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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원 Nov 25. 2020

아버지가 내주신 일기 숙제

일기와 편지는 나의 반려자(字)이다.

글은 사고를 넓혀준다. 7살 어린이가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 어려운 단어나 긴 문장은 좋은 글이 아니다. 좋고 나쁨은 없다고 하지만, 흑역사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글의 수준은 어린에게 맞추되, 독자에게 향하는 친절함과 독자를 이끌어가는 흥미진진함은 작가의 몫이다. 근면성실함은 많은 경우에 빛을 발한다. 경영학에서는 ‘무식한 사람이 부지런하기까지 하면 곤란하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펜으로 적는 글의 세계에서든 타이핑으로 이뤄지는 글자들의 향연에서든 내가 가고 싶고 상상하는 데로 이뤄진다. 아버지에 의해서 강제로 시작된 일기였지만, 편지로 진화된 나의 글은 나에게 더없이 좋은 친구이자 반려자(字)이다. 펜을 움직일수 있는 힘이 있는 한, 키보드를 누르수 있는 영민함이 있는 한 나의 일기와 편지를 이어가고 싶다. 일기라는 습관을 주신 아버지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오늘은할매하고안동장에같다’

나는 인생 첫번째 일기의 시작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모음과 자음이 합해진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는 알았지만, 아래에 받침이 들어가면 너무 버겁다. ‘형아~ 할매할때 할 어떻게 써?’ ‘누나~ 장에갔다 할때 ‘갔'은 어떻게 써?’ 그렇게 완성된 첫번째 문장은 ‘오늘은 할머니랑 안동장에 갔다’ -> ‘오늘은할매하고안동장에같다'

아버지는 누나와 형의 일기검사를 많이 하셨다. 나중이었지만, 누나와 형은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휩쓰는 수준급 글쟁이들이다. 특히, 누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다. 고전은 물론, 독서의 종류와 범위를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었다. 가장 맏이인 누나인데다 문학적인 소양과 글솜씨가 이미 다른 차원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누나일기장은 검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형과 나같은 남자아이들과 달리 ‘여학생 일기장'은 다른 느낌이다. 아버지는 그저 매일매일 작성했는지 여부만 체크하셨다. 반면 형은 누나와는 반대였다. 일기를 비롯한 문학적인 소질보다는 가전제품같은 것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고, 만들고 부수는걸 좋아했다.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다. 누나에 비해 외부활동이 많았으므로 누나 분량만큼의 일기를 적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형은 일기 때문에 아버지께 혼나는 모습이 잦았다. 그래서 형은 나중에도 일기를 열심히 적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나? 나는 자발적인 동기였지만, 일기적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혼나지 않는 목적이 우선이었으므로 재미가 없었다. 문제는 한글을 잘 몰랐다. 세종대왕은 ‘아침에 시작해 저녁이면 익힐 수 있는 것이 훈민정음'이라고 했지만, 왜이리 어렵던지. 한글을 깨치는데 많은 애를 먹었다. 국민학교 입학할때도 한글은 잘 몰랐다. ‘자음+자음'은 괜챃지만, 거기다 받침이 들어가는 순간 포기했다. ‘ㅕ'발음과 ‘ㅇ'발음은 특히 어려웠다. 발음 뿐만 아니라 쓰기 부분도 큰 문제였다. 아버지는 ‘일기만 잘 쓰면 모든 공부의 절반은 끝난다'는 말씀을 즐겨하셨다. 절반이 끝나기 전에 힘에 부친다는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핑계와 이유는 뒤로하고 1학년때부터는 일기를 써야만 했다.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일기는 안된다. 국민학교 1학년에게는 어울리지도 않을 대학노트 같은것에다 글을 써야만 했다. 시작은 아주 훌륭했다. 아버지는 학교 입학때부터 일기를 쓰길 원했지만, 나는 유치원때 한번 써봤다. 그 유명한 ‘오늘은할매랑안동장에같다'. 크게 만족하신 아버지는 국민학교에 입학한 막내아들의 일기검사는 심하게 하지 않으셨다. 작성여부 정도만 체크했고, 글씨를 너무 빨리 쓰지 말라는 말씀정도만 했다. 1학년의 일상이라는게 늘 비슷하고, 같은 지역을 왕복하는 상황에 새롭게 느낀점이나 다짐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 자연을 관찰하거나, 계절의 변화,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 기다려졌다. 왜냐하면, ‘오늘은 학교에 갔다왔다. 수업이 끝났다. 친구랑 걸어왔다. 배고파서 밥을 먹었다. 방 청소를 했다.’ 요란한 기상변화가 생기면 중간중간에 새로운 내용이 추가된다. ‘천둥 번개가 번쩍였다. 소나기가 심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나무가 많이 휘었다.’ 하지만, 몇년간 지속된 ‘날씨 중개'는 쓰는 이도 검사하는 이도 지치게 했다.

여름방학이 다가오면서, 아버지의 일기 검사는 뜸해졌다. 아버지께서는 ‘하루 20분 가량 투자해서, 인상깊었던 일을 적고, 반성할 일에 대해서 반성하고 다짐하고, 느낀점을 적어라'는 식의 시간과 내용에 대한 가이드를 정해주셨다. 곰곰히 생각하면, 부모가 된 지금 자녀들이 알아서 일기를 잘 써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과연 일기를 써본 경험이 도움이 될까. 세가지 정도의 개인 경험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먼저, 학생. 최상위권 수준의 학생이 아닌, 평범한 학생으로서 어린시절 일기가 어떤 도움이 있었는지. 두번째는, 사회 경제활동을 하는 직장인으로서 어린시절 일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것이다. 끝으로, 아버지 말씀을 적당히 잘 들었던 파파보이입장에서, 더 오랜 기간, 더욱 많은 시간을 기울여 일기를 썼더라면 상상으로 마무리하려한다.

의외로 학창시절 글쓰기는 많았다. 독후감 쓰라는 숙제는 왜이리 많은지, 수업시간에 필기해야하는건 왜이리 많은지. 하지만, 어린시절 글쓰기 경험 덕분에 ‘보기 좋은 글씨체'는 아니었지만, 비교적 빠른 속도로 오랫동안 글쓸수 있는 훈련은 완성됐다. 나는 한번에 좋은 글이 나오는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샤워하다 갑자기 문구가 떠오르고, 시나리오가 떠오르는 것은 정말 천재들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반면 나는 매일 조금씩 글을 쓰는 ‘직업인으로서 소설가'가 맞다고 본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분량의 글을 쓰는 것이 좋은 글의 준비운동이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 좋은 작가의 밑거름인것이다. 어린시절 일기 연습으로 말미암아, 중언부언이지만 길게 쓰는 길을 좋아한다. 주어와 서술어의 의미가 어색할 정도로 긴글을 쓰다가 마무리가 안 된적도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논술시험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논술? 논리적인 글을 쓰라는 말인가? 누가 첨삭을 해주나? 이 정도의 궁금증을 갖고 있을때, 금경태 선생님께서는 쉽게 말씀하셨다. 고등학교 1학년이 쓴 글을 부모님이 봐주시는 것이 가장 좋다. 즉, 어른들에게 전해지는 청소년들의 글이라고 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간결하고 쉽게 쓰라고 했다. 그러면서, ‘장래희망'이라는 주제어로 에세이를 쓰라는 과제를 주셨다. 5분 정도의 수업진행방식이후에 곧바로 ‘장래희망'이라는 네글자를 갖고, 1학년 8반의 학생 47명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아니 일사분란한줄 알았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장래희망에 대해서 성의있게 글쓴 사람은 나를 비롯해 4-5명 밖에 되지 않는다. 나를 제외한 아이들은 각자의 중학교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거둔 소위 우등생이었다.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렀다. 글을 써본적 있느냐고, 쉽게 쓰는것 같다고, 써본적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예상대로 나는 ‘오늘할매랑안동장에같다'로 시작된 어린 시절 일기, 그리고 나서는 방학숙제 일기 이외엔 특별히 글을 써본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한가지 단어나 문장을 두고 글쓰는 것은 즐겨했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림을 잘 그리거나, 노래를 잘하면, 혼자있는 시간에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지만, 내 그림은 나 조차도 알아보기 힘들고, 노래는 듣기에 거북했다. 그렇다고 붓글씨를 쓸순 없으니, 그저 연습장 뒷면에 단어를 가지고 상상하는 연습은 많이 했다. 1학년 때 처음 썼던 에세이인 ‘장래희망'은 어머니의 장래희망을 다뤘다. 한시간이라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 짧은 호흡으로 빠르게 진행했다. 서울대에 입학한 시동생, 막내 아들은 서울대를 보내고 싶은 어머니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서울대 졸업해서 법관이나 판사가 되길 바라는 국민학교 졸업 학력의 어머니의 시선으로 ‘고등학교 1학년'의 장래희망을 표현했다. 시간관계상 마무리하진 못했지만, 나의 손은 마음껏 휘갈겨졌다. 첫번째 작문 수업 시간에 얻은 자신감으로 나는 글쓰기는 너무 쉽고 자신있었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제시된 주제'에 충실해야하는 논술에서도 내마음대로 주제를 바뀌어 대학 입시에서는 ‘0점'을 받은적도 있었다. 대학교 4학년때 ‘중진국 정치론'에서는 D학점을 받은적도 있다. 차라리 F학점을 주던지, D학점이 뭐람, 권무수 교수님을 찾아가 논쟁을 하고 싶었지만, 형편없이 길기만 글을 읽을 가치가 없다는 교수님의 대답을 확인했다.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글이란 내가 모은 재산이다. 잡동사니다. 그냥 흔적 자체다. 앞으로 달려가기 위한 밑거름 같은 것이고, 그때 그 시절이 지금의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바로 ‘나의 글'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만든 100여권의 일기장은 ‘100여권'이란 분량을 제외하면 별 내용이 없다. 40년에 걸쳐 굉장히 많은 양의 글을 썼다는 것 자체가 내가 글을 쓰고 짓는 이유다.

사회생활에서 나의 이런 글들은 도움이 되었다. 일기에서 시작한 나의 글은 ‘편지'로 바뀌었다.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데는 편지가 좋다.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는데도 편지는 상당히 도움이 된다. 좋은 말들은 잊어버리기 마련이지만, 종이에 적힌 편지는 읽는이의 상황이나 시간, 컨디션에 따라 다른 작용을 한다. 편지를 통해 이뤄진 비지니스는 아주 오랫동안 빛을 발한다. 내용보다는 ‘편지 그 자체'였다. 꾸준한 편지는 앞으로 수십년의 미래에서도 설득이 필요한 순간, 마음을 얻어야 하는 순간에 빛을 발하는 최고의 도구라 확신한다. 요청사항을 적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관심,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 갖고 싶은 것에 대해서 정확히 언급하면, 편지라는 종이에 담긴 내용들은 그 사람 주변에 맴돌면서, 나의 분신 역할을 해준다. 설득의 효과를 비롯해 확률, 그리고 진정성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도구가 바로 ‘자필편지'다. 내용이나 형식은 별로 혹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어릴때 아버지에게 항변했던 것처럼, ‘도대체 무슨 말을 편지에 적으란 말이냐'라고 묻는다면, 아버지의 대답처럼 ‘오늘 있었던 일과 느낀점과 반성할 부분과 다짐할 부분을 적어라'고 얘기 하고 싶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단체나 집단이라는 군락을 이룬다. 대게 비슷한 성향이나 나이, 지역의 군락과 관계를 맺는데, 정작 그 군락의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만,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았다는 내용을 섬세하게 표현하면 진심 전달은 충분하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상대가 동의하는지도 쉽사리 파악된다. 좀 답답하거나 지루한 상황이 예상되거나, 발전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내가 원하는 모습을 상대방에게 편지로 보내라. 꾸준히 실천만 한다면 반드시 이뤄진다. 사회 생활하면서, 명함을 받거나, 연락처를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다. 오늘 만난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누구인지 모르지만, 반드시 손편지를 작성하라. 그 사람이 설령 가족이라도, 내일 다시 만날 사람이라 하더라도, 현재 지금 당신의 직업이 어떤 것인지에 관계없이 니가 오늘 만난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아라. 발송하지 않더라도 좋다. 편지를 쓰라. 내일 만날 사람이어도 좋고, 편지를 쓰지 말라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해야할 일이다. 발송여부는 두번째 문제이거나 고려하지 않아야할 문제다. 쓰는 것이 우선이다. 설령 발송하지 못하고 버리게 된다면 반드시 ‘백업'을 만들어두고, 폐기하기전에 다시한번 고민하라. 쓸말이 없다면 관찰한 느낌과 날씨를 적기만 해도 충분하다. 그렇게 알게 된 사람을 1주일에 한번씩 문자, 2주일에 한번씩 의미없는 안부전화, 3주에 한번씩은 꽤 괜찮은 정보가 담긴 우편물이나 편지, 4주에 한번씩은 5분은 만나더라도 지속적인 만남을 가진다면 내가 설득하지 못할 상대는 없다. 적어도 사람을 상대하기는 직업에서 1,2,3,4,5의 법칙은 한번도 패배한적 없다. 설마 될까?하는 마음에서 시도하지 못했을 뿐 시도한 모든 사람은 성공했다. 나는 사람과의 비지니스 직업이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 만난 사람에게 자필 편지 정도만 활용하면 상대에게 ‘가종 소중한 사람'으로 성큼 다가서게 된다.

꽤 부리지 않고, 독후감도 더 열심히 쓰고, 아버지 일기장 검사와 관계없이 그 많은 시간 일기를 적었더라면 어땠을까? 국민학교 고학년 시절에 ‘분서갱유'한적이 있다. 국민학교 1,2학년 일기장을 모두 버렸다. 5학년이 보기에 1,2학년 일기장은 너무 유치했다. 흑역사이니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역사를 지우고 나면 그 역사가 더 그립고 후회스러운 법. 지금 가장 그리운건 나의 ‘날씨 중개 일기'였다. 매일 어떻게 다른 느낀점이 있을까도 궁금하고, 그때는 무슨 일을 하고 살았을까 궁금하다. 어린시절 일기장을 남겨두지 않은 것을 가장 후회한다. 국민학교, 중학교, 특히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관하지 않은 것을 가장 후회한다. 특히, 고등학교 교과서들은 교양서적으로도 매우 훌륭하다. 영어는 중학교 3학년 교과서만 익혀도 충분하다.(영어 단어 암기하는 방법 참조) 고등학교 전과목의 교과서는 백과사전에 버금가는 지식을 제공한다. 거기에 선생님들의 지적 능력이 가미되었다. 어미새가 배고픈 아기새들에게, 벌어진 입에다가 잘게 넣어주는 지혜들을 잘 적은 ‘또다른 일기장이나 편지글이 담긴' 교과서 버린것을 많이 후회한다. 정말 아깝다. 교양서적이 사라진 것에 대한 후회와 3년간 필기하고 정리했던 내 기억들이 사라진것들. 늦은 사춘기가 왔던지, 그냥 사물함 통째로 버린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모으기와 버리기의 연속이었네. 부끄러워도 내 역사인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내가 존재하는 한 내 역사는 그대로 남을텐데, 그걸 모르고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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