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야옹하고 울지 않는다

삼냥이 관찰 일지

by 셀라

지구별에 착륙한 생물체로서 26년, 집사로 2년 정도 살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고양이는 야옹하고 울지 않는다.

인간의 눈동자와 대비되는 샛노란 눈동자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저 녀석은 꼭 나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다. 앙증맞지만 뾰족한 이빨을 갖고 있는 뒷다리에 흰 줄이 그어진 섹시한 고양이… 라고 하지만 그거야 부모님의 시선이고. 내 눈에는 인간으로 치면 미운 7세나 다름없는 말 안 듣는 꼬맹이일 뿐이다.


오늘도 이 녀석은 싱크대 위를 훌쩍 올라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식빵을 굽고 있다. 싱크대 주위를 탕탕 치며 내려오라고 소리를 지르면 들은 체 만 체 하다 마지못해 뛰어내린다. 냐앙, 아앙, 에옹 같은 항의를 하며. 그래, 이건 곧 선전포고. 그리고 곧 이어 우당탕탕 소리가 들린다. 시끄러운 소리를 싫어하는 꼬맹이의 귀여운 반항이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선반 위에 올라가 보란듯이 물티슈를 냥발로 떨어트리고 둔탁한 소리에 자기가 더 깜짝 놀라 쇼파 밑으로 숨어버린다. 집사의 업무답게 땅바닥에 떨어진 물티슈를 집어 선반에 올려두고 있으면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천천히 걸어와 뺨을 부빈다. ‘나 예쁘지?’ 라는 눈빛을 담은 표정.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 만다. 고양이는 귀엽지 않았으면 진작에 멸종 됐을 거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을지도.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 고양이가 세상을 구한다!


한바탕 꼬맹이의 장난이 끝나면 공주님이 등장한다. 우아한 몸짓으로 다가와 머리를 콩콩 부딪히며 궁디팡팡을 종용하는 둘째다. 유일하게 궁디팡팡을 좋아하는 공주님은 두드려주지 않으면 품속을 파고든다. 쫑긋 세운 귀, 유난히 쫀득한 뱃살, 벚꽃잎이 생각나는 핑크빛 코, 햇빛을 받으면 밝은 갈색빛으로 반짝이는 털, 물결 무늬처럼 올라간 입꼬리 :3 둘째 별명이 공주님인 이유는 어떤 동물 병원을 가던 ‘공주님’이라는 호칭이 붙기 때문이다. 우는 목소리도 병아리 같다. 삐익, 삐- 어쩌면 고양이의 탈을 쓴 병아리가 아닐까.


공주님의 취미는 집사의 행태를 잘 살피다가 다가올라치면 눈치보며 꽁무니를 내빼는 것. 오후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다가 아침엔 집사의 생사를 확인하러 침대 위로 폴짝 올라와 냄새를 맡는다. 확인이 끝나면 긴 팔을 뻗어 이불에 꾹꾹이를 시작한다. 간혹 날카로운 발톱이 이불 옆 삐져나온 팔이나 다리에 박히곤 하는데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프다. 아침을 깨우는 집사의 비명은 덤.


왜에에에에옹. 덩치 큰 대장 고양이의 등장. 통통한 몸과 대비되는 갸날픈 울음소리. 땡그란 눈과 동그란 얼굴형이 첫째의 특징이다. 배 윗 부분과 입가를 제외하고는 검정색으로 덮혀 있어 갓 잡아올린 싱싱한 고등어를 연상시킨다. 흰색과 검정색이 뒤섞인 절묘한 색상 조합과 패턴은 ‘귀엽다‘말고는 어떠한 단어도 떠올릴 수 없게 만든다. 딱히 집사에게 다가오지도 도망가지도 않는 느긋한 성격의 소유묘는 내킬 때 반갑다고 인사한다. 반가움을 감추지 못해 부르르 떨리는 꼬리는 귀여움을 더해주는 포인트.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출렁거리는 뱃살은 약점이 아닌 첫째의 위엄이다.


나무늘보의 영혼이 들어간 대장은 하루에 절반은 바닥과 한 몸이 되어 늘러 붙어 있는다. 그러다 심심하면 지나가는 꼬맹이 발을 콱 물고 늘어진다. 이건 고양이 세계에서의 결투 신청. 당연히 결과는 꼬맹이 승리다. 적에게 지고 만 패배묘는 스크래쳐를 북북 긁으며 다음을 노린다. 다음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과 유일하게 교감할 수 있는 동물이 고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화도 내고 짜증도 부리고 숨기도 한다. 이렇듯 의사표현을 피부에 닿게 하는 동물이 고양이 말고 또 있을까?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고양이는 도도하고 날렵하지만 반대 사례도 있다는 게 제법 웃기고 신기하다. 삼냥이와 더 오래 살다보면 고양이의 언어를 터득하게 되는 날이 올까. 네 눈동자에 비친 마음을 읽어낼 수 있을까. 고양이는 오늘도 야옹하고 울지 않는다. 그저 싱크대에 올라가 식빵을 굽고, 엉덩이를 치켜들고 기다리며, 집에 돌아오면 현관문 앞에 누워 꼬리만 살랑 흔들 뿐이다. 그런 고양이들과 함께하며 오늘도 조금 더 고양이의 언어를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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