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서울사람이었지만, 시골 남자인 아빠를 만나 결혼했다.
3대가 함께했던 우리 가족이 살던 곳은 아빠가 나고 자란 곳이었다. 슈퍼 하나 없고, 하루에 고작 몇 대의 버스만이 들어오는 시골. 게다가 대부분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던 집성촌이었다.
그런 시골이었지만, 우리 집은 다른 집보다 제법 잘 갖춰져 있어서 불편한 건 없었다.
다만, 시골이었고 내가 자랄 때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다. 내겐 남동생이 있다. 종갓집 장손인 남동생이.
동생 생일에는 할아버지가 하루에 몇 번 오지 않는 버스를 타고 읍내를 나가 버터크림으로 된 케이크를 사 오셨다. 플라스틱 같은 분홍빛 장미와 연두색 잎이 올려져 있던 케이크의 하이라이트는 딸기모양의 젤리였다.
어른이 되어 찾아보니 한천으로 만들어진 젤리라던데 어려서는 그게 어찌나 먹고 싶었는지,
하지만 기회는 내게 오지 않았다. 깐족대는 동생의 얄미운 입으로 늘 쏙 들어갔으니까.
왜 젤리를 하나밖에 안 올려줬던 걸까? 비싸지도 않았을 텐데, 한 서너 개쯤 팍팍 올려주지. 쳇.
대신 내 생일엔 케이크가 없었지만, 엄마가 만들어준 잡채가 항상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첫 잡채는 내 생일날 먹었던 잡채다.
엄마가 잡채를 만들 때면, 어서 모든 재료가 버무려지기만 기다렸다. 잡채가 완성이 되면 엄마가 덜어주는 한 접시를 아이였지만 뚝딱했다.
엄마는 꼬맹이인 내게 꼭 간을 물어보곤 했다. 간장을 더 넣어야 할지, 참기름은 적당한지 말이다.
내 대답은 항상 같았다.
맛있어! :-P
잡채는 축하할 일이 있거나, 친척들이 모이는 날에 주로 해 먹었다.
가끔 반찬이 없을 때는 당면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콩나물만 넣은 잡채를 해주시기도 했다.
나 역시도 자취를 할 때는 삶은 당면에 간장, 설탕, 참기름, 다진 마늘만 넣어 먹기도 했다.
자취생일 때는 여러 가지 나물이 들어간 잡채는 만들기 어려웠다.
대신 명절 후 엄마가 나물을 싸주면, 나물을 반찬으로 먹기보다 돌솥비빔밥을 한 끼 해 먹고 나머지는 잡채를 만들었다. 엄마표 나물에 삶은 당면을 넣고 간만 맞추면 되는 잡채는 엄마 맛은 아니지만, 내가 만들고 싶었던 잡채김치볶음밥을 하기엔 충분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잘게 자른 김치를 넣어 볶는다. 다시다를 아주 조금, 그리고 물엿 한 스푼을 넣는다.
설탕 대신 물엿을 넣으면 밥이 조금 더 자작해져서 잡채와 잘 어울린다. 여기에 먹기 좋게 자른 잡채와 밥까지 넣어 볶고 참기름과 깨를 뿌리면 끝이다. 쉽지만 맛있는 한 끼의 완성이다.
남은 잡채를 계속 팬에 기름을 둘러 데워 먹다 보면 기름진 느낌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김치를 넣어 볶음밥을 해 먹으면 느끼하지 않고 더 맛있다.
잡채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어진걸 보니 생일이 가까워짐을 느꼈다.
엄마에게 혹시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사 온 케이크에 대해 기억하는지 물어보니 엄마는 기억도 안 난다면서
미안함에 케이크를 사 왔다. 이번 내 생일에는 케이크 두 개가 함께 했다.
요즘은 케이크가 흔해져서 쉽게 사 먹을 수 있지만,
손이 많이 가는 잡채는 여전히 엄마의 몫이다.
엄마! 나는 케이크보다 엄마표 잡채가 더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