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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원 Nov 22. 2020

첫 술~

세상 대부분 일은 인과관계와 인간관계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때 키는 183cm가 되었다. 제법 컸다. 처음 키를 쟀던 1986년에는 131cm였다. 8살에 131cm였으니 큰 편이었다. 키의 기록은 큰 편에서 시작했다. 반면 몸무게의 시작은 25kg이었으니 날씬하게 시작했다. 키와 달리 몸무게는 계속해서 늘었다. 고등학교 1학년 183cm에 65kg이었던 몸무게는 고등학교 시절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63~65kg’을 유지하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73kg. 그리고 지금은 나이살과 뱃살의 복합연쇄작용이 이뤄지고 있다. 직장생활 17년차에 매년 1kg씩 찌는 것이 살이 되었다. 지금은 거의 없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입던 옷들 (특히 유니폼)이 작아졌다. 옷은 그냥 작아지는줄 알았다. ‘이상하다, 건조기에 넣은것도 아닌데 옷이 왜 작아졌지?’ 옷이 작아진것이 아니다. 몸이 커진 것이다. 살은 신체 모든 부위에 다 찌는 것 같다. 손도 커졌고, 발도 커졌고, 뱃살은 물론, 등과 허리, 심지어는 머리에도 살이 찌는 것 같다.  

살과 관련된 이야기 너무 많다. 살이 왜 찌는지, 어떻게 찌는지, 왜 찌면 안되는지, 쪄도 되는건지는 ‘다이어트’라는 검색어 한번이면 충분하다. 일단, 나는 이미 살이 많이 쪘고, 살을 빼야한다는 진단도 받았다. 의학적으로 비만이지만, 나는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생각하고 있으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지금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고, 특별한 근거가 없는 이야기일수 있다) 살이 찌는 이유는 많이 먹기 때문이다. 많이 먹지만, 그만큼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살이 찐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살이 빠진다. 많이 먹고, 많이 움직이면 살은 그대로가 된다. 살을 빼려면 많이 먹지 않아야 한다. 운동을 해서 살을 빼라는 것은 식품회사의 로비 결과다. 운동을 통해 살이 빠질수도 있다는 뉴스와 소문을 많이 낸 다음, 음식회사는 음식을 판매하기 위해서다. 결코 운동을 통해서 살이 빠질수 없다. 

살이 찌는 음식은 맛있는 음식이다. 저녁에 먹는 음식들은 대부분 살이 찌는 음식들이다. 동물들은 살이 찌지 않는다. 간혹 배가 많이 나온 강아지나 고양이들을 접할수 있는데 이것은 모두 음식회사의 로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자연에서 동물들은 ‘해가 지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고 한다. 동식물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해가 진 이후에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다이어트 방식 가운데 해가 지는 시간 (대체로 6시나 7시) 이후에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가장 효과적으로 살이 빠진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이후 해가 진 이후에 먹지 않은 적이 얼마나 있는지 세어 보라고 하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두 손에 있는 손가락을 다 접어서, 그게 모자라 발가락까지 동원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고등학교 이전에도 마찬가지일것이다. 차라리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영유아시기가 본능에 충실했으므로 더 많았는지 모른다. 

저녁에 먹는 음식으로 대표적인 ‘밥과 술’이 있다. 5학년 이야기를 이야기하면서 술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 법에도 미성년자에게는 술을 판매해서도 안된다. 술을 판매하는 가게나 술병에도 미성년자가 술을 마셔서는 안되다고 나와있다. 술로 인한 사회적인 피해는 물론 학생들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이 많지 않아서일 것이다. 처음 술을 접한건 제사때였다. 설이나 추석때 차례지낼때, 1년에 20번 이상인 기제사 때 술이 빠지지 않는다. (‘우리집 제사’ 참조) 정종부터 막걸리였고, 국민학생이었던 시절에도 제사 이후 어른들은 ‘괜찮다. 음복은 마셔도 된다’며 술을 권해주셨다. 정종은 아주 비린 맛이었고, 막걸리는 시큼하고, 아주진한, 조금 상한 식혜 같았다. (전국 표준어인 식혜는 안동에서는 한가지가 더 있다. 찹쌀 알갱이가 떠오르는 막걸리 같은 식혜를 ‘감주(甘酒)’라고 ‘단 술’이라고 한다. 안동에서 식혜는 외관상 동치미같은 붉은색 식혜를 말한다) 국민학생 시절엔 술을 왜 마시는지 이해할수 없었다. 중학교때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3학년 즈음 어떤 친구들이 맥주를 마시면 시원하다고 했다. 우연찮게 맥주를 접해봤는데, 시원한 맥주만 시원했고, 개운하거나 갈증을 해소해주는 기능을 해주진 못했다. 어른들 앞에서 술을 배우면 괜찮다는 말로 미성년자에게 ‘음주’기회가 잦았다. 하지만, 술 자체의 맛에 대해서는 아직도 좋다 나쁘다 평가할순 없지만, 술 안주로 나온 음식(안주)들은 참을수가 없었다. 특히 제사음식은 양념이 없고, 식재료 고유의 맛을 느낄수 있다.  

처음 술을 마신것은 고등학교 2학년때였다. 정규수업이 끝나면 오후 3시 30분경, 청소를 하고, 보충수업이 시작된다. 2시간의 보충수업이 끝나면 6시, 1시간의 저녁식사 시간은 자유시간이다. 밥을 먹던 굶던, 운동을 하던 잠을 자던 상관없다. 7시부터 시작되는 야간자율학습 시간 전의 일종의 준비시간이다. 고등학교 1학년은 8시까지, 2학년은 10시, 3학년은 12시까지 의무적인 자율(?)학습을 해야만 했다. 학원이나 과외보다는 선생님 감독아래 의무자율학습이 우리 학교의 전통이었다. 간혹 시험기간이나 한달에 한두번 정도는 야간자율학습이 일찍 끝난다. 2학년 때 7시경에 끝난적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용상동 시장을 지나는데, 친구가 ‘한잔할래?’라고 하는 것이었다.

‘어?’

‘소주한잔 할래?’

‘......’

‘싫음 말고, 안 먹어 봤어?’

‘어..’

그래서 용상시장 용상파출소 뒤에 좌우 나란히 있는 용상시장에서 ‘인생 첫술’을 시작했다. 안주는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오뎅국물이었다. 2000원쯤 되었다. 소주는 ‘두꺼비 금복주’였다. 가끔 분식을 먹던 집이었는데 설마 술을 먹게 될 줄이야. 그것도 교복을 입고, 그것도 용상 파출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 지역에서 안동고등학교는 가장 명복 고등학교였는데, 안동고 학생 2명이 오뎅 떡볶이에 소주를 마신다니. 한병은 정확히 7잔 반이 나왔다. 정확히 두병을 둘이서 나눠 마셨으므로 한사람당 7잔 반을 마셨다. 생애 첫술치고는 성공적이었다. 소주 한병에 1500원, 친구와 2500원씩 나눠서 계산하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왔다. 야간자율학습 이후 술자리(?)까지 마치고 집에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키와 몸무게는 이미 성인이었지만, 성인들이 되는 첫번째 관문인거 같은 술자리를 했다니.. ‘아버지에게 술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버지는 상당히 자주 술을 드시는 편이었다. 아주 어릴적엔 술 드시고 오신 아버지가 좋게 보이진 않았다. 선물을 사올때는 너무 좋긴 했지만, 우리 3남매를 앉혀놓고 잔소리를 하셨다. 잔소리는 괜찮은데, 했던 이야기를 계속 하시는건 좀 힘들었다. 당신의 교육철학과 어릴적부터 있었던 일, 어릴적 성적표와 노트, 사진 등을 보여주시면서 우리 가족 역사 공부를 해주셨다. 내용이 싫지 않았지만, 반복은 싫었다. 표현에 있어서 ‘내용’보다는 ‘방식’이 중요한 것을 새삼 느꼈다.

첫 술을 무사히 마치고, 다짐했다. ‘잔소리’하지 말아야지, ‘했던 이야기 또 하지 말아야지’, ‘취하지 말아야지’, ‘나쁜 술버릇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지’라고 다짐했다. 나는 비록 처음 술자리였지만, 고2때 친구들 가운데 술을 마시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술 마시고 실수하는 친구들 이야기도 들렸다. 옳고 그름이나, 좋고 싫음을 떠나, 나와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이제 ‘첫 술’을 마셨고 같은 배를 탔다. 술도 음식이라 배운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술을 취하지 않되 취하더라도 좋은 술버릇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은 이어졌다.

고등학교 시절 첫 술이 마지막 술이 될거란 상상은 조금 했었지만, 첫 술 이후에 생각보다 잦은 술 마실 기회가 있었다. 친구 생일이 문제였다. 친구 생일이면 어정쩡하게 넘어가거나, 친구집에 가서 밥을 먹던 중학생 시절엔 생일날 ‘술’은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이후 생일인 친구가 있으면 (친구가 원할 경우에) 술을 마셨다. 고등학생이 용돈이 넉넉할리 없었으므로, 아주 저렴한 고깃집 (돼지 갈비 1인분에 1500원)에 고기를 몰래 더 사고, 소주도 물병에 담아서 가져갔다. 수능시험 100일전에는 100일주를 마셔야했다. 수능시험이 백일 앞으로 다가왔으니 백일주를 마셨다. 백일주, 구구주, 팔팔주, 칠칠주, 오십주까지 마시는 친구들도 있었으나 바람직한 것이 아니므로 따라하지 않았다.  

술을 마실때 취하는지 여부를 정신력이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신력에다가 신체조건도 영향을 준다. 타고난 술꾼도 있겠지만 키와 몸이 클수록 술에 대한 해독능력은 뛰어나다는 것이 정설이다. 제법 큰 키에 운동을 많이 했고, 처음 마시는 술이었기 때문에 술이 취하는 일은 없었다.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당신은 성인이 되기 전 술을 많이 마셨나요?’ 라는 질문에 ‘아니오’는 아니다. 즐거웠다. 밤공기는 시원했고, 차들이 다니지 않는 강변 체육공원 주변 도로에는 가로등이 좋다. 미세먼지 같은 것이 없었으니 멀리까지 잘 보였다. 친구 한둘과 야간 자율학습 이후에 맥주 한캔이 주는 즐거움도 있었다. 다만 여름에만 할수 있었던 일이었고, 다시는 하지 않아야할 음주운전이었다.  

‘술은 아버지로부터, 적어도 어른으로부터’ 배워야한다고 말한다. 좋은 술버릇을 위해서 필요한 말이다. 그렇지 않았으니 더 조심했다. 혹시라도 술을 마시고 실수라도 하면, 그 원인이 아버지로부터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평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 몇차례 술을 마시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제는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원하면 혼자서, 어디서든 술을 마실수 있었다. 하지만, 몰래 마시는 술의 맛과 기억만큼 즐겁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보다 훨씬 자유로운 시간들, 넉넉한 시간들, 마음만 먹으면 각지에 흩어져있는 친구들을 찾아갈 수 있었다. 당시 통신수단의 비약적인 발전 (‘삐삐, 휴대폰, 스마트폰’ 참조)과 이동수단의 발전 (‘운전면허’ 참조)으로 시간만 허락하면 어디든 갈수 있었다. 안동에서 대학 다니는 친구, 대구쪽, 서울쪽, 부산쪽, 충청도쪽, 다양한 곳으로 진학했다. 전교 1등부터 전교 360등까지 친구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것이 나의 장점이다. 그 시절 교복 입고, 몰래 마시던 술의 기억이 술안주가 되었고, 그리고 또 술이 술을 마셨다. 건강을 헤치거나, 의식을 잃거나, 사고를 친적은 없다. 누구에게 배운 첫술이 아니라 ‘스스로 익힌’ 술자리였지만, ‘실수는 안된다’는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다. 이어령 선생의 ‘보자기 인문학’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대만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조직의 노동자는 10년 전까지 모심기를 했던 농촌 출신의 젊은 여성이었다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즉, 절약, 근면, 독립심이 더해져 그것이 근대화의 열쇠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 하지만 주머니 여건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그랬기에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낸 것 같다.

술한잔 마시기 위해 ‘절약’하고, 저녁시간이 되기까지 ‘근면’, 어떤 어른도 허용하지 않는 ‘독립심’이 더해져 우리의 근대화 (사회생활)를 앞당겼던 것 같다. 이렇게 저렇게 근대화를 앞당겼던 술의 기억은 대학에서 한껏 빛을 발휘했다. 20년을 안동에서 보낸 내가 대학 (서울)에 와서 가졌던 ‘오리엔테이션’, ‘선배들과의 대화’, ‘학교 축제’ 등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처음 술을 마셔보는 친구들과 동기들에 비해 여유로운 술매너와 능숙한 대화진행 등은 ‘조기교육’의 중요성과 ‘조기교육’때의 각종 추억 (숙취, 졸음)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적당한 술은 분명 도움이 된다. 긴장된 몸을 이완시켜주고, 이완된 몸을 바탕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 대화가 많아지고, 진솔한 대화가 이뤄지는데 도움을 준다. 더불어 모든 인간이 생로병사를 겪듯, 술자리의 생로병사도 있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는 법이므로, 영원한 술자리를 원한다면 ‘혼자가 아닌 이상’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서로 합의된 적당한 술자리가 건강과 체중을 지켜준다. (전적으로 내 생각에) 내 살의 절반은 ‘술자리’와 관련이 있다. 혼자서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나와 술자리를 함께해준 사람이 만들어준 살이라는 궤변이다. 하지만 나는 그 책임을 내가 질 것이고, 반드시 적당한 몸무게 혹은 고등학교 몸무게로 돌아갈 것이다. 몸무게를 생각하면서 술을 마시던 어제의 술자리, 절박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내유외강’한 내모습이 때로는 싫다. 넓어진 얼굴, 튀어나온 뱃살, 조금만 움직여도 헐떡거리는 운동능력을 종합하면 ‘살’은 빼야한다. 살을 빼야하기 때문에 술자리를 줄여야 한다. 과유불급, 술자리와 건강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수 있는 방법을 발견, 발명, 개발하고 실천, 응용, 적용해야겠다. 언제부터? 바로 지금 이 순간 부터!!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다. 10대의 독서는 20대의 지적능력을 보장한다. (10대의 술은 20대의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해준다. 하지만 지적능력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10대의 어떤 행동이나 습관으로 인해 20대는 영향을 받고, 10대와 20대의 행동에 의해 30대, 10대부터 이어진 30년의 습관이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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