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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원 Jan 20. 2020

다리미, 다림질

숙련가와 전문가의 차이를 이해하고, 나만의 분야를 개척하라

나는 스물다섯살 11월 이후에는 회사생활을 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5장 (휴일이 있으면 4장, 연휴면 3장, 주말에 일이 있으면 6장)의 셔츠를 입는다. 셔츠는 ‘와이셔츠, 화이트셔츠, 드레스셔츠, 셔츠-샤스, 남방’ 등으로 1물 5칭(한가지 물건에 다섯가지 호칭)이라고 한다. 백색 셔츠라는 화이트셔츠, 목부분의 Y자와 화이트의 일본식 발음인 ‘와이’가 섞여 와이셔츠, 드레스를 입는 상대방에 어울리는 드레스셔츠, 줄여서 셔츠-샤스, 포괄적 의미의 남방 등이 있다.

셔츠의 기본은 구김이 없어야 한다. 셔츠가 구김이 없으려면, 다림질이 필수이고, 다림질을 도움주려면 세탁 이후에 잘 털어서 말리면 도움이 된다. 그리고 다리미가 필요하다. 물론 다리미판도 필요하다. 다리미판이 없으면 20cm 정도 높이가 있고 딱딱한듯 부드러운 가로 세로 50cm 이상되는 판 같은것도 좋다. 

다리미는 대표적인 전열기구다. 요즘은 드물지만, 다리미 과열로 인한 화재가 심심찮게 뉴스에 나왔다. 가정마다 다리미가 있다시피하니, 과열에 따른 화재는 다리미의 숙명인듯하다. 다리미가 열을 내지 않으면 화재  발생은 없지만, 주름을 펴주진 못한다. 요즘은 몇해전부터 스팀 다리미가 가정에 보급되면서 과열에 따른 화재위험은 낮아졌다. 우리집에도 다리미가 있었다. 가물가물하지만, 증조할머니는 화롯대 같은 곳에 뜨거운 숯을 놓고, 불에 달군 인두로 옷을 다리셨다고 한다. 전기 사용료가 들어가지 않는 전통적인 다림질이지만, 굉장한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인두 사용의 부주의와 미숙련에 의한 옷감 손상과 변색, 심할 경우 옷감 구멍의 피해가 더 클 것인가, 전기 사용료가 더 많을 것인가, 아니면 다리미에 의한 화재 피해가 더 클 것인가, 스팀 다리미 구매비용이 더 클것인가. 개인의 경험에 따라,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를테다.

 한국전력거래소에서 실시한 2009년 가전기기 보급률 및 가정용전력 소비행태 조사 자료를 보면  tv, 냉장고, 세탁기, 선풍기, 에어콘, 진공청소기, 컴퓨터, 전자레인지, 그리고 다리미의 전국 보급대수가 나와 있다. 1993년부터 2009년까지 기간을 6회에 걸쳐 조사했다. 다리미는 1993년에는 1,113만대 2009년은 1,542만대라고 나와있다. (9개 물품 가운데 가장 많이 보급된 가전제품은 TV와 선풍기이다. TV는 1,534만대에서 2,368만대, 선풍기는 1,588만대에서 2,929만대가 보급되었다고 한다. 우리집에도 선풍기는 TV보다 많다)

어릴적 우리 어머니는 뭐든 다 잘 하시는 분이었다. 먹고 싶은 음식은 뭐든, 필요한 물건은 뭐든,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은 다 잘 하셨다. 초등학교 2학년때 학교에서 강남콩을 키운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담아주신 화분흙은, 나의 강남콩이 전교1등으로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 화분을 키워야할 때도 어머니의 손을 거친 화분은 남달랐다. 그만큼 어머니는 손재주가 좋으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림질엔 익숙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마 다림질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일테다. 자동으로 온도조절되는 빨간색 삼성전자 다리미가 어머니처럼 손재주 많은 분들에게 ‘넘사벽’일리 만무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리미보다 세탁이후에 탁탁 털어서 마당에 있는 긴 빨랫줄에 널어셨다가 최소한의 주름이 생기는 방식으로 옷을 잘 접은 다음 (흔히 빨래를 개는 행위) 무게감이 있는 책이나 소품들을 얹어둔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매일 셔츠를 입으신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 출근 모습은 늘 ‘흰색 반팔셔츠’에 검정색 바지였던 것 같다. 우리집 앨범에 나온 아버지 일하실때 사진은 흰색 반팔셔츠가 대부분이다. 아버지는 온화하신 분이고, 아주 점잖은 분이셨다. 하지만, 우리 삼남매가 일기를 쓰지 않는다던지, 너무 늦게까지 TV를 본다던지, 일찍일어나지 않는다던지, 거짓말을 하는 경우에는 불같이 활를 내셨다. 정말 무서울때가 많았다. 가훈이 ‘정직’이었기 때문에 정직하지 않는경우에는 가차없었던 것 같다. 당신도 그러하셨지만, 사람은 본인의 도리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좋은 분이다. 굉장히 좋은 분이다. 하지만, 좀 예민한 부분도 있으셨다.

어머니는 다리미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셨지만, 아버지 출근때 트러블이 발생한적이 없었다. 가슴과 배 부분은 물론, 등 쪽에는 주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셔츠의 생명이라 할수 있는 깃(callar, 칼라, 카라 - 1물 3칭)도 매끄럽게 준비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어머니가 다리미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일단 바빴다. 3남매 뒷바라지와 남편, 그리고 시어머니, 시할머니까지 돌봐야했다. 큰 살림이었다. 자연히 셔츠와 교복을 잡고 다림질 할 시간이 없었다. 두번째 이유는 다리미를 사용해보질 않으셨기 때문에 자신감이 조금 떨어진것 같았다. 자연히 한두번 옷이 눌러붙은 경우나 태우는 경우도 있고, 가끔은 화재 위험이 느껴질 정도로 과열된 다리미를 접하시곤 깜짝 놀랄일도 있었을테다. 다림질하는데 막내인 내가 울고, 형과 누나가 다투는 상황이라면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예 다리미를 사용하지 않고도 옷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법을 익히신듯하다. 마지막 세번째 이유는 전기 사용료이다. 절전형 가전일 수 없는 다리미, 절전기술이 없는 듯한 다리미, 하루 30분의 다리미 사용에 따른 전기 사용료로 다른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셨던 듯 하다. 

여행을 떠난다. 가는 곳마다 내가 모르거나 낯선 환경이면 긴장하기 마련이고 조심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그런 여행이 길어지면 피로를 풀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반대가 된다. 상당히 피곤하다. 반면 가는 곳곳 아는 곳이고 아는 사람이 즐비하고 잘할수 있는 것들이 많다면 여행의 기대감은 줄어들지만 편안한 휴식을 즐길수 있다.

내가 잘 하는 분야(여행지)를 접하면 다소 심심하다. 극적인 긴장감과 재미도 떨어질수 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편하다. 잘 쉴수 있다. 반면 어려운 길을 선택하면 길은 재미있다. 흥미진진하다. 무슨일이 터질지, 누구를 만날지 하루하루가 신기하다.

나는 특별한 다림질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전기 사용료를 아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에 교복은 다려서 입은 일이 많지 않다. 누나가 가끔 다려주긴 했지만, 그럴때마다 ‘누나의 할 일이니, 다리고 싶으면 다리고 다려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곤 했다. 운좋게도 군대에서도 우리 부대는 소위 정비병이라고 하는 ‘다림질과 이발을 하는 병사’가 있었다. 제대후, 복학, 복학후 졸업. 졸업후 시작된 사회생활, 25살 11개월차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된 다림질. 남들보다 좀 늦은 다리미지만 나는 열심히 했다. 지금도 내 셔츠는 내가 다려입는다. 직장생활 초반에는 내가 다려입다가, 세탁소 이용도 했었다. 결혼하고는 줄곧 세탁소 이용이었다. 특히 첫째 둘째가 태어나고 잠깐 도우미를 고용한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편했다. 육아 도우미께서 내 셔츠도 다려주셨다. 동네 세탁소는 비싸다가 ‘셔츠 한장 990원’이라는 컨셉으로 크린토피아를 몇 년 이용했다. 하지만 이 마저도, 머리속 한켠에 있는 ‘하루에 990원, 일주일이면 4950원.. 이 돈이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찰나, 크린토피아에 맡긴 옷들은 단추가 많이 깨져 있었고, 마침 요금도 1200원으로 인상되었다. 나는 마흔살에 다시 다리미를 잡았다. 10년만에 다시 잡은 다리미, 다리미판 그대로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혹은 새벽시간에 옷을 다린다. 조금씩 숙련되는 것 같다. 스물 다섯살때 사용하던 그 다리미에 있는 기능들에 감탄 하기도 한다. 즐거워진다. 기능을 이해하고, 셔츠의 원단에 따라 온도를 달리해야 하는 스위치, 스팀이 나오는 빈도와 양을 적절히 맞혀가는 즐거움이 있다. 뜨거운 다리미가 지나가고 반듯하게 펴지는 기분이 좋다. 하지만, 한번에 펴질줄 알았는데 두어번 지나갔음에도 펴지지 않았다? 그러면 온도 조절을 달리하고 스팀의 양을 조절하면 그 역시 내가 해결했다. 나는 어느새 숙련가를 넘어 전문가가 되 가려 한다.

숙련가와 전문가, 굳이 선택하라면 전문가를 선택해야 한다. 아니, 전문가를 선택해야 하는 분위기이다. 여행을 떠날때 여행지의 일정과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해서 간접 경험과 사전준비에 의해 전문가가 될수 있다. 전문가와 숙련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시간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업무와 경험에 대한 익숙해질때까지의 전문성과 숙련 두가지를 골고루 갖춰야한다. 반복하는 일만 잘하는, 일을 반복하기만 하는 사람을 숙련가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숙련가와 전문가의 차이는 크지 않다. 그 분야를 잘 모르는 일반인이 보기엔 이미 아주 높은 차원의 이야기다.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아직 나는 전문가이거나 숙련가이거나 하는 분야를 정의하지 못했다. 이미 정해진 분야에서는 전문가이거나 숙련가 둘중 하나는 될 것 같다. 학생으로서 전문가와 숙련가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오랜시간 동안 공부를 하는 공부 숙련가와 공부 전문가, 둘 다 대단하다. 학교에서 정한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의 과목, ‘내신성적, 모의고사 성적, 수능성적’이라는 과목의 평가 잣대와 같이 남들이 정한 기준 안에서만 ‘전문가와 숙련가’를 고민하지 말아라. 나만의 기준, 내가 마음에 드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그것에서 ‘숙련가가 되고, 숙련가를 넘어서는 전문가’가 되길 바란다. 때론 힘든 시간일수도 있지만, 경험과 추억이 되어 다른 어려움을 만났을 때 뛰어넘을 수 있는 디딤돌, 사다리, 지지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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