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쌓여서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평범한 가정이었다. 특별할 것도 잘난 것도 없는 가정에서 자란 필자는 부모님의 비장한 결심 덕분에 신혼 여행지의 메카, 하와이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푸르른 야자수 아래 에메랄드빛 바다. 헐벗은 관광객들.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해방감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하와이에서의 삶은 한국과 사뭇 달랐다. 기름지고 짠 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 미국 본토 음식과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풍경들이 내 마음속을 꽉 채웠고 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그런 생활 속에서 즐거움을 한 겹 더해준 건 해양스포츠였다. 자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그 이름도 이상한 서핑. 당시 한국에서는 서핑이라는 스포츠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양양이 서퍼비치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 것도 하와이에서의 기억이 잊힐 때 즈음이니 중학교 1학년에게 ‘서핑‘은 얼마나 해괴했을까.
서핑을 알게 된 계기는 우연인 듯 운명 같았다. 와이키 해변이 핑크빛으로 물든 어느 날, 한 외국인이 다가와 서핑 강습을 받아보겠냐고 물었다. 서핑은 관심도 없었지만 파도를 탈 수 있다는 말에 매혹되어 강습을 시작했다. 외국인의 이름은 ‘싸무‘였다. 통통한 체격에 항상 서핑 보드를 들고 다니는 중년의 남자. 당연하게도 강습은 영어로 진행 되었고 사교육의 공기 조차 느껴본 적 없었던 필자는 한 마디의 말도 떼지 못했다. 그러나 배우고 싶은 열망과 가르치고 싶은 열정 사이에 언어는 무의미했다. 스탠드 업, 다운 같은 단어들의 나열을 딛고 보드 위를 오르락내리락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하드 트레이딩 받은 효과는 놀라웠다. 파도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얼음 빙판 위 춤을 추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운 파도를 타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서핑에 재미가 붙자 하루가 멀다 하고 바다에 나가 서핑 연습을 했다. 파도는 늘 그 자리를 지켰고 너른 품으로 들어오는 나를 환영했다. 지켜보던 아빠도 합세하여 서핑을 배워보았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말았다. 떨어지는 이유는 단 하나, 파도만큼이나 깊고 끊어지지 않는 생각들. 생각이 너무 많아도 파도에 올라타지 못한다. 파도의 품은 오직 나에게만 열려 있었다. 아빠의 스파르타식 훈련은 뒤로하고 열심히 연습했다. 맹연습 끝에 A라는 눈부신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서핑은 무식한 사람이 잘 탄다’는 싸무의 우스갯소리를 웃어 넘겼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던 것 같다. 복잡하게 꼬여 있는 인생도 간단하게 생각하면 다르게 보일 때가 있으니까. 그저 ’꼬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 파도에 몸을 맡기듯이 인생에 몸을 맡겨보면 어떨까. 떨어져도 괜찮다. 다시 올라타면 되니까. 파도는 또 나를 바다로 데려갈 테니까. 언제든 뛰어들 수 있게 파란 품을 내어줄 테니까.
서핑이 나에게 가르쳐준 건 불행과 직면할 수 있는 용기였다. 강한 시련이 덮쳐와도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 강인함. 어느새 훌쩍 커버려 ‘싸무‘의 나이가 된 지금도 용기가 필요한 순간마다 거침없이 파도를 타던 겁 없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