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내기로 한 나의 단어들

나를 키워준 사람들 그리고 고향의 언어, 변두리로부터.

by 위시

옆에서 전화통화를 하던 민경이가 '은색'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그 애가 발음한 '색'은 무명으로 감싼 혀가 여린 입천장을 훑고 지나가는 것마냥 부드러웠다. 마치 '은'이라는 우아한 단어를 수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무튼 그 단어가 유독 귀를 파고 들었던 이유는, 내가 말할 수 없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나는 은색을 '은쌕'이라 발음하는 사람이니까.


은쌕은 나의 변두리적 정체성을 처음 알게 해 준 말이었다. 전주에 살다가 초등학생 때 서울로 올라간 나의 사촌언니는 이 '은쌕'으로 또래 친구들에게 놀림받았다는 이야기를 해 줬다. 서울에서는 은색, 금색이라고 한다고. 그러면 서울에서는 짜장면도 자아장면으로 말해? 싸이즈(size)도 사아이즈라 말하냐구. 기가 차서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음절을 혀 안에 꽉 붙잡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식의 순진한 비아냥. 변두리에서 자란 사람은 밀려나다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게 무언가를 꽉 붙잡아 두는 감각을 체화하며 성장한다는 듯한 느낌을 알아갔다.


내겐 그런 은쌕과 같은 단어들이 더 있다. 은색과 같은 단어를 갈취할 수 없어서, 지켜내기로 한 나의 단어들. 오랜 세월 동안 침 속에서 뭉근히 숙성된 고향의 언어들. 혀와 이에 새겨진 음절들. 나를 키워준 사람들의 단어들. 서울에서 밥숟갈을 뜨는 와중에도, 입을 여는 순간 내뱉게 되는 몸의 단어들을, 마음이 시키는 단어들을 나는 실은 사랑하고 있다.


머디야. 모대. 머대. 춥다잉. 긍게. 저따 받쳐. 으자. 으사선생님. 으지. 머여. 그려. 호랑말코. 째쟁이. 몇요일. 많은 말들을 여전히 다른 말로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중에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집요한 녀석은 '머더러'다. '아니, 머더러 이걸 여따 올리라고 한다냐' 짜증 섞인 목소리로 회사에서 내뱉었더니, G씨가 웃어버렸다. 비슷한 예로는 '머더냐', '머뎌', '머더라' 따위가 있다. 특히 '머뎌'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 때 '여보세요'를 대신해 말할 수 있는 효자 용어이다. 무려 두 글자나 줄여주는 경제적인 안부.


머뎌. 이젠 내가 먼저 안하면 전화도 안 거는고마잉. 밥은. 어디여. 거가 어뎌 또. 모르겄는디. 긍게. 엥간허다이. 아녀. 아니랑게. 참말로. 알았응게 또 통화하게. 그려. 어잉. 어~~~잉. (뚝)


주로 다정한 이야기들. 솔직하고, 기교 없는 대화를 한다. 나의 언어는, 나의 마을의 언어는 그렇다. 다만, 가끔씩은 이 언어로 핀잔도 한다. 어느 밤, 집 앞 가맥에서 술을 마시고 함께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오는 길. 담배를 피우느라 한참이나 뒤쳐져 걸어오는 아빠에게 쏘아 붙인다.


하따, 이 잠깐 걸어옴시롱 그새토막에 또 담배한질라 펴쌓는고마잉.


한편 나는 엄마에게 '양'으로 끝나는 문장으로 주로 혼이 났다. '이놈의 가시내가 양'. 양. 양. 양. 이 말을 동기에게 했더니, 귀엽다고 했다. 귀엽다고. 나에겐 몸서리쳐질 정도로 서슬퍼런 꾸지람인데, 누군가에게는 그냥 하얗고 몽실한 털을 가진 순한 동물일 뿐이다. '양'은 그냥을 줄인 말이다. 그러니까 그 뒤에 어떤 잔인한 말도 붙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냥 확 갖다 버려버릴까', '그냥 확 맞아야 정신차리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문장을 갖다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말들이 쏟아지지 못하게, 분노를 단호하게 잘라내는 작두기 같은 '양'은 어쩌면 일말의 다정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문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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