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공방탈출

by 또록



구름만 잔뜩인 줄 알았는데 결국 빗방울이 떨어졌다.

차 트렁크 깊은 곳의 투명 비닐우산을 꺼냈다.



진해 군항제의 벚꽃을 보러 가던 밤, 비가 내렸다.

우산으로 벚꽃이 가려질까 비닐우산을 급하게 사서 꽃놀이를 갔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부럽다는 수군거림에 괜히 어깨가 높아졌다.



까만 밤, 비와 함께 분홍빛 꽃잎이 우산에 후드득 떨어졌다.

꽃잎을 떼기 아쉬워 그대로 보관을 했더니 벚꽃 잎이 있는 우산이 되었다.

색 바랜 꽃잎이지만, 사연이 있는 우산을 쓰고 공방으로 향했다.



비가 오니 차를 마시러 가고 싶다는 선생님.

나 역시도 어제 흥건하게 마신 술 때문인지 차가 생각났다.

사실 날씨와 술은 핑계고, 선생님과 나는 종종 이렇게 공방을 탈출한다.



선생님 덕에 카페가 아닌 찻집도 네다섯번은 왔다.

커피와는 또 다른 온도를 지닌 차.



차를 마시러 갈 때마다 느끼지만,

찻집 사장님들은 모두 차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차에 대해 신나서 설명도 해주시고

다식이나 좋은 차를 하나씩 더 내어주시기도 하신다.

내가 운이 좋은 건지,

선생님의 운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본인이 사랑하는 차를,

누군가도 좋아한다고 하니 나오는 찻집 사장님의 설렘이겠지만

그 설렘 덕분에 우리는 늘 덤을 얻는다.




도자기를 만들다 보니

찻잔이며 다식 접시며

괜히 하나씩 들어보게 된다.

굽이 낮네, 손잡이가 참 예쁘네,

이건 유약이 참 고왔네 하며

우리 둘이 조용한 품평회를 열었다.



그러다 한참 이어진 수다가 군데군데 끊기기 시작한다.

비도 그치고, 우리의 티타임도 끝이 났다.



몸은 집으로 왔지만, 여전히 여운이 남았다.

이런 것도 여운이라 말할 수 있으면 말이다.



차에 기본 다식이 나온다며 다식 세트 주문을 말렸던 찻집 사장님.

그 와중에도 더 먹어보고 싶지 않냐며 시키자는 공방 선생님.

배부르지 않을까요? 라며 괜히 말린 나.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냥 먹을 걸 그랬다.



못 먹어본 걸로 집에 와서 후회하는 돼지라니,

차라리 후회 없는 돼지가 낫겠다.

운치 있던 찻집에 어울리지 않은 결말이라니.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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