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마다 캐롤이 울려 퍼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날. 한 해의 가장 큰 행사, 크리스마스다. 대형 마트에는 거대한 트리와 리스, 반짝이는 오너먼트들이 즐비하고 사람들 얼굴에 미소가 만연하다. TV에는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가 재생되고 연말 약속을 정하자는 연락이 빗발치는… 건 다른 사람 이야기다. 세상 사람들은 행복한데 내가 머무는 한 칸 남짓한 방은 비좁고 우울하기만 하다. 머물 수 있는 공간은 기껏해야 SNS 정도일까. 익숙한 광장 위에 세워진 알록달록한 트리 사진이 쉼 없이 공유된다. 크리스마스 예약 꿀팁, 연인과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해야 할 일들, 크리스마스 여행 명소 같은 소식이 화면을 가득 매우지만 딱히 나갈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취준생에게 크리스마스는 사치다. 있는 자들의 여유이고 그 여유는 돈에서부터 나온다지. 유일하게 소비하는 것은 한 때 애정했던 연예인의 굿즈 정도인데 그마저도 식상해지려고 한다. 남들이 누리는 행복의 틈바구니 속에 껴 사랑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대신 질투라는 시커먼 그림자를 그들을 덮어버릴지도 모르니. 이 추악한 마음이 고개 들기 전에 얌전히 집에 있어야겠다. 침대에 눕자마자 거짓말처럼 핸드폰이 울린다. 아르바이트 사장님이다.
“오늘 나와줄 수 있어?”
“네. 지금 갈게요.”
크리스마스는 2배 이벤트이다. 시급이 두 배이니 안 할 이유 없다. 그들의 미소가 마음 한 켠을 시렵게 해 평소보다 능률이 떨어지는 것 말고는 어려운 건 없겠지. 집 밖으로 나온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올해도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오지 않으려나 보다. 눈이 오면 좋을텐데…
아르바이트 가게까지 가는 길은 심적으로 물리적으로 멀다. 버스를 타고 13정거장을 지나면 비로소 도착한다. 꺄르르 웃는 커플들을 지나 빈 좌석에 안착한다. 이어폰을 끼고 뒤죽박죽 플레이리스트에서 아무 노래를 고른다. 때마침 흘러나온 노래는 조용한 캐롤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이런 날에 참 잘 어울린다. 가게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북적인다. 경쾌한 캐롤이 울려퍼지는 매장 안에서 하하호호 웃으며 식사하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친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사장님을 돕는다.
비즈니스 미소를 장착하고 손님을 응대한다. 이런 날에도 힘써줘서 고맙다는 사장님의 칭찬에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잠잠해지고 손님의 한 마디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캐롤의 멜로디가 귓가를 때리고 그제야 매장 입구 앞에 서있는 작은 트리를 발견한다. 기분이 좋아진다. 진심으로 사람들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을 것 같다.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밖을 나온다. 우산을 쓴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비가 오나 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새하얀 눈이 비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애매한 화이트 크리스마스.
평소처럼 오늘도 집 안에만 있었다면 맞지 못했을 하얀 눈이다. 크리스마스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구나. 오랜만에 하염없이 걷고 싶다. 아직 채 다 눈이 쌓이지 않는 얼룩덜룩한 아스팔트 바닥에 발자국을 남겨본다. 내가 남긴 흔적이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좁은 방안에서도 힘껏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세상이 언젠가는 알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