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에서 왔습니다만
나는 충청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금은 경상도에 머물고 있지만,
근본은 '왜 이러는겨'가 익숙한 충청도 사람이다.
월화수목금금금.
나의 별명은 회사 붙박이장이었다.
낮이든 밤이든, 주말이든
늘 회사에 붙어 있는 존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숙했던 탓도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내 직무를 감당할 수 없는 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회사뿐 아니라 내가 사는 모든 환경을 바꿔버리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도망자처럼 다른 지역에 홀로 이사를 와버렸다.
집도 구하지 않은 채 차에 이불, 컴퓨터, 옷들을 잔뜩 싣고 무작정 그렇게 타지에 왔다.
가장 추운 1월이었다.
외지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사투리는 나를 자주 오해하게 만들었고,
지금은 정겨운 그 말투가 당시에는 나를 외딴섬에 세워두는 느낌이었다.
음식도 많이 달랐다.
돼지국밥도 밀면도 내게는 낯설었고,
방아잎, 산초, 제피의 향은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또 내가 살던 지역의 '얼큰이'는 칼국수였는데,
이곳의 얼큰이는 직화닭발이었다.
국물 닭발이 익숙한 나와 달리,
이곳에서는 직화닭발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이렇게, 먹는 것만으로도 타지인이 되었다.
그런 어느 날, 식당에서 '짜글이'를 만났다.
충청도 음식인 짜글이라니.
너무 반가운 마음에 주문했는데 이건 김치찌개인데...?
먹는 것에 진심인 내게 이건 슬픔을 넘어선 분노였다.
이것이 바로 이탈리아인들이 우리나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며 분노할 때 아마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먹고살았던 짜글이는 김치를 넣는 음식이 아니다.
돼지고기와 감자, 애호박, 양파가 메인 재료이며, 고추장 한 스푼은 꼭 들어가야 한다.
돼지고기는 다른 부위도 좋지만 사태를 넣으면 쫀득쫀득함까지 챙길 수 있다.
또한 새우젓을 소량 다져 넣으면 감칠맛이 폭발하는데,
자취생활을 할 때에는 새우젓이 집에 있을 리가.
가끔 족발 시키면 함께 딸려오는 새우젓을 보관했다가 넣기도 했다.
그래서 족발 시킨 후 2-3일 뒤쯤엔 짜글이 찌개를 종종 해 먹곤 했다.
내게 짜글이는 단순 한 끼 메뉴가 아니라 고향의 맛이었다.
내 스타일의 짜글이 찌개는 돼지 사태살을 큼지막하게 썰어 간장, 후추, 다진 마늘, 고춧가루로 밑간을 한다.
맛술이나 소주로 누린내 제거를 한다지만 생고기를 쓰면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생고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밑간 한 고기를 먼저 볶고,
물 대신 쌀뜬물을 육수로 쓴다.
멸치육수를 안 쓰는 건 아니지만 충청도는 확실히 비린 맛을 적게 쓰긴 하는 듯하다.
국물이 끓으면 감자, 애호박, 양파를 넣고 고추장 한 스푼. 새우젓이 없다면 다시다 반 스푼도 괜찮다.
파는 마지막에, 매운맛을 좋아한다면 청양고추도 챙겨준다.
간은 고기 밑간 할 때 쓴 양념들을 활용한다.
짜글이는 국물을 적게 잡아 짜글짜글 소리를 내며 끓여지는 게 맛있다.
감자의 전분기가 국물을 잡아주고,
양파와 애호박의 달큰함이 고추장 베이스와 잘 어우러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짜글이 찌개는 밥에 비벼 먹어도 좋고,
소주와 함께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김치찌개에 짜글이란 이름은 이제 제발 멈춰주길...
진한 맛이 그리운 날, 유난히 추운 날
혹은 인생의 쓴맛을 본 날에 생각나는 음식이다.
어떤 하루였든,
내 속을 가득 채워주는 짜글이 찌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