비용이었다. 그 비용으로 내가 배울 수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너무 아깝다. 한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또 금방 쓸 금액 아닌가.


고작 여기서 이렇게 써버릴 돈이었으면 거기서 (좀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을 텐데). 너 여행도 정말 아쉬워했지 않나.


미나 멕시코 티켓도 결국 취소되었다. 멕시코 스타일의 옷이 나와 정말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쨍한 노란색, 빨간색... 그 옷을 입고 여행하는 걸 정말 기대했었다. 또 스페인에 비해 멕시코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가는 여행지는 아닌데, 그때가 (멕시코로 여행을 갈 수 있는) 최적의 기회였다. 캐나다에서 멕시코로 넘어가는 루트가. 심지어 멕시코 친구가 자기 집에서 재워준다고 했고, 투어도 시켜준다 했었다. 그외에도 콜롬비아 친구, 칠레 친구... 나라마다 (친구가 있어서) 일정이 여유가 되면 여러 군데 둘러보고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니까 여행이고 뭐고 내 생존이 가장 걱정되니까 마음의 정리는 자연스럽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 들어와서 두고두고 후회도 되고 아쉬웠다.


그러면 원래 네가 머물려고 계획했던 기간보다 얼마나 빨리 들어오게 된 건가?


미나 수강신청이 있는 8월 초까지는 있으려 했다. 근데 3월 첫째 주에 왔다. 한 6개월 있었나. 정말 최악의 타이밍에 캐나다를 갔다. 30일 중에 28일 비가 왔다. 12,1,2월엔 정말 아무 것도 못하고 집에만 있고 도서관에 가기만 했다. 그래서 그렇게 알차게 보낸 것 같지도 않다.


돌아오고 나서 계속 김제에 있었던가? 그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


미나 그땐 아직 외국에 있었던 습관이 남아있던 때였다. 난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너무 편안하고 새롭지 않고 반복적인 환경에서는 나도 딱히 새로운 거 안하려 하고 늘어지고 유튜브 영상, 웹툰 보고 생산성 있거나 자기 성장을 위한 공부 같은 걸 안 하는 타입이다. 근데 캐나다에서는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니까 조금 더 열심히 하려고 한 게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억지로 돌아오게 되니까 너무 괘씸한 거다. 그래서 내가 비록 영어 공부를 하다 말고 왔지만, 여태껏 쌓은 실력이라도 녹슬지 않게 유지하고 차라리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게 이득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우울해하는 것 보다는. 그래서 캐나다에서 돌아온 이후가 내가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기 같다.


너 열심히 살긴 했다.


미나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7시부터 9시까지 독서실에 갔다가 9시에서 4-5시까지 부모님 가게 출근하고, 돌아와서 또 독서실 갔다가 운동하고. 그렇게 3달 정도를 지내다 학교에 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의 삶에 익숙해지지 않나. 예전에 갖고 있던 스트레스가 다시 찾아오기도 하고. 캐나다에서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3-40대에 대학 가려는 사람, 나처럼 어학원 다니려는 사람, 워홀로 온 사람... 그런 사람들에겐 모든 게 전부 도전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진로도 잘 모르겠고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내 가능성을 너무 제한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방식은 새로운 도전을 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나도 여유로워지고, 몇 살에 취직해야 되는지 고민하거나 대학원을 가야 하는지 공무원 시험을 봐야 하는지 등의 문제에서 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자책하지 말고 조금씩 해나가는 맛이 있었는데 다시 한국에 오니까 엄마아빠한테 받는 스트레스도 있고, 주변 애들은 하나둘씩 휴학해서 시험 준비하고, 근데 난 아직 모르겠고... 비대면 수업만 하다 보니 제대로 안 듣고, 밖에는 못 나가고...


만약 예정했던 일정대로 더 오래 있다가 돌아왔으면 그런 마음들이 덜 했을 것 같은가.


미나 솔직히 상상은 안 간다. 영어 실력이 조금 더 늘긴 했겠지만.


맞다. 뭐가 또 드라마틱하게 바뀌었을지(는 모르는 법이다). 안 가 본 길은 모르니까. 나는 일본 워홀이 취소되었지 않나. 워홀이란 꿈을 초3때부터 10년을 꿔왔다. 결국 지원해서 합격까지 했는데 10년의 꿈이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바로 목전에 무너지게 된 거다. 엄청 울었었다. 오히려 예상보다 마음은 덤덤하게 정리되긴 했지만. 미련이 계속 남았다. 난 휴학하고 일본에 있을 생각 밖에 안 했는데, 휴학은 이미 해버렸고 1년 동안 뭐해야 되지? 하면서 예상치 않게 전주에 있게 된 거다. 다른 거 생각해 둔 게 없었으니까 그냥 홧김에 중국어 학원도 다니고 맨날 소민이랑 카페 투어하고 영화보고 농땡이만 치러 다니고... 코로나 때문에 워홀을 못 가게 된 거는 너무 아쉬운데 한편으로는 그걸로 인해서 (얻은 것도 있었다). 난 원래 한 달 뒤든 몇 년 뒤든 항상 미리 설계를 해 놓는 타입이었다. 내년에는 이런 걸 하고 있겠지. 내후년에는 이 정도는 이뤄놓았겠지. 근데 10년을 계획하고 바라왔던 꿈도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데 아무리 미리 계획을 해 봤자 뜻대로 되는 게 없다는 인생의 큰 교훈을 깨달았다. 인생을 미리 컨트롤하려 하면서 이 때는 뭘하고 이 때는 뭘해야 하고... 그런 강박을 없애게 되었다. 한 달 뒤나 반 년 뒤를 생각하다가도 "지금 이렇게 생각한다 해도 그때가서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데 미리 고민할 필요 없다" 생각하며 인생을 강박적으로 살기 보다 물 흐르듯 살자는 가치관이 생겼다. 그건 오히려 코로나가 나한테 가져다 준 좋은 교훈이었다. 나한테는 꼭 필요한 가치관이었거든. 중국어 공부도 언젠가는 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던 건데 뜻하지 않게 시작하게 되었고.


미나 코로나 아니었으면 쭉 안 했을 수도 있었던 거다.


진짜로 '언젠가'였겠지. 그리고 그 때가 아니었으면 내가 전주에 1년씩이나 있을 일이 또 있었을까 싶다. 1년 동안 전주에 있으면서 20년동안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몰랐던 전주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엄마아빠도 오래 보았고. 학창시절 땐 마냥 서울에 올라가고 싶고, 지루한 시골 동네처럼 느껴지고 그랬는데. 코로나가 터지지 않아서 예정대로 일본에 갔으면, 전주에서 1년 동안 지내면서 할 수 있었던 것들,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을 경험하지 못했을 거다. 코로나 때문에 일본에 못 가게 됨으로써 전주에 있게 되었더니, 전주의 예쁜 벚꽃들도 보고 전주의 사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는 생각이 들더라.


미나 난 코로나가 내가 조금 더 할 수 있었던 것을 많이 앗아갔다고 생각한다.


원 물론 나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미나 난 일단 혼자 있으면 안 된다. 캐나다에서는 밋업 어플로 주말마다 소모임 만나서 우쿠렐레도 배우고 체육관도 다니면서 뭐라도 했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서울에서 자취하게 되니까 정말 미쳐버리겠는 거다. 차라리 (이왕 집에 있는 거) 시간이라도 잘 썼어야 했는데 잘 활용하지 못했다.


나도 어차피 일본에는 못 가게 되었고, 이왕 전주에 남게 된 거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던 것도 있다. 일본에 갔으면 하지 못했을 것들을 할 수 있고, 전주에서 생활하면서 새롭게 얻게 된 인생관이나 가치관도 있고. 이렇게 여러모로 나한테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해도 역시 예정대로 일본에 갔더라면 내가 상상도 못할 만큼 훨씬 새로운 경험들을 누리면서 나의 경험치를 높일 수 있었겠지 하는 기대와 미련은 못 버리겠더라. 여기서의 생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그래서 나도 네 말에 동의한다. 코로나 이후의 상황에도 어떻게든 잘 적응했고 오히려 얻은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일본에 갔으면 내가 얻을 수 있는 더 많은 것들이 있었겠지... 하는 아쉬움. 그래도 가 보지 않았던 길은 모르니까, 하는 말로 마음을 다잡곤 했다.


미나 난 똑같은 삶의 반복인 것 같다. 열심히 하다가 안 하고 열심히 하다가 안 하고. 꾸준히 해 본 적이 없다. 그 괴리가 너무 싫다. 꾸준히 하면 분명 더 이룰 수 있는 게 있었을 텐데.


그 굴곡의 꼭짓점을 만든 계기 중의 하나가 코로나인 셈이었네. 성은지는 그때 뭐하고 있었나?


은지 3학년 1학기 시작하기 전에 코로나가 터졌고, 전부 비대면 수업을 선언했다. 사실 상관없었다. 그냥 좋다~라는 마음이었다. 어려운 과목을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던 건 졸업 작품을 하면서 팀원들을 세 번 밖에 못 봤던 거다. 직접 만나서 하면 얘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고 표정만으로도 캐치할 수 있는 게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답답했다). 설명할 때도 그림판 켜놓고 설명해야 했다. 내가 말하는 게 기분 나쁘게 들릴까봐 걱정도 되고. 또 온라인에서는 동시에 말하지 못하니까 회의 시간도 더 길어지고.


원 아무래도 커뮤니케이션이 비효율적이지.


은지 얼굴도 보고 밥도 같이 먹으면 (서로가 더) 익숙해졌을 텐데. 익숙해질수록 자기 감정에 대해 솔직해질 수도 있고.


서로 으쌰으쌰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었을 텐데.


은지 (온라인이 아닐 땐)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잘 안 되는 점이 있으면 과감히 말할 수도 있다. 이거 좀 별로니까 바꿔보자, 쉽게 말할 수 있는 걸 그냥 넘어가게 되고. 그래서 팀장으로서는 좀 아쉬웠다. 서로 친했으면 분명히 좀 더 수월히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을 단계를 일일이 거치니라고 진행이 더뎌졌던 게. 그럼에도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재택근무도 이어지고 아예 디지털 노마드라는 신조어도 나오면서 사회가 바뀌어 가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도 회사에서 이야기했는데 회사에서는 재택근무를 별로 안 좋아하는 입장이더라고. 집에 있으면 안 보이니까.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해 본 입장으로서) 사실 그렇지 않다.


미나 그냥 (시대가) 바뀌는 흐름인 것 같다.


방금은 업무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듯 코로나가 가져온 지대한 영향들이 있지 않나. 난 그 중에서는 우리가 더 효율적이고 현명한 미래를 위해서 어차피 바뀌어나가야 했을 방향의 등장을 조금 더 앞당긴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재택근무를 시도해 봄으로써 꼭 출근을 안 해도 집에서도 업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일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당연히 사무실에 출근해야지, 이러한 고정적인 알고리즘을 완전히 깨부신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또 코로나로 인해 내 일상에서 긍정적으로 바뀐 부분은 마스크를 쓰니까 화장을 안 해도 된다는 점이다. 그 전까지는 꾸미고 나가고 싶은 날에 예쁘게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화장만을 생각했다. 나를 예쁘게 어필하기 위해 고민했던 것들이 '어떻게 하면 아이라인을 예쁘게 그리지?', '뭘로 피부톤을 밝히지?', '어떤 립스틱을 쓰지?' 였다. 근데 마스크를 쓰다 보니까 화장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쌩얼로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 꾸민 모습이 아닌 내 본연의 얼굴로 예뻐보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더 고민해 보게 되었다. 예전엔 '어떤 파운데이션을 발라야 하지?' 고민했다면 지금은 '얼마나 세안을 더 꼼꼼히 해서 피부결을 좋게 가꾸지?' 하는 것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그런 부분에서 뷰티에 관한 기준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클린뷰티'니 뭐니 해도 그 개념이 확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미나 나도 요즘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니까 전 제품을 다 받아서 써보고 있다. 토너패드, 스킨 부스터, 에센스, 세럼, 크림까지 다 쓰고 있는데 옛날에는 스킨, 로션, 크림만 바르는 정도였다. 그런데 토너패드하고 부스터 하고 세럼 바르면서 (스킨케어 제품을) 레이어드 하는 게 너무 기분이 좋다. 꼼꼼히 클렌징 오일 바르고 세안하고 나와서 레이어드 하면서 각 제품의 향을 맡는 게. 약간 '루틴'처럼. 그래서 나도 피부에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되었다.


예전에는 내 얼굴을 어떻게 하면 꾸밈으로 가릴까 생각했다면, 요즘에는 내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좀 더 예쁘게 보일 수 있을까 (고민한다). 오히려 마스크로 내 얼굴을 가림으로써 내 얼굴을 더 유심히 들여다 보는 계기가 된 거다. 예전에는 누군가를 만날 때 화장을 안 하고 나가면 위축이 되었다. 화장을 안 하면 일부러 옷도 예쁘게 안 입었다. 믹스매치라고 생각해서. 하지만 지금은 화장에 내 꾸밈의 기준을 맞추는 게 아니라, 옷을 입을 때도 화장에서 좀 벗어나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미나 난 오히려 반대다. 옛날에는 대충 다닐 때가 많았다. 근데 지금은 나가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지 않나. 그래서 도서관을 갈 때도 한껏 꾸미고 입고 싶은 옷 입고 가기도 한다. 또 혼자만의 시간도 많아졌다. 예전에는 혼자 있으면 화장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펑퍼짐한 옷, 국물 튄 입고. 근데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소중히 여기려다 보니까 기분이 좋아지는 옷 입고 이쁘게 꾸미고 사진도 찍는다. 그래서 난 오히려 더 많이 꾸민다.


은지 난 화장을 안 하게 되니까 갖고 있던 화장품을 싹 버렸다. 유통기한을 신경쓰게 되더라고.


코로나 이후로 지금 얼마나 지났지? 1년 반 정도 된 것 같은데 그 동안 아쉬운 일도 있었지만 틈새틈새 재밌는 시간들도 있었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중에, 그래도 이 경험은 좋았다 싶은 게 있나? 나는 작년 전주에 있을 때 봄, 여름에 항상 하던 루틴이 일어나서 점심 먹고 하루종일 집 앞 카페에 있는 거였다. 내가 좋아하는 집 앞 카페가 두 곳 있는데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어디로 갈지 정한다. 가는 길이 똑같았거든. 그 당시엔 힐링을 한다기 보다는 가서 할 일을 했다.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디자인 작업도 하고 글도 쓰고. 그래서 '놀았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 허구한 날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었던 그 기억이 한여름밤의 꿈처럼 너무 행복했던 시간이다. 물론 일본에 갔으면 그것보다 더 즐거운 경험을 누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럴 수 없음으로써 전주에 머물면서 하루종일 카페에 죽치고 있었던 그 여름이 아직도 나에겐 힘이 되는 기억이다.


미나 나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맨날 동기들이랑 어울리고 대외활동 하면서 보냈을 텐데, 코로나 때문에 그런 관계들이 다 끊겼지 않나. 그래서 나는 외국인 친구 찾는 어플로 채팅을 했다. 거기서 사귄 칠레 친구랑 아직도 한 번씩 만나고, 그애 친구들이 2월에 한국 놀러온다고 해서 같이 만나기로 했다.


나비효과인 것 같다. 이런 경험들을 코로나가 직접적으로 만들어 준 것들은 아니지만, 코로나가 터져서 어떤 걸 못하게 됨으로써, 이런 걸 했더니 벌어진 일들. 성은지는 어떤 일이 있었나?


은지 아까 말했던 졸업 작품과 연관이 있다. 원래 오프라인으로 발표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하니까 온라인으로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온라인으로 발표하는 게 괜찮더라고. 다른 팀들의 발표를 우리가 한 발짝 멀리서 바라볼 수 있다는 느낌도 있었고, 빨리빨리 볼 수도 있고. 또 온라인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덜 긴장한 것도 있었다.


온라인에 친숙한 사람이나 온라인의 효율성에 빨리빨리 적응하고 이점을 발견해내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환경이었을 거다. 근데 난 컴맹이고 온라인에 익숙치 않다보니, 코로나 시기에 휴학을 한 게 너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학교 수업을 비대면으로 안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당연했던 것들이 실은 당연하지 않고,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다시 발견하는 계기도 되었다. 난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바람 냄새를 맡는 거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무슨 냄새가 나고 있는지 모른다. 근데 계절마다 냄새가 다르고 여름밤 산책할 때 냄새, 풀냄새... 이런 걸 못 맡는 게 나에겐 너무 큰 아쉬움이었다. 공기를 마시고 자연스러운 계절의 냄새를 맡는 게 너무 당연해서 그동안 맡아지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향기로웠다니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게 가장 아쉬우면서도 다시 알게 된 소중함이었다.


은지 난 친구들끼리 단체로 못 보는 게 가장 아쉽다. 얘는 부르고 얘는 안 부르기도 그렇고. (얘랑) 만났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다.


나도 친한 동기 무리가 딱 5명이다. 계속 4인까지였지 않나. 그래서 5명 함께 모인 지 너무 오래되었다. 또 이렇게 마스크 없이 생활한다는 거 자체도 예전엔 너무 당연했었는데.


은지 맞다. 이젠 마스크 안 쓰는 사람들 보면 화난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비위생적인 환경에 살고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항상 누군가의 비말이 섞인 환경에서 살아왔던 거지 않나. 특히 콘서트장 같은 곳 생각하면 얼마나 비위생적이었는지...


은지 난 선물로 마스크를 주는 게 독특한 문화(?)가 된 것 같다. (그걸 보면서) 이젠 여기까지 왔구나...


예전엔 위생이라는 게 일상에서 매번 유심히 들여다 보는 개념이 아니었다. 위생을 챙긴다 해도 내 위생만 챙기면 되었다. 근데 이렇게 마스크를 선물한다는 건 결국 내 위생 뿐 아니라 타인의 위생도 신경쓰게 되었다는 거다. 그러한 방향이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제품이나 디자인 아이디어에 많은 인사이트를 주게 될 것 같다.


은지 마스크 색도 다양하게 나오고 뭘 붙이기도 하고.


위생에 관련된 디자인적인 부분이 좀 더 발전하지 않을까 싶다. 한편으로는 마스크 때문에 가장 걱정되는 건 쓰레기다.


미나 배달음식도 많이 시키니까 쓰레기가 더 많이 나온다.


은지 마스크를 녹여서 의자 만드는 작가도 있지 않나.


아직 해결해 나가야 할 게 많다. 코로나가 확실히 우리의 삶에 많은 장벽을 준 건 맞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언젠가는 나아가야 했을 방향에 대해서 이것저것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을 많이 던져준 것 같다. 정말로 (코로나로 인해) 생각해 보게 된 게 많아졌지 않나.


은지 우리 쪽에서는 이런 변화도 있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바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다보니까 개발자에 대한 처우가 많이 개선되었다. 기업에서 주는 연봉이 평균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 정도 올랐다.


오, 그런 나비효과도 있구나.


은지 근데 그만큼 돈만 보고 들어오려는 사람도 많아졌다. 돈만 볼 게 아니라 이 구조를 이해해야 하는데.


코딩이란 분야에 뛰어드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는 거구나.


은지 국비 지원으로 나라에서 수업듣는 게 있는데 내가 가려는 프론트 분야의 수업이 많다. 그만큼 심도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그 사람들의 입장은 어떻게든 직업을 가져야겠으니까 국비 지원 수업이라도 들어서 취업 시켜주는 데로 갈 거야, 라는 거다. 너무 너도나도 하겠다는 분위기가 되었다. 학교에서도 기본적으로 (코딩 수업을) 다 시키겠다고 하지 않나. 근데 난 코딩을 필수적으로 시키려고 하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성향에 맞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으니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지 강제로 하게 한다는 점이. 이러면 결국 고등학교 때랑 똑같은 거다. 그럼 대학교가 왜 있고 전공이 왜 있나. 다 똑같은 공부를 시키는데. 이런 방향은 결국 기본적인 선택의 기회를 없애는 거라고 생각한다.


코딩을 필수 수업으로 넣는 흐름이 '우리 사회가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발전할 테니까 이런 역량을 가지면 좋아'라는 '권유'가 되면 좋은데 실은 우리가 이상적으로 발전할 거라 천편일률적으로 기대하는 미래의 사회상에 필요한 '부품' 같은 인재를 생산하기 위해서 맞추는 거니까.


(녹음 유실로 인한 뒷부분 생략)




Interview with 심가은

In 서촌 커피 한 잔


가은 일단 부정적인 영향은 당연히 여행 못 가는 거. 1년에 한 두 번씩은 무조건 해외여행을 갔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갔다. 근데 그게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많이 주더라. 여행을 갔다 오면 생각할 거리들이 진짜 많아지지 않나. 사고의 폭이 확장되면서 다음엔 이런 거 해봐야지, 이런 델 가 봐야지 이런 게 생기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으니까 (아쉽다). 근데 어떻게 보면 이제 그런 걸 주변에서 찾으려 하다보니까 지역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난 이 두 개로 딱 극명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것 같다. 요즘 성북구에서 '동네생활탐험가'라는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고, 동대문구에서는 지역과 연계된 봉사활동을 기획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고 은평구에서는 아예 청년정책네트워크에 가입을 해서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서울문화재단에서는 맵앤아카이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역 극장을 발굴하고 조사하고 있는데, 이 네 가지 프로그램 모두 지역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코로나 이후인데, 이건 긍정적인 영향인 것 같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또 늘 그랬듯이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지역에 관심을 둘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항상 일본으로만 여행 갔는데, 일본을 못 가니까 작년에는 제주도를 갔다. 근데 제주도도 너무 좋은 거다. 내가 수학여행 때 갔던 때랑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일본 가면 관광지 돌아다니기 바쁜데 제주도에서는 휴식을 하는 여행을 해 봤다. 시골 마을에 머물며 여유롭게 카페도 가고. 내가 좋아하는 새로운 여행 방식을 하나 알게 됐다. 그래서 당장 다음 주에 가는 제주도 여행도 혼자 시골 마을에 2박 3일 처박혀 있으면서 카페나 서점 돌아다니다 오는 거다. 일본 가면 해외까지 갔으니까 비행기 값 아까워서 그렇게 못 있는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있구나 발견하게 된 게 좋았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또 일본이나 가고 제주도의 매력을 몰랐겠지. 그리고 원래도 지역이나 특히 전주 관련해서 예전부터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이 마음이 더 애틋해진 건 작년에 워홀을 못 감으로써 뜻하지 않게 전주에서 1년을 보내면서였다. 19살까지 살면서는 별 감흥 없었는데 서울 갔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까 그동안 지나쳤던 모습들이 새롭게 보이면서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전주는 여전히 고향 정도로만 생각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바빴을 거다.


가은 나는 지금 사는 서울이 나의 고향이자 유일하게 살아본 곳이다. 다른 데에서 1년 이상 살아본 적이 없으니 비교대상이 없긴 한데, 난 은연 중에 서울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서울하면 항상 떠오르는 키워드가 '난개발', '젠트리피케이션', '이주민과 외국인들의 유입'... 이런 것 밖에 생각 안 났는데 서울에도 좋은 곳들이 있다는 걸 요즘 많이 느낀다. 너랑도 좋은 곳들 많이 돌아다니고 있고. 그리고 또 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된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걸 많이 느낀다.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자신의 지역에 숨어있는 곳을 발견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걸 보면 긍정적인 영향이다.


난 코로나로 인해 나의 가치관과 인생관의 변화도 생겼다. 워홀을 그렇게 오랫동안 꿈꾸고 준비해 왔는데 못 갔지 않나. 허무주의로 빠질 뻔 한 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미리 계획하고 컨트롤해도 인생은 어차피 뜻대로 안 흘러간다, 거기서 멈췄으면 허무주의로 빠졌겠지만 그게 아니라 근미래에 꼭 이걸 해야지 정해두고 살지 않고 물 흘러가듯 살아야겠다는 인생관이 생겼다. 예전엔 미리 걱정하느라 현재를 못 살고 미래의 난관들을 생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예를 들면 대학교 2학년 때 벌써 '내가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졸전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을 했다. 근데 지금은 1년 후에 졸전도 있고 얼마 안 가 취업도 해야 하지만 "그때 가서 뭐가 달라질지 어떻게 알아?" 그런 생각이 들어서 미리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항상 걱정증, 불안증에 시달리던 나에겐 정말 좋은 영향이다.


가은 그리고 코로나 이후에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많이 생겼다. 가족들과 매일 저녁을 같이 먹으니까 대화의 폭도 되게 넓어지고. 예전엔 별 얘기 안 하고 저녁에 각자 약속이 있으니까 따로따로 먹을 때도 많았는데. 요즘은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서 좋다. 밖에 나돌아다닐 때는 워낙 눈을 사로잡는 것들이 많으니까 생각 없이 휘둘려서 보기만 할 때가 많은데 방에 혼자 있다보면 생각이 되게 많아진다. 그래서 더 공부를 하게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코로나 이후에 대학원에 입학했으니까. (코로나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책 읽고 혼자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지면서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 회사를 다니고 싶은 게 맞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게 아닐까. 이걸 긍정적인 거라 해야할지 부정적이라 해야할지(웃음).


난 작년 한 해 전주에 있는 동안 행복한 기억들이 여럿 생겼는데, 그것들은 내가 일본에 갔으면 얻지 못했을 추억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어떤 사건이 벌어져서 뜻하지 않는 마음에 안 드는 길에 와도, 그 길에서도 나름의 행복한 일들이 생기고 즐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에 갔다면 이것보다 훨씬 더 행복한 일들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 싶지만 그저 타이밍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난 일본에 워홀로는 가더라도 나중에 완전히 살아야지,하는 그런 일본에서의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은 없었는데 이게 한 번 좌절되니까 오기가 생기고 미련이 커졌다. 그래서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졸업 후엔 꼭 일본으로 떠날 거다. 미련과 오기 같은 감정들이 짬뽕이 되어서 더 저돌적으로 간절하게 바라게 된 것 같다.


가은 너 도쿄에 있으면 내가 분기마다 갈 거다.


난 매년 일본에 갔는데 지금은 2년 째 못 가고 있다. 근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고작 1년 안에도 정말 많은 관심사가 새롭게 바뀌고 엄청 많은 성장을 하고 볼 수 있는 것도 훨씬 늘어나게 된다. 일본에 안 가고 전주에 있었던 작년 한 해 동안 정말 여러가지를 했고 또 많은 관심사가 생겼고 성장을 해서, 만약 예정대로 일본에 갔으면 못 누렸을 것들을 만약 지금 가면 더 즐길 수 있는 게 늘어났다. 그래서 그런 기대도 있다. 내가 그때 못 가고 2-3년의 공백이 생김으로써 내가 2년 후에 가게 되었을 땐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러려고 미뤄진 게 아닐까...하는. 난 '신의 계시'라는 말을 진짜 많이 쓴다. 아이러니하게도 종교를 하나도 안 믿는데 그런 말을 쓰면 위로가 된다. 이 모든 게 그냥 "그래, 지금 가지 말고 1-2년 후에 가면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신의 계시야"라고 생각하고 싶기도 하고.


가은 작년 초반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너무 싫었다. 너무 밉고. 근데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올해 대학원에 입학해서 벌써 1학기가 지났고, 또 새로운 한 학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럼 벌써 2학기 밖에 안 남은 거다. 코로나랑 같이 대학원 생활이 끝날 수도 있는 거다. 난 그래서 오히려 이런 시간을 (코로나가) 만들어 준 것 같기도 하다. 난 무교에 가까운 기독교이긴 하지만, 하느님이 2년 동안의 시간을 벌어주고 그동안 성장할 시간을 준 것 같다고 생각을 한다. 네가 아까 말했듯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했지 않나. 난 그걸 나만의 표현으로 '필터'를 여러 개 끼운다고 말하거든. 예를 들어 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어, 그럼 경영학 필터가 끼워지는 거고... 사실 그건 별로 도움이 안 되는데(웃음), 지금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으니 그 위에 또 사회학 필터가 끼워져 있는 거고. 레이어가 여러 개가 된다. 그걸 필요에 따라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거다. 단순히 공부 뿐 아니라 책 한 권을 읽어도 배우는 게 정말 많다. 전시를 좋아해서 많이 보러 다니면 전시에 관한 레이어 필터가 또 채워지는 거고. 2년이란 시간 동안 되게 많은 필터가 끼워질 것 아닌가. 나중에 코로나 끝나고 학위도 끝나서 여행 갔을 땐 내가 과연 얼마나 더 많은 걸 볼 수 있게 될까. 같은 걸 봐도 다르게 보일 거 아닌가. 나도 그런 게 기대된다.


물론 코로나가 안 터졌을 경우 2년간 쌓였을 필터도 무지막지하게, 오히려 지금으로썬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더 좋은 필터들이 쌓였을지도 모르지만. 안 가 본 길은 모르는 거니까.


가은 어쩔 수 없다. 질병이라는 너무 거대한 걸 이겨낼 순 없으니까.


난 한편으론 기다리는 방법, 인내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워홀이 엎어졌을 때도 '그래, 내가 10년을 기다렸는데 1-2년을 더 못 기다리겠냐'하는 마음가짐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마음에 '코로나가 끝나면 여길 가야지, 뭘 해야지' 하는 꿈들을 가지고 텐데, 그런 꿈들을 계속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간절함을 품으면서도 기다리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 같다.


가은 근데 진짜 좋을 것 같지 않은가. 이 모든 게 딱 끝나고 이제 여행이 완전히 자유로워져서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기대된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안 좋았던 것도 있었고 코로나 덕분에 나비효과로 얻었던 것들도 있지만, 그래도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


가은 전에 없던 일이다. 과거의 흑사병 이후로는. 우리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세대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것도 역사를 살아보는 거니까, 좋진 않더라도 의미는 있는 것 같다. 나중에 역사책에 실릴 텐데 그런 한순간을 함께 했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이 힘든 시기를 같이 견뎌낸 사람들과 어떤 공동체 의식 같은 게 생길 것 같기도 하고."우리 그땐 그랬지' 하면서(웃음). 지금은 모두 힘든 시기지만 나중에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는) 우리가 어떻게 손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고, 인간의 힘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않나. 그렇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음', '피할 수 없음'의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자, 라는 마음가짐도 생긴 것 같다. 워홀이 취소된 것도 내가 조금만 더 노력했다고 해서 바꿀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지 않나. 벌어진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갈 수 없게 된 건 갈 수 없게 된 건데, 그럼 이 상황에서 뭘 해야 하나 하는 빠른 인정과 전환(?)을 할 수 있게 되는 역량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가은 난 그런 게 생겼다. 여행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는데, 원래 플랜을 항상 하나만 짜 놓는데 플랜 B, C까지 생각해 놓는 습관이 생겼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 뿐 아니라 행사들도 많이 취소되었지 않나. 취소가 일상인 요즘이다보니 나의 계획표에 쓴 것들이 안 될 때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이게 안 되면 어떤 걸 하지?' 하고 머릿속으로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디로 공연을 보러가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는데, 전날이나 당일에 취소될 수도 있다. 그럼 미리 그 주변에 뭐가 있는지 봐 두는 거다. 근데 그런 게 나한테는 좀 필요하다고 본다. 그 전엔 '이게 아니면 절대 안 돼'라는 타입이었다. 계획대로 안 되면 미치는 거다. 화가 나고 답답하고. 예전에는 거기에서 그쳤다면 이제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거다. 어떡하겠어, 안 된다는데. 다른 거라도 하자!


언니는 A가 안 될 걸 대비해서 여러 선택지를 만들어 놓는다고 했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반대로 아예 아무 것도 안 생각해버리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난 오히려 원래 이것도 생각하고 저것도 생각하며 한 치 앞을 계속 내가 컨트롤 하듯이 정해두는 타입이었는데, 막상 그때 닥쳐서 안 될 수도 있지 않나. '미리 생각해봤자 쓸모가 없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까도 말했듯이 물 흘러가는대로 살게 된 것 같다. 그게 나에게는 잘 찾아온 변화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필요한 변화였다. 항상 난 내가 나의 모든 인생, 나의 1-2년 후를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가은 어떻게 보면 자기가 계획한대로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방자한 생각이지.


정말 오만방자했던 거다. 나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고쳐주겠다고 너무 극단적인 좌절이 닥쳤지만(웃음). 10년을 바라왔던 꿈도 목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유로 무너질 수 있는데, 하나하나 사소한 게 틀어질 때마다너무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은 그런 거 적어본 적 있는가. 나의 5년 후 계획, 10년 후 계획 같은 거.


나 그런 거 쓰는 거 좋아했다.


가은 나도 옛날에 좋아했다. 근데 지금 보면 하나도 안 맞더라. 단 한 개도. 심지어 방향성 자체도.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는 1년 사이에도 정말 많은 관심사들이 생기고 눈도 높아지고 취향도 바뀐다. 근데 그 당시의 관심사, 아까 말했던 '필터'로만 5년 후를 생각한 거지 않나.


가은 오만방자한 거지, 진짜.


그게 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내가 5년 후에도 그렇게 세상을 바라볼 거라고 단정짓고 적는 거다. 물론 여전히 미래를 생각하고 내가 이때는 뭘 할지 상상하는 건 좋지만, 예전처럼 1년 후에는 내가 이런이런 것들을 해 놓고 이런 모습이 되어있겠지? 하고 단정짓는 건 더이상 안 하는 것 같다.


가은 나는 이런 계획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앞으로 쭉 나아간다든가 위로 쭉 올라가는 것보다 옆으로 넓혀나가는 계획. 예를 들어 내가 목걸이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이 목걸이 산 다음에 이걸 더 잘해서 어떤 걸 하고 이런 게 아니라 이것 근처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찾아보는 식으로. 코로나 때문에 어딜 안 가다 보니까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 게 가능한 것 같기도. 그리고 요즘 모든 걸 다 줌(ZOOM)으로 하다 보니까 잠깐잠깐 짬날 때 그런 소소한 탐색들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여행은 너무 가고 싶다. 못 잃어... 어딜 제일 먼저 가지?


나는 코로나 때문에 마음의 근육이 진짜 단단해진 것 같다. 막 가고 싶다...바라지만 근데 못 가는, 그런 무력감을 안고서 계속 꿈을 꾸는 거지 않나. 그때마다 마음의 근육이 좀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무력감을 안고도 계속 꿈을 꿀 수 있는 그런 (자세가 길러지는 것 같다)


가은 내 동생은 아예 한국에 들어올 수도 있다. 최근에 통화할 때 너무 말이 많아지더라고. 엄마아빠한테 부쩍 연락도 많이 하고. 그동안 많이 외로웠나 보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만 해도 친구들이 많았는데. 자기는 일본인 친구들도 힘이 되지만 그보다 외국인 친구들한테 힘을 많이 받는다 했다. 같은 이방인이라는 동지애도 느끼고. 근데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 친구들이 다 자국으로 돌아가니까 결국 돌아 보니 자기 혼자만 남게 된 거다. 일본도 한국처럼 밤에 술 같은 거 잘 못 마시고 거리가 되게 휑하다고 한다. 그래서 점점 외로움을 많이 느끼게 됬는지 돌아온다고 하더라고. 내가 그동안 너무 신경 못 써 준 것 같기도 하고. '걔는 그래도 괜찮을거야~' 생각했던 게 마음에 걸리더라.


그런 면에서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돌아간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나에게도 크게 다가온 것 같다. 원래는 내가 있던 곳에서 더 밖으로 멀리 뻗어나갈 계획이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결국 전주로 '돌아오게' 된 거였지 않나. 벽에 딱 마주쳤을 때 '돌아오는'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겪고, 그 개념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외국으로 교환학생이나 유학 갔다가 돌아온 애들도 되게 많았지 않나. 뭔갈 했을 때 잘 안 되어서 다시 돌아온다라는 걸 받아들이는 경험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또 그렇게 돌아왔는데 돌아온 게 자신에게 잘 맞고 더 뜻깊은 기회가 되어서 그렇게 인생을 풀어가는 사람도 생기는 것 같고. 우리는 항상 계속해서 더 넓은 곳으로 나가려 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고 나의 컴포트 존(Comfort Zone)을 넓히는 것에만 연연해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게 아니라 원래 자기가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다시 고려해 보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가은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운동하는 곳에서 매달 우수회원을 뽑아서 상을 준다. 근데 보니까 외국인인 거다. 상품이 몇 주째 계속 있어서 왜 이 상품은 찾아가지질 않냐고 물었더니 자기 본국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래서 아, 정말 모든 사람이 다 자기 자리로 돌아갔구나. (느꼈다) 그래서 그 선물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아직도 (그곳에 있다).


다시 돌아와서 나를 키워준 것, 나의 뿌리를 돌아보는 계기도 된 것 같다.


가은 그리고 떠나기 전과 어떤 고난을 한차례 겪고 돌아왔을 때와는 상당히 괴리가 있을 텐데 그 차이도 되게 재밌을 것 같아. 난 비교대상은 없지만.


나도 나갔다 돌아오진 못했으니까. 나가기도 전에 빠꾸당한 거지.


가은 근데 좋은 변화들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니 좋은 변화도 있고 다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지금쯤 멈춰야 딱 적당하다.


질려버린다. 올해까지만 가자. 코로나. 올해까지는 일단 백신들이 거의 상용화 될 테니까. 분명히 내년에는 올해와는 또 다른 풍경이 있겠지.


가은 맞다. 정말 가야할 데 많다고.




OUT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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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질문들에 한 번 대답을 고민해 보세요!)


Insight


1. 해외 이동과 관련한 아쉬움이 가장 많다.(유학, 워홀, 여행)

2.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라는 상황을 인정함으로써 다른 가치관과 습관이 형성되기도 했다.

3. 더 뻗어나가는 것이 아닌, 원래의 뿌리로 돌아온다는 것에 대한 개념의 도래.

4. 코로나로 인해 더욱 발전된 영역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힌트의 등장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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