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의 운명이 될 태도를, 지금 찾고 밑줄 긋는다.
"그런 태도로 살기".
소민이는 책에 밑줄을 쳐 가면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난 그런 소민이의 책을 휘리릭 펼쳐보는 것을 좋아하고. 소민이의 책이 아니라 그 누구의 방에 가도, 난 그의 책들을 재빠른 눈으로 포식한다. 난 누군가가 좋아하는 책을 좋아하고, 그들이 그 안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살펴 보는 것을 좋아하니까. "나는 그냥 지나친 문장을 누군가 밑줄 친 걸 발견하면, 다시 보여. 자세히 보니 멋있는 말이었네, 하고". "맞아맞아. 그래서 남이 밑줄 친 문장을 보는 게 좋아". 소민이는 2주 전에 새로운 오피스텔로 이사했는데, 통창 밖으로는 초등학교의 옥상이 보이고 어느 빌딩의 고장난 시계와 잠깐 떴다 사라진 무지개가 있다. 그리고 벽을 도배한 바다 엽서들, 바다 커튼... 그 아래 흰 둥그런 테이블에 마주 앉아 우리는 인생을 고민했다. 정확히는 우리의 오늘을, 요즘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서.
어떤 책인지 기억도 안나고, 문장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소민이는 흰 표지의 책의ㅡ그녀의 말로는 인문학과 에세이가 합쳐진 느낌 (긍정적으로? 어, 긍정적으로) 이라던ㅡ어느 문장에 연필로 주욱 밑줄을 긋고, 그 옆에 이렇게 썼다. "그런 태도로 살기". 그래서 그런 태도로 살고 있냐고 물었다. 난 이미 대답을 안다. NO.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웃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우리가 감명 받아서 밑줄을 긋고, 지켜보기로 한 모든 태도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하루하루를 낭비하는 스스로를 방금까지도 힐난했으니! 나와 소민이는 저녁 내내 이런 말을 했다.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안 하고 있어". 꿈이 자유롭고 욕심이 많은 우리는 아는 게 많다. 섣불리 뭔가를 모른다고 하지 않고, 실제로도 모르지 않아서... 많은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는다. 그게 요즘과 오늘의 우리의 태도다. 그렇게 밑줄 치면서 맨날 이제 이렇게 생각해야지, 이렇게 살아봐야지 다짐해도... "안 함". 소민이가 자조적으로 말해서, 난 위로한답시고, 아니 꾸짖는답시고, "원래 다 까먹지. 그러니까 다시 읽는 수밖에" 말해줬다. 이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우리는 게을러서가 아니라 단지 알기만 하기 때문에, 그동안 살며 밑줄 쳐 온 모든 문장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문장이 나의 실제적인 일상에 침투해 삶의 지침이 되기까지는, 그 이상이 필요하니까.
우린 아까 인생에 관련된 문답 같은 걸 각자 적고 그걸 서로 바꿔 읽어 보는 시간도 가졌다. 질문들 가운데는 실패한 경험을 묻는 질문이나 불안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난 그런 질문이 매번 어렵다. 난 실패한 적이 없고ㅡ설령 실패했더라도 그것을 실패라고 보지 않고ㅡ, 불안하지도 않기에. 음, 딱히 없는데. 라는 재미없는 답 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지. 불안장애를 진단 받았을 정도로 처참했던 시절을 딛은 주제에 불안한 게 없다니. 요즘 시대에 감히 불안한 게 없다고 말할 수 있다니. 이것도 쿨병이라면 쿨병일까, 낭만만을 내 것이라 생각하는 버릇. 아무튼 그런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생각하고 만다. 아직 닥치지 않은 무엇을 불안해 한들 무엇 하나.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 그저 오늘 하루하루를 무사히ㅡ이왕이면 즐겁게ㅡ사는 수밖에.
고백하자면, 정말 오랫동안 난 그런 태도로 살고 싶었다. 도무지 그런 태도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서, 내 것이 아닌 그런 태도를 간절히 탐닉해 끝내는 갈취하고 싶었다.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현재를 살라는 말, 그저 오늘에 충실하라는 말, 삶은 마음처럼 되는 것 없으니 흘러가는 대로 살라는 말 따위 뉘앙스의 문장들을 생애에 걸쳐 열심히 밑줄 쳐 왔고, 늘 그랬듯 금세 잊었다. 게을러서도 몰라서도 아니라, 아직 그 태도가 내 것이 될 수 없어서. 인생의 신이, 아직 그 태도를 내게 점지해 주지 않아서 기다렸다.
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운명이라면'. 얼마 전엔 길을 걷다가 리정과 아이키를 봤지만 민폐가 될까 아는 척을 하지 못했을 땐 이렇게 생각해 버렸다. 그들과 어떻게든 만날 운명이라면, 언젠가 다시 마주칠 일이 있겠지. (그말은 곧,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냥 우린 이 정도의ㅡ그러니까 말도 못 나눠 볼ㅡ인연이었던 거지. 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떤 여성분이 읽고 있던 책이 너무 궁금했는데,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이렇게 생각도 했다. 이 책이 나와 운명이라면, 언젠가 우연히라도 서점에서 발견하게 되겠지. (그렇지 않는다면, 이 책은 그냥 내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읽든 읽지 않든 상관없는 그 정도의 책이겠지). 늘 지나쳐 버린 것에 대해, 나의 운명이라면 언젠가 다시 나를 찾아오겠지 생각하며 그때를 기다리는 버릇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탐냈던 모든 밑줄 친 태도들도, 그런 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중요한 태도들을 모두 기억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갖가지 사정과 이유들로 그럴 수 없으니까. 하지만 개중에는 정말로 나에게 꼭 필요한 태도들이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살아야만 내가 조금이나마 더 나아지는 삶의 지침들. 그러한 어떤 운명적 교훈들. 내겐 '다가오지 않은 것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며 흘러가는대로 살자'는 뉘앙스의 태도가 그랬다. 그걸 나에게 기억시키려고, 선명히 각인시키려고 인생의 신은 나에게 어떠한 시기를 통과하게 했다. 좌절을 던져 그 안에 침수시켰다. 2019년 겨울,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10년이나 품은 꿈이 바스라졌을 때야 비로소 난 그 밑줄을 쟁취했다. 내가 그렇게나 갖고 싶었던 그 태도를 마침내 내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내게 정말 필요한 삶의 태도라면, 내가 친 수많은 밑줄 중에 꼭 얻어야 할 교훈이라면, 인생의 신은 그것이 뼈저리게 각인되도록 만드는 시간을 겪게 하는 것 같다. 우리가 밑줄 친 모든 문장을 우리가 기억할 수 없어서, 정말 이것만큼은 잊지 않고 살아가면 좋겠을 삶의 지침들을 선별해서 우리의 인생에 꼭 보여지고 느껴지는 사건들로 던져주는 것 같다. 그렇게 수많은 밑줄 중 두어 개 남짓한 태도가 마침내 우리의 것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도록 삶의 현장에 던져져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게 되고 마는 것 같다.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을 읽으면, 나도 좀 멋있게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소민이는 그런 마음으로 막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 그어진 밑줄은 없지만, 앞으로 여러 개의 밑줄이 생겨나도 소민이가 그리고 그 밑줄을 훔쳐 본 내가 모두 그 문장대로 멋있게 살아가게 되지는 않겠지만, 정말 우리가 그렇게 삶으로써 충만해질 수 있다면ㅡ그럴 운명이라면ㅡ언젠가는 어떤 사건을 겪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어지는 때가 올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해야 하는 걸 알면서 안 하는' 태도로 내일과 모레를 살더라도, 3년 후에도 변함없이 캔맥주를 마시며 나태한 서로를 까내리고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그중 한 밑줄이 우리의 삶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기다리기로 한다. 우리가 쓴 인생 문답을 3년 후에나 다시 읽어 보자고 하면서. "이 중에 하나라도 못 이뤘으면 어떡하냐". "반대로 다 이뤄서 '이런 소박한 꿈을 꿨다니' 하게 될지도 모르지".
언젠가 나의 운명이 될 태도를, 지금 찾고 밑줄 긋는다.
금세 잊어버려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an extract of my diary 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