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언가로부터 다쳤고, 그 사실에 안도했다.
회복하는 인간, 매 여름을 건너가는 나의 정체성이다. 이것은 사실 한강 작가의 어느 단편 소설의 제목이다. 한강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로 썩어 문드러져 있다. 악취 나는 입 안에서 질겅질겅 씹다가 퉤 뱉어버린 찌꺼기 같은 형상을 닮은 삶자락을 늘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힘들지만 그래도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게 되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모두 회복을 갈망하고, 그중 몇 사람은 실제로 나아간다.
시동을 거는데 몇 번이고 실패하는 올드카. 이봐, 이번이 몇 번째야. 이 망할 고물덩어리 같으니라고. 이게 요즘의 나라고 생각했다. 한 번 시동을 거는데도 기진맥진해진다. 그리고 뿌연 매연을 뿜으며 털털털 나아가는 차. 그 뒷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으로 7월을 맞이했다. 실은 6월 내내 오른쪽 손목이 아팠다. 그야, 자고 씻고 밥 먹는 순간 외에 늘 뭔가를 만들고 두드렸으니까.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다 끝내면 (병원엘) 가자, 하고 미뤘더니 통증은 팔을 타고 어깨까지 퍼져 6월 막바지 무렵에는 당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카페에서 라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한쪽 팔로 계속해서 어깨만을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언젠가부터 왼쪽 발목에도 통증이 재발해 더이상 병원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이맘때 쯤에도 똑같이 오른쪽 손목과 왼쪽 발목 때문에 병원을 찾았으니, 여름마다 나의 신체에 면목이 없다.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별로 심각한 것은 없다며 어떠한 약도 처방해주지 않았다. 당부 받은 말은 그저 '쓰지 말 것'과 '기다릴 것'. 하지만 손과 발을 쓰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지 않은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괜찮아질 수도 있다고 하여 그래서 지금은 그 시간, 이라는 것을 얌전히 그저 기다리고 있다. 인내심을 가지고, 당분간 시동조차 걸 필요가 없다. 그렇게 처방받았으므로. 움직이지 않는 올드카 안에서 하릴없이 뒹굴거리며 먼지와 햇빛과 등받이의 감촉을 느낀다.
고백하건데, 마음 대신 몸의 어딘가가 고장난 것이 이상하리만큼 기뻤다. 내가 상상으로가 아닌 실제로 다쳤다는 사실에 난 안심했다. 올드카는 정말로 낡아있었다. 그동안 너무 험하게 몬 탓에 서서히 부식되어 간 것이다. 정직한 속도로. 내가 느끼던 고통은 실재하는 위협이며, 난 충분히 다칠만 했다. 무리하면 망가질 뿐인ㅡ연약하고, 그렇기에 외면할 수 없는ㅡ인간이라는 사실이 나를 기대하게 했다. 키를 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손목과 발목에 쏟아지는 뭉근하고 따스한 햇빛을 느끼는 동안, 약물이나 주사에 의한 회복이 아닌 내 안의 세포가 자연스러운 속도로 회복해 갈 감각을. 이때다 싶어 하는 수 없이 손 놓고 모든 것을 내맡기는 일. 그저 시간이 본연의 속도로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 그 무력감이 밥 한 술 뜨는 일과 동일한 힘으로 나를 보살피고 회복시킨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감각, 더 정확히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하지 않아야) 나아진다는 감각. 그것이 회복하는 감각... 이라는 것들을 생각하고, 알아가는 중이다.
나는 무언가로부터 다치고, 회복하는 과정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