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수많은 '권모술수'에게
'동성애 쓰나미'.
<남의 연애>, <메리퀴어> 등 동성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하자 어떤 기자가 넌더리를 내며 쓴 기사의 첫머리. 아쉽게도 당신이 쓰고 흡족했을 저 비유는 '양성애 허리케인'을 들고 나온 한 SNS 유저를 필두로 조리돌림 당하는 가엾은 퇴어 따위로 남았다.
당신들은 퀴어를 향해 "너희들이 지지고 볶는 건 내 알 바 아니지만, 굳이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기분 잡치니까. 보기 껄끄러우니까. 그래서 퀴어 축제를 벌이는 이들을 두고 '유난스럽다'고 하며, 이해를 강요하지 말라 말하며, (백 번 양보해서) 할 거면 니들끼리 안 보이게 숨어서ㅡ'음지'에서ㅡ조용히 하라고 말한다. 눈에 거슬리니까. 심기가 불편하니까.
비슷하게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두고도 당신들은 말한다. "니들 이동할 권리 때문에 우리가 '피해 받지 않을' 권리가 침해당한다", "하필 출퇴근시간에 하는 것은 무슨 심보냐", "할 거면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라는 가시 돋힌 말은, 니들 때문에 내가 불편하기 때문에, 하지 말거나 숨어서 조용하게 니들끼리 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들이 그동안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봐주지 않았던 까닭에 그들은 더욱 공공연하게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부러 출퇴근시간을 고를 수 밖에 없었다. 불편해야, 불편해져봐야 비로소 당신들은 반응하니까.
당신들은ㅡ차마 쪽팔려서 그렇게 말은 하지 않더라도ㅡ장애인, 퀴어, 여성, 노인 등의 소수자는 자신보다 덜 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일상의 많은 면면에서 쉽게 손해봐야 하고, 나와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없어야 한다. 그들이 동등해지려고 움직이는 순간, 당신들은 그것을 당신의 지위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당신들을 권력자로 있게 하는 것은 그들보다 덜 손해보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인데, 바로 감히 그것을 해하려 드니까. 그들이 감내하는 불평등한 삶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는, 그 '정상인'이라는 알량한 지위를 자신의 유일한 권력으로 착각하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위태롭게 하는 모든 목소리와 행동들을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들은 참을 수 없다. 그들이 당신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본인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기어올라오려고' 하는 것을. 그것은 불공정하다. 그들은 당신을 불편하게 할 자격을 가질 수 없는 존재여야 하니까.
화제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권민우(권모술수)의 열등감의 정체도 그러한 사고방식이다. 자폐를 가진 우영우는 당연히 자신보다 덜떨어지고, 기회를 박탈당하고, 성과를 보이면 안 될텐데 (장애인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도움을 '하사해 줄 수' 있는,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로 남아있어야 하는데), '자폐인인 주제에' 자기보다 잘나고, 자신보다 많은 기회를 가져가고, 성과를 내고,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게 그냥 '꼴 보기' 싫은 것 뿐이다. 그런 우영우를 보면 불편하고, 속이 끓어오른다. '정상인'이라는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위태롭게 하니까.
다시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돌아가서, 나름 개념 있는 척 하고 싶은 어떤 당신들은 말한다. "이동권 주장하는 거? 그래, 좋다 이거야. 그런데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지". 당신들은 당신들의 '피해 받을 수 없는' 권리를 주장하려고그들을 제물대에 세운다. 똑같이 '피해 받을 수 없는' 권리를 주장하는 그들을. 그들은 고작 당신의 출퇴근 시간 10분을 빼앗지만, 당신은 그들을 모욕하고 인권을 빼앗는다. 당신들에게 피해를 준 것은 누구인가. 당신들에게 피해를 주는 장애인을, 출퇴근 시간 지하철 바닥까지 내몬 것은 누구인가. 정녕 당신들이 '피해를 주면 안 되지'라고 외쳐야할 상대는 누구인가. 하지만 당신들은 알고 싶지 않다. 그것을 생각하기엔 너무 게으르니까. 거대한 사회보다는 약자를 한 번 비난하고 마는 게 간편하니까. 속도 풀리고. 당신들은 종종 소수자는 도와야 하고, 마땅히 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단, 당신이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당신의 심리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당신과 같은 권리를 누리거나 기회를 보장 받지는 않는 선에서.
귀갓길의 불안을 호소하며 방범을 강화할 것을 호소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당신들을 불편하게 한다. 당신들은 여자들이 자신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며 분노한다. 당신들은 여자 때문에 불편하고 불쾌하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여성의 목소리가 그렇게 당신들을 불편하게 하고 심기를 거스르게 한다는 이유로 묵살당해서, 여성들은 목숨의 위협을 받고 생명과 직결된 공포를 느끼고, 마침내 살해당한다. 장애인이 이동권 시위를 하느라 당신들은 불편하고 불쾌하다. 그러나 장애인의 시위가 당신들을 불편하게 하고 심기를 거스르게 한다는 이유로 제지당해서, 장애인들은 바깥에 나설 수 있는 다리를 절단당하고, 가고자 하는 장소에 이를 수 없다. 퀴어들이 서로를 사랑해서 당신들은 불편하고 불쾌하다. 그러나 퀴어들의 사랑이 당신들을 불편하게 하고 심기를 거스르게 한다는 이유로 비난당해서, 음지로 내몰리고, 근거 없는 공격을 받으며 가장 기본적인 마음을 존중 받을 권리를 박탈당한다. 그들은 당신들의 고작 심기 따위를 맞추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당하고 저당잡히는데, 당신들은 그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게 당연하니까. 감히 그들 때문에 내가 내려 놓는 게 있어서는 죽어도 안 되니까.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더 불편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말하는 '못 볼꼴'에 제대로, 질릴만큼 노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편하다는 쌉소리를 할수록, 더 거리로 나오고, 더 외치고, 더 가로막고, (말마따나) 유난을 떨고 아주 지지리 궁상을 떨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은 더 불편해져야 한다. 고작 당신들이 불편해하는 게 얼마나 실은 별 것 아닌지, 당연한 것처럼 대단한 거라도 되는 것처럼 지켜달라 외치는 '편할 권리'가 얼마나 하찮고 위법하며 차별적인지. 당신들의 말과 행동이야말로 얼마나 '많은 것'을 가로막고 있는지.
그래서 마침내, 불편해져봐야,
당신 일인 줄 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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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이런 주제로 K와 대화하다가, 한참을 분노했다.
더 불편해야 한다고. 더 불편해져봐야 한다고. 더 불편해져봐야 안다고.
그렇게 생각했기에, 뚝딱 이런 글을 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8화를 보고 난 후, 권모술수 애송이에게 단지 화가 나서 끄적인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