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06)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 모자 가게(Milliner’s shop) 1879~86, 캔버스에 유채, 100x110.7cm, 시카고 미술관
에드가 드가는 1880년대에 파스텔과 유화, 드로잉으로 <모자 가게>를 그렸다. 기울어진 시선과 독특한 구도는 마치 작은 상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19세기 파리의 모자 가게를 생생히 불러낸다.
그림 속 젊은 여인은 누구일까? 점원일 수도, 손님일 수도 있다. 초기에 그려진 모습에서는 분명 손님으로 보인다. 그러나 팔꿈치까지 오는 긴 장갑을 착용했지만, 외출에 갖춰야 할 모자를 쓰지 않았다. 진열된 모자를 써보기 위해 자신의 모자를 벗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완성된 화면에서는 입술을 다문 채 핀을 물고 있는 듯하고, 장갑은 모자의 섬세한 천을 조심스레 감싸기 위해 낀 것일 수도 있다. 그녀가 모자를 만드는 이인지 구매자인지, 드가는 끝내 모호하게 남겨둔다.
여인은 오롯이 자신의 행위에 몰두해 있으며, 드가의 다른 여성 인물들처럼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옆 탁자 위에 놓인 모자들은 정물처럼 고요히 빛난다.
패션의 도시인 밀라노에서 화려한 두오모 대성당과 임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를 거닐던 기억이 떠오른다. 유럽 최초의 쇼핑몰에서 유럽 최고(最古)의 모자 가게를 바라보던 놀라움이 지금도 생생하다.
16세기부터 밀라노는 화려한 여성복과 장식, 특히 모자에 쓰이는 최고급 깃털과 리본으로 이름을 떨쳤다. ‘밀리너(Milliner)’라는 단어는 원래 밀라노에서 재료를 들여오던 상인을 뜻했지만, 드가가 그림을 그리던 시기에는 여성 모자를 제작하고 수선하며 판매하는 이들을 가리키게 되었다.
드가는 이 주제로 15~20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 중 가장 큰 작품이 바로 시카고 미술관에 소장된 이 그림으로 모자와 여인, 그리고 화가의 시선이 머물러 있다.
에드가 드가, <모자 가게에서>, 1881, 5장의 엮은 종이에 파스텔, 종이를 뒷받침한 뒤 캔버스에 붙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같은 원단으로 된 드레스를 입은 어머니와 딸, 혹은 자매로 보이는 여인들이 모자 가게에 나란히 앉아 있다. 이 파스텔화는 애초에 왼편 인물이 스탠드 앞에서 모자를 손질하는 장면으로 구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드가가 오른쪽 모자 아래에 여인을 더하고, 뒤쪽에 소파를 배치하면서 화면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 그 변화 속에서 왼편 인물의 정체는 바뀌고, 가게 주인은 사라졌다.
이는 인물들의 관계와 역할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서로 닮은 듯한 두 여인은 손님일 수도, 점원일 수도 있다. 드가는 이 모호함 속에서 인간과 사물의 경계를 은근히 흔들며, 관람자로 하여금 그림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끝없이 상상하게 만든다.
드가만큼 파스텔(pastel)을 익숙하게 다룬 화가는 없었다. 파스텔이란 빛깔이 있는 가루 원료를 분필처럼 굳혀, 종이에만 그릴 수 있고 가루가 떨어지는 단점은 완성 후 정착액으로 고정시켜야 한다. 메리 카사트도 드가에게 파스텔과 판화 기법을 배웠다.
1870년대 초반, 드가는 아버지의 사망(1874년)과 동생 르네(René)의 무리한 투자 및 사업 실패로 집안이 큰 빚을 지게 되었다. 그는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했고, 집과 소장하던 미술품까지 처분해야 했다.
당시 시력이 나빠지고 있던 드가는 유화보다 작업 속도가 빠르고 수정이 용이한 파스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파스텔은 데생과 채색이 동시에 가능하기에 드가는 뛰어난 데생 실력으로 파리 오페라 극장의 발레리나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그렸다. 이 작품들은 당시 파리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덕분에 드가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가문의 파산이라는 비극적 상황이 오히려 드가를 '발레리나의 화가'로 만드는 예술적 전환점이 되었고, 파스텔화라는 새로운 기법을 통해 대성공을 거두며 집안의 명예를 지켜냈다.
에드가 드가, <모자 가게에서>, 1882, 연회색 직조지(산업용 포장지)에 파스텔을 칠한 뒤 실크 볼팅(silk bolting),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이 그림에서 드가는 모자 가게에서의 만남을 포착했다. 꽃 장식이 달린 모자를 쓴 여인이 커다란 거울 앞에 서 있다. 그녀 옆에는 점원이 모자를 양 손에 들고 있다. 드가는 건식 파스텔 기법을 사용하여 깃털, 리본, 벨벳, 레이스 등 가게의 다양한 소재와 장식품의 질감을 표현했다.
드가는 여인을 부드럽고 섬세한 디테일로 묘사한 반면, 나머지 실내 풍경은 전신 거울과 벽과 카펫으로만 표현했다. 또한, 일본 판화의 영향으로 점원의 몸은 거울에 가려 오른쪽이 잘려 나가 오히려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드가는 마네의 <나나>에서와 같은 구도를 연출하였다.
에두아르 마네, 나나, 1877, 캔버스에 유채, 115x 154cm, 함부르크 미술관
에밀 졸라의 소설 <나나>의 주인공은 코르셋을 입고 수놓은 스타킹에 하이힐을 신고 후원자 앞에서 화장을 한다. ‘나나(Nana)’라는 이름은 19세기 후반 매춘부들이 흔히 쓰던 가명이었다. 장난기 어린 미소를 머금은 여자는 관람객을 힐끗 쳐다보고, 소파에 있던 남자는 두 동강이 났다. 그는 가구 한 점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이 그림의 모델은 당시 유명한 고급 창녀였던 헨리에테 하우저(Henriette Hauser)였다. 이 작품은 현대 파리 여성을 묘사한 마네의 상징적이면서도 논란이 많은 작품이다.
드가는 인상파 동료들처럼 현대 도시인의 일상의 순간을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켰다. 그의 모자 연작, 특히 1880년대 초와 1890년대 후반에 제작된 파스텔화들은 이러한 의도를 잘 보여준다.
그 시절 파리에는 약 천여 개의 모자 가게가 있었고, 모자는 모든 계층의 여성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이 그림 속 인물은 드가의 친구이자 동료 화가였던 메리 카사트이다. 드가는 “움직임이 어렵게 느껴지거나 모델이 자신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할 때” 그녀에게 포즈를 부탁했다.
드가의 모자 그림들은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을 지닌 여성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와 분위기를 포착하며, 조용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에드가 드가, 모자 장사, 약 1882, 따뜻한 회색 직조지에 파스텔과 목탄, 47.6 x 62.2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벨기에 출신으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연습생인 마리 반 괴템(Marie van Goetem)은 드가의 유명한 <14세 어린 발레리나>의 모델이다. 드가는 그녀와 닮은 모자걸이를 등장시켰다. 이 장면은 드가 특유의 재치가 담긴 시각적 농담이다.
에드가 드가, 14세 어린 발레리나, 1922년 캐스트, 2018년(tut), 부분적으로 착색된 청동, 면 파탄, 실크 새틴, 나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파스텔은 종이에 그릴 수밖에 없고 종이는 빛, 습도, 온도에 민감하여 회색 종이가 현재는 옅은 갈색으로 변색되었다. 메트로폴리탄에서는 드가 룸에 어두운 조명을 사용하며 적절한 환경을 유지하여 보존하고 있다.
조르주 월리엄 손리(Georges William Thornley, 1857~1935), 모자 가게의 여자들(에드가 드가의 원작을 제작), 1889~90, 종이에 석판화, 23.5x27cm, 시카고 미술관
조르주 월리엄 손리는 프랑스 티에(Thiais)에서 태어나 인상주의 운동을 일찌기 수용하여 대담한 붓 터치와 두꺼운 임파스토(impasto) 기법을 사용했다. 그는 화가로서도 성공했지만, 특히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에드가 드가, 퓌비 드 샤반(Puvis de Chavannes) 등 유명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석판화로 재해석하여 인상주의 미학을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드가의 <모자를 들고 있는 여인>(1885년경)이 2014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 506,500파운드(약 10억원)에 낙찰되었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감동을 전하지만, 그들의 삶과 예술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살아온 궤적이 곧 창작의 울림을 더 크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드가에게 닥친 집안의 몰락은 오히려 새로운 길을 열어준 운명의 반전, 새옹지마였다. 역경 속에서 그는 더욱 치열하게 예술에 몰두했고, 그 과정에서 남긴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