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의 소중한 친구다.
5학년 1학기때 전학 갔다. 북후국민학교 5학년 1반에서 안동국민학교로 갔다. 5학년 1학기를 마무리할 즈음 전학이 결정됐다. 최근에야 들었지만, 북후국민학교에서는 학생 유출이 심각했고, 대단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부좀 하는 학생 하나가 또 빠져 나가는 상황이었다. 부모님은 이미 길원여자고등학교, 안동고등학교 학생이었던 첫째 둘째가 이미 상급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에 시골학교에 막내를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나 보다. 고민을 많이 하셨던 듯하고, 유치원 이후 처음으로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다. 때마침 5학년 1학기 기말고사 성적발표가 있었고, 허원도 선생님의 성적발표가 있었고 공교롭게도 여학생 1등이었던 미경이 (강미경)와 동점으로 남학생 1등이 나였다. OMR카드 채점 방식이 아니라, 문제지와 답안지가 있었고 옆자리 앉은 친구들이나 옆반 담임 선생님이 답안지 채점을 하셨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진실인지 거짓인지, 공교롭게도 5학년 1반은 미경이가 전체 1등이었지만, 점산 이후 내가 한문제를 더 맞았기 때문에 남여 공동 1등이었다. 현구를 비롯한 몇몇 친구들의 환호성이 터지면서 운동장으로 뛰쳐 나갔다. 영문도 모른채 따라나갔던 운동장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아버지는 바쁘셔서 어머니 혼자 오셨다. 병설 유치원 이후 줄곧 학교에 오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교무실에서 허원도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요지는 간단하다. 북후국민학교, 북후중학교 이후에도 안동고등학교를 갈 수 있다는 선생님의 의견을 들었다. 어머니는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지금 안동국민학교, 안동중학교 가면, 안동고등학교 말고도 다른 고등학교를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씀을 하셨다. 허원도 선생님은 크게 반발하지 못하신듯하고, 전학결정은 내려졌다. 특이한건 교장 선생님까지 뵜다는 것이다. 김준동 교장선생님께서는 ‘친구를 잘 만나야 합니다~’라고 하셨다. 언제 어디서건 본의 아니게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벌어질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맞이하기 전에, 좋은 친구를 만나야 한다. 교장 선생님 이야기를 직접 들은 어머니는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고 하셨다. 한 학년이 두개반밖에 없는 시골 국민학교에 비해 안동국민학교는 ‘시내'애 있는 학교다.
한 학년에 7반내지 8반까지 있는, 어림잡아 한학년이 350명, 전체 2000명 근접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은 할아버지 (인생 음식 ‘갈비탕'의 작은 할아버지)가 안동국민학교의 전신인 안동중앙학교의 교사였다고 하셨다. 물론, 우리 할아버지는 북후국민학교의 교사셨고, 당시 제자였던 강동완 교감 선생님은 아버지의 은사였다. 세상이 좁은건지,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의 교사 이력이 우연이었건지, 나는 자연스럽게 안동국민학교로 전학되었다. 친구 현구와 기성이를 비롯해서 여학생으로 성적 라이벌이었던 미경이와 선미들과 눈물나는 이별을 하고 2학기 첫날부터 안동국민학교 5학년 2반으로 배정받았다. 웅진아이큐라는 예습 복습 학습지가 있었고, 당시까지 학교 수업에 크게 어려움이 없었던 나로서는 거칠게 없었다. 단숨에 ‘공부좀'하는 전학생이 돼버렸다. 작지 않은 키에다, 축구도 좀 했고, 편견이 없었다. 전학오자마자 짝꿍은 서진교였다. 시골에서 온 내가 보기엔 완전 ‘도시 아이'였다. 발명대회에서 자주 수상한 이력이 있다고 들었다. 발명대회가 뭔지 잘 몰랐지만, 어항 청소하는 자석 청소기로 안동시 교육청장 주관의 발명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했다. (어항의 물이끼를 제거하기 위해서 손을 넣어서 닦아 내는 것이 아니라, 어항 바깥쪽에 강한 자석을 대고 어항 안쪽에는 수세미 재질의 부직포가 철판을 감싸고 있었다. 어항 바깥에서 자석을 움직이면 어항 내부의 부직포는 덩달아 움직였다. 그러면서 자연히 어항 물때는 제거되었다) 어른들이 도와준 흔적이 있긴 했지만, 진교는 내 짝꿍이었다.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때 당시 친구들, 시골 학교에서 처음와서 알게된 친구들, 지금은 내가 친구라고 판단하지만, 그들은 아닐수 있다. 바짝마른 행주처럼, 물방울 하나가 닿기라도 한다면 나는 곧바로 흡수했고, 내가 겪은 상식을 총 동원했다. 즉, 그들의 작은 관심은 내겐 기회였고 친구를 만드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보면, 종현이, 수병이, 상희, 경하, 종석이, 강수, 정선이, 현주 라는 친구가 당시 친구다. 글쎄, 알고 지낸지 30년이 지난 친구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그때 어떻게 친구가 되었지?’를 되뇌이는건 추억을 되뇌이는것 이상의 느낌이다. 나 혼자의 오지랖으로 다가갔던걸까? 그때 친구였는데 지금은? 잘지내니, 한 때 나의 모두였던 너희들~ 만감이 교차한다.
국민학교 공부는 발표력과 공식 시험 성적이 ‘잘하고 못함'을 결정한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키, 뽀얀피부로는 패권을 갖지 못한다. 학업성적 다음에 키가 있었고, 다음으로 잘생긴 얼굴이 있었다. 학업성적이 뛰어나면 잘생김 이상이다. 그것은 곧바로 매력이 된다. 학교 생활에서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학교는 체육관, 운동장, 영상센터, 영화관, 극장, 경연장이 아닌 교과목을 가지고 지식을 쌓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공부를 잘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일수밖에 없다. 골프장에 가면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 제일 멋져보인다. 당구장에서는 당구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나 멋진 플레이를 펼치는 사람, 농구 코트 위에서도 경기를 지배하는 사람이 가장 멋진 것처럼 상황에 장소에 따라 추구해야하는 가치는 다르다.
어느 장소에서건 내가 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그래서 공부의 시작을 ‘집중력 방해하는 요소의 제거'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공부의 집중, 집중공부는 시간을 단축시켜주어 효율적인데다 계단식 학습에 도움이 된다. 교과목이나 학문에서도 기초와 기본, 그리고 중급자 상급자 과정으로 이어지는데, 계단식 학습을 통해 단계를 올려가면 성취감을 느낄수 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 단위는 ‘교시'인데, 초등학교는 40분, 중고등학교는 50분 정도다. 왜냐하면 그 시간이 그 나이에 집중할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학습시간안에 학습효과를 배가시키려면 집중력이 관건이다.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 가운데, 의외로 ‘친구'가 있다. ‘친구'를 떠올려보자. 좋은 추억, 즐거웠던 시간, 그냥 상상만해도 좋은 것이 친구다. 반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친구들도 있다. 친했다가 소원해진 친구, 반대로 대면대면하다가 서서히 친해진 친구들 다양한 친구가 있다. 친구라는 단어가 주는 경험의 양면성인데, 공부에 집중하는데도 같은 역할을 한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같이 잘해보자는 윈윈'이 아닌 이상, 친구는 집중력 방해꾼이 될 공산이 크다.
북후국민학교에서 안동국민학교로 전학을 마무리하고, 안동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어머니는 바빠서 불참, 할머니께서 같이 계셨다. 교장선생님은 ‘시골에서 온 학생은, 친구를 잘 만나야 합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야 합니다. 좋지 않은 친구를 만나면 학교 성적이 떨어질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것도 친구이고, 좋은 길로 안내하는 것도 친구입니다.’라늘 이야기를 매우 강조했다. 할머니는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않으셨지만, 천자문은 물론, 덧셈, 뺄셈, 곱셉, 나눗셈, 그리고 알파벳을 읽을줄 아셨다. (필기체는 읽을줄 모른다고 하셨다) 윷노래나 노동요 같은 것을 기억해두셨다가 반듯하게 접은 한지에다 써주셨다. 그리고 적당한 음을 맞춰 노래로 불러주시곤 했다. 1927년생으로 진성이씨(퇴계이황 후손)의 여식이었기에 지성은 물론, 교양과 지혜를 갖춘 분이셨지만, 선생님 특히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유언처럼 하셨다.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 안동국민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호원이한테 이야기한 것이다’는 말씀을 하셨다. 국민학교 졸업식이후 중학교 입학때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중학교 입학이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셨고, 입원하기도 하셨고 그러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를 무척 아끼셨고 친구에 대해서는 늘 같은 말씀을 하셨다. 친구의 중요성이 아니라, ‘좋은 친구의 중요성'에 대해서 거듭 강조하셨다. 부모님과 떨어져 잠자고, 사춘기가 지나면서 가족보다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시기에도 할머니 말씀을 실천하려 애썼다.
공부에 도움이 되는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가 존재할리 없다. 내가 고를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지혜와 용기는 지식과 실력에서 시작한다. 직간접 경험을 골고루 익히려는 나의 의지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나도 누군가의 친구이므로 내 기준에서만 친구를 고를순 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익혀야 하는 것은 좋은 친구를 고르는 능력이 아니라, 좋은 친구가 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파트너이자 멘토, 멘티가 된다. 멘토가 되려하지 말고, 멘티가 되려고 노력하라. 내가 멘토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만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파트너로서 훌륭한 멘티가 되려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중요하다. 흔히 메타인지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내가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이다. 무작위로 숫자 15개를 모두 암기한다고 메타인지가 높은 것이 아니다. 나는 비록 10개밖에 기억해내지 못해도, 5개를 잊어버린 나의 기억상태를 잘 아는 것이 더 유용한 것이다.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할 줄 아는것과 그 반대의 것을 구분하고 인식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바른 길로 가는지를 스스로 인식하는 힘이 바로 메타인지 학습법이다. 그것이 자존감 향상으로 이어져 나의 몸과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비로소 누군가의 소중한 친구인 ‘바로 나'로 성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