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07)
에드가 드가, 뉴올리언스의 목화 시장, 1873, 캔버스에 유채, 73x92cm, 포(Pau)미술관
1872년 10월,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친척들이 살고 있는 뉴올리언스로 여행을 떠났다. 미국에 6개월간 머물며 그는 18점의 작품을 완성했다. 뉴올리언스에 살던 동생 르네(Rene)는 형 드가와 프랑스와 영국 출장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했다. 화가의 또 다른 형제인 아킬레(Achille)도 그곳에 살고 있었다.
드가는 제임스 티소(James Tissot)에게 보낸 편지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귀한 목화로 덮인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아 일하는 열다섯 명 남짓한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한 명은 기대어 앉고 다른 한 명은 앉은 자세로 두 남자, 즉 구매자와 중개인이 샘플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말 독창적인 그림이고, 다른 많은 화가들보다 훨씬 뛰어난 솜씨로 그렸다고 생각한다." 드가는 이 작품을 위해 체류를 3개월 연장했다.
드가는 미국 남부 사람들이 면화와 함께 생존하는 모습을 발견했고, <뉴올리언스의 목화 시장>이 맨체스터의 면화제조업자인 윌리엄 코트릴(William Cottrill)에게 팔리기를 바랬다.
1878년 포 살롱에 출품되며 5,000프랑으로 평가되었으나, 2,000프랑에 포 미술관에 팔렸다. 이렇게 싸게 거래된 이유는 인상파에 대한 몰이해와 드가가 인상파 화가 중에서도 다소 애매한 위치에 있었고, 가문의 파산 때문이었다.
<뉴올리언즈의 목화 시장> 부분: 목화를 살펴보는 외삼촌 미셸 무송과 칸막이에 기댄 드가의 동생 아킬레.
작품 속에는 가족 사업의 일상이 사실적으로 담겨 있다. 전경에는 원면을 꼼꼼하게 검사하는 외삼촌 미셸 무송(Michel Musson)이 있다. 드가의 두 동생 중 아킬레는 유리 칸막이에 기대어 서 있으며, 르네는 자신의 회사가 파산한 기사를 읽고 있다. 무송의 사위인 월리엄 벨은 귀중한 소재인 면화와 거리를 두고 있다.
드가는 협상의 순간을 사진처럼 포착하며, 녹색과 갈색의 사무실 분위기와 정장의 어두운 색조, 흰색의 목화가 어우러진 세련된 대비를 강조했다. 이 작품은 드가가 고전적인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현대적 실험을 시도한 결과물로, 드로잉의 완성도가 높아 단순히 인상주의로만 규정하기는 어렵다.
에드가 드가, 화가의 외사촌, 아마도 월리엄 벨의 부인(마틸드 무송, 1841~1878), 1873, 녹색 직조지에 파스텔, 현재는 갈색으로 변색, 47.3x38.4cm, 메트로포리탄 미술관
초상화 속 모델이 외사촌 마틸드일 가능성은 드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는 마틸드와 자매들을 여러 차례 그렸는데, 이 인물들은 서로 닮아 있어 구분하기 쉽진 않다. 그러나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지적인 눈빛으로 곁눈질하는 모습은 코펜하겐 오르드루프가르드(Ordrupgaard, 국립미술관)에 소장된 파스텔화 속 마틸드의 얼굴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에드가 드가, 뉴올리언스의 발코니에 앉아 있는 여인, 1872~73, 종이에 파스텔, 64x 76cm, 코펜하겐 오르드루프가르드(Ordrupgaard, 국립미술관)
당시 마틸드는 갓난아기가 있어, 드가는 “두 달 된 아기를 돌보는 외사촌에게 모델을 부탁하는 건 정말 어렵다”라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일화는 예술가의 창작 과정이 단순히 영감만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관계와 일상에서 출발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1872년 11월 19일, 친구인 제임스 티소에게 보낸 편지에서, 루이지애나의 이국적인 매력에 매료된 화가는 처음에는 큰 가능성을 암시했다.
“목련, 오렌지 나무, 바나나 나무가 우거진 정원 한가운데에 홈이 파인 기둥이 있는 하얀 빌라들, 유색인종 유모의 품에 안긴 하얀 아기들. 작은 집 앞에 서 있는 모슬린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 공장 굴뚝만큼 높은 증기선, 그리고 과일로 가득 찬 가게를 운영하는 과일 장수들만큼 내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은 없다.”
뉴올리언스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구시가지.
미시시피강에서 증기선과 즉흥적인 재즈 선율이 어우러진 분위기를 경험한 후, 드가가 남긴 글을 접하니, 그의 시대적 감각과 예술적 시선이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드가는 고갱처럼 이국적인 매력에 매혹되지 않았고, 대신 섬세한 구도와 부드러운 표현을 특징으로 하는 초상화 작업에 집중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화려한 색채나 낯선 풍경 대신, 인물의 자연스러운 태도와 정교한 묘사에 무게를 두며, 드가 특유의 치밀한 관찰력을 보여준다.
미시시피강에 자리잡은 뉴올리언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재건 시대의 정치적 격변기를 맞이했고, 드가는 바로 이 시기에 미국을 여행한 유일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였다. 그는 1876년 파리에서 열린 인상주의 전시회에 이 작품을 출품하였지만, 냉담한 반응과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드가의 외할아버지 제르맹 무송(Germain Musson)은 아이티 혁명 이후 1810년 뉴올리언스로 이주해 면화 수출업에 종사했다. 크리올(creole) 명문가 출신과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에는 드가의 어머니 마리 셀레스트(Marie Celeste)와 미셸(Michel)이 있었다. 당시 크리올이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태어난 유럽계 후손을 지칭했으나, 오늘날에는 유럽계와 현지인의 혼혈을 의미한다.
1819년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무송은 가족과 함께 파리로 건너갔고, 이후 1832년 말에 딸 셀레스트가 오귀스트 드가(Auguste Degas)와 결혼하면서 다시 뉴올리언스로 돌아왔다. 이렇게 드가의 미국 경험과 가족사적 배경은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뉴올리언스의 목화 시장>부분
미셸 무송과 그의 동업자들은 아킬레와 르네의 사무실 근처에서 면화 거래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외삼촌의 사위 월리엄 벨 역시 파트너와 함께 같은 지역에서 면화 무역업을 하고 있었다. 드가는 매일 형제들의 사무실을 드나들며 신문도 읽고 그들의 사업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티소에게 보낸 편지에서 뉴올리언스에서는 “면화 얘기밖에 할 게 없다”고 말하며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처럼 드가는 가족과 목화 산업의 현실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고, 작품 속에 그 시대의 공기를 고스란히 담게 되었다.
에드가 드가, 미셸 무송(Michel Musson)과 그녀의 딸, 에스텔(Estelle)과 데지레(Desiree), 1865, 크림색 직조지에 연필에 수채화, 목탄, 붓, 붉은색 파스텔 물감을 덧칠하고 흰색 과슈로 강조한 작품, 35x26.5cm, 시카고 미술관
뉴올리언스에서 드가는 외삼촌 집에서 결혼한 외사촌 가족들과 함께 머물렀다. 드가는 특히 에스텔(Estelle)을 비롯한 가족들을 자주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친구 앙리 루아르(Herny Rouart)와 제임스 티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상황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남북전쟁 이전 뉴올리언스는 당시 최대의 목화 항구이자 노예 시장이었으며, 전쟁 중에는 남부 연합의 외교 전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865년 노예 해방 이후에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소작 제도와 정치적 차별 속에서 여전히 목화 생산의 주요 노동력을 담당했다. 무송과 드가 가문은 노예를 소유하고 남부 연합을 지지했으며, 재건 시대에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와 연관되었다. 드가의 어머니는 노예를 팔아 지참금을 마련했고, 아버지와 동생 르네는 남부 연합 채권에도 투자했다. 전후 이 채권이 휴지 조각이 되면서, 드가 일가는 빗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뉴올리언스의 목화 시장> 부분
르네는 드가와 눈매와 코가 많이 닮았고, 미셸 무송의 딸인 외사촌인 에스텔(Estelle)과 근친 결혼을 하였다.
뉴올리언스를 떠나기 전, 드가는 예술적 갈림길에 서 있었다. 현대적인 주제에 집중하는 그림에 대해 확신이 없었고, 작품을 판매하는 데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드가 드가의 <뉴올리언스의 면화 사무소>는 산업과 상업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독특한 주제였다. 또한 미국 남부의 목화 산업, 노예제도, 그리고 재건기의 정치적 갈등까지 읽어 낼 수 있는 시대의 보고서로 포 미술관을 대표하는 걸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